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이후 오소마츠는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를 위해 만든 얼음주머니를 가지고 복도를 지나던 나는 갑자기 누군가에게 팔을 붙잡혀 자신의 방으로 끌려갔다. 탁─!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문이 닫히고, 그와 동시에 내 몸도 벽으로 밀쳐졌다. 내가 아픔을 호소하며 왜 이러냐고 묻자, 쵸로마츠는 '왜 이러는지 알잖아.' 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하며 내게 바짝 다가섰다. 확실히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그와 말다툼을 하는 것보다 괴로움에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오소마츠를 돌보는 일이 더 우선이었다.

 "나중에 얘기하자."

 나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짧게 말하고는 방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쵸로마츠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내 머리맡에 거칠게 손을 내지르고는 당황하는 나를 매서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사람 앞에서 좋아한다는 말을 꺼냈으면 더이상 갈팡질팡하지 말란 말이야."

 "쵸로마츠."

 "내 여자가 돼 줘."

 쵸로마츠는 무거운 한숨과도 같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 순간 초승달처럼 모나고 기울어져 있던 그의 태도가 조금은 온화하게 변했다.

 "지금 꼭 대답해야 해?"

 그는 내게 바짝 다가서서 나의 팔을 붙잡았다.

 "생각할 것 없잖아. 너랑 나는 이미…"

 나는 다정하게 뺨을 감싸오는 쵸로마츠의 손길에 무심코 두 눈을 감았다가 그의 손을 뿌리쳤다. 아픈 오소마츠를 두고 잠시나마 달콤한 기분을 느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느껴졌다.

 "오소마츠는 날 살리려고, 나 때문에 목숨을 걸고 카인과 계약했어. 지금은 내가 그의 곁에 있어줘야 할 때야."

 "널 위해서라면 나도 뭐든지 할 수 있어."

 몸의 방향을 틀어 방을 빠져나가려던 나는 쵸로마츠의 말을 듣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내가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둔 채 허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너는 너 자신만 생각해줘. 난 지금 이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니까."

 이 이상 죄책감의 무게가 늘어났다간 견디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 소중한 사람이 나 때문에 위험에 처하고, 상처입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먼저 눈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생각은 조금씩, 조금씩, 내 안에 강박적인 감정으로 자리잡았다. 당시의 나는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확신을 가지고 선택하더라도 후회는 남기 마련이다. 그때 내가 다시 한 번 쵸로마츠를 돌아봤더라면, 어쩌면, 미래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좀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

 …

 …

 그 날, 도시를 붉게 물들인 하늘은 노을의 옅은 주홍색이 아닌 피의 검붉은 색을 띄었다. 강한 바람이 불어와 온갖 흉하고 더러운 부스러기들이 날아다녔으나, 그러한 와중에도 커다란 악마의 날개만은 그 위엄을 꼿꼿하게 지키고 있었다. 날개의 주인 카인은 평소와 달리 마츠노가의 남자가 아닌 그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인간의 몸에 들어갔다. 이유라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여유를 주려는 것이었지만, 당시의 그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단지 기분전환이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슬슬 아벨의 움직임이 보이네요."

 창백하지만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한 여인이 카인과 함께 마츠노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카인의 수많은 부하중에 주로 그의 시중을 담당하는 악마였다.

 "그렇다 해도 쵸로마츠가 쉽게 허락해줄 것 같지는 않은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 걸까요?" 부하가 물었다.

 카인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대답했다.

 "아벨은 영리한 녀석이다. 아마도 그의 약점을 파고들겠지."

 그때, 돌연 누군가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이 봐!"

 "아아아아아악──!"

 카인의 부하는 불길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그가 한때 자신의 그릇으로 이용했던 인간 카라마츠가 서있었다.

 "꽤 아픈가 본데, 밤새 너희에 대해 공부한 보람이 있군."

 "네가… 어떻게…"

 카인의 붉은 눈에 날이 섬과 동시에, 그의 목소리는 평범한 인간들과 다른 악마 본연의 소리로 변했다. 그것은 마치 먹이 앞에 선 짐승의 숨소리처럼 짙은 공포를 조성했다. 카라마츠도 그것을 느꼈지만, 그는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카인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악마 > 인간이라는 당연한 공식이 악마 = 인간이 되어버린, 카인으로서도 적잖이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네놈, 그동안 잘도 내 몸을 이용해서 내 형제들과 친구를 괴롭혔겠다. 난 바보가 아니다. 앞에서는 네게 순종하는 척했지만 뒤에서는 널 쫓아낼 방법을 계속 찾고 있었지."

 카인은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내쉬며 딱딱하게 굳은 목의 근육을 풀었다. 카라마츠의 손에 들린 유리병과 그 안에 든 성유(聖油)가 여전히 눈에 거슬렸지만, 그것으로 일순간 날카로워졌던 기분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 했다.

 "제법이군. 앞으로 훌륭한 엑소시스트가 될지도 모르겠어." 그가 마른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우릴 내버려둬. 안 그럼 너도 똑같은 일을 당하게 해줄 테니까."

 카라마츠는 언제든 화염병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카인에게 보여주려는 듯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못 하겠어."

 어느새 여유를 되찾은 카인은 기괴한 목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그의 입술은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그 소리는 천둥처럼 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는 허공에서 다섯손가락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카라마츠가 돌연 가슴을 움켜쥐더니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몇 번의 기침과 신음이 반복되는가 하면 그의 입에서 새빨간 피가 토해져나왔다. 카인이 손에 쥐었던 것은 다름아닌 카라마츠의 심장이었다.

 "내가 네 형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퇴마를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카인은 커다란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순식간에 쓰러진 카라마츠에게 다가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아직은 안 돼. 내겐 꼭 해야 할 일이 있거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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