![]() "아─? 지금 나를 누구와 착각하고 있는 거야?"
사실 방금 전에는 일부러 이름을 잘못 부른 거였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화가 난 이치마츠의 얼굴이 보고싶었다. 모든 게 아무래도 좋다는 듯 한 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인형처럼 되어가는 그가 걱정 되어서. . . . "눈 삐었어?" 이치마츠는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 주머니에 찔러넣고 있던 손으로 내 턱을 붙잡았다. 거친 손길에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불평을 할 수는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내가 그의 신경을 건드린 것이었기 때문에. 무거운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이치마츠의 표정은 곧 평소와 같이 돌아왔다. "그래, 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가끔은 헷갈릴 수도 있지. 사람은 기본적으로 시각에 의존하는 동물이고." 화를 내도 좋으니까 걱정이 되지 않도록 조금은 속마음을 겉으로 표현해주길 바랐는데. . . . "다른 형제와 구별할 수 있도록 자신에 대한 것을 확실히 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어." "아니… 그런…" 나는 멋쩍은 마음에 이치마츠에게 사과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해줄게." "?" … … … "아얏!" 허공을 더듬거리며 우중충하게 앞으로 나아가다 뭔지 모를 사물에 발가락을 부딪혀 아픔을 호소한다. 이치마츠에 의해 수건으로 눈이 가려진 나는 겨우 벽을 짚고 서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야가 완전히 차단 된 캄캄한 어둠속에서, 나는 더할 나위 없이 무력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쳐가는 소리만으로도 긴장이 되어서 신경이 잔뜩 곤두세워졌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의미없이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노라면, 문득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발소리의 주인은 물론, 나와 같은 방에 있던 이치마츠일 것임에 분명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단순한 이유로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발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오른쪽에 살짝 무게감이 실린 다소 느릿한 발걸음. 쿵─. 쿵─. 쿵─. 맨발이 바닥과 부대끼는 소리. . . . 그것은 소리에 대한 나의 집중력이 만들어낸 가히 놀라울 만한 일이었다. 눈이 먼 사람들이 일반 사람들에 비해 몇 배는 청력이 좋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있지만, 설마하니 이정도일 줄이야. "이치마츠?" "응." 이치마츠의 목소리는 낮지만 부드럽다. 청각에 모든 것을 맡긴 상태에서는 그 이상으로 청아하게 들려온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져서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설령 눈이 먼다고 해도 이 목소리 만큼은 알아들을 수 있다. 보이지 않지만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 . . . . . . . . 성인남자의 단단한 두 팔이 허리를 감싸오는 순간, 나는 움찔 하고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나를 덮쳐온 감촉은 그보다 훨씬 자극적인 것이었다. 보지 않아도 이치마츠가 내 귀언저리를 핥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순한 장난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는 나의 빈틈을 너무나도 집요하게 노리고 있었다. 그런 교활한 움직임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무리였다. 순식간에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나갔다. "그래, 당황스럽겠지." 그의 목소리가 가슴까지 침식해들어온다. 나는 나의 심장이 진작부터 스스로에게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눈을 가려진 채 여태 친구라고 생각했던 남자에게 키스를 받고 육체적인 만족을 얻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두려운 것이었다. "그동안 드러내지 않아서 미안했어." 이치마츠의 손은 조금 다급하게 느껴질 정도의 속도로 내 스카프를 풀고, 얇은 셔츠 안을 파고들었다. "이제 너는 우리 여섯명이 함께 있어도 나를 금방 알아볼 거야. 왜냐면…" "네 머릿속에 바로 떠오를 거거든. 이 남자가… 아니, 이 자식이…" "나를 물었어…!!!" 그 외침이 울려퍼진 뒤, 찰나의 공백도 없이 무언가 나의 살갗을 뚫었다. 그것은 알파의 이빨이었지만, 내게 단단하고 날카로운 흉기나 다름없었다. 나는 일순간 충격과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뜨거운 눈물이 수건에 스며들었다. "이, 이치맟… 뭐 하는…!!! 그만둬─…!!!" 내가 애원하듯이 소리쳤을 때 나의 이성에는 이미 쩍쩍 금이 가고 있었다. 시야를 까맣게 메꾼 어둠이 전혀 조화가 되지 않는 여러가지 색깔들로 어지럽게 물들고, 온갖 허상이 한 데 얽히고설켜 나를 휘어잡았다. 살갗이 찢기는 고통과 짐승이 그르렁거리는 듯한 야릇한 숨소리, 그것은 내 몸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나는 그 순간까지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치마츠가, 이 남자가 나를. . . . "이치마츠으으으─…!!!" 나의 비명은 방 안의 무거운 공기를 갈기갈기 찢으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소리를 듣고 누군가 달려오거나 경찰에 전화를 걸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끔찍한 파동이었다. 그런데도 나를 감싸안은 이치마의 두 팔에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강한 힘이 들어갔다. 그것은 안았다기보다는 도망치지 못하도록 꽉 붙잡은 느낌에 더 가까웠다. 나는 절박함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약간의 이성을 되찾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이 무언가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음에 틀림없다고.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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