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xx년 xx월 xx일.
사건을 일으킨 사람도 카인, 도움을 준 사람도 카인.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아벨의 그릇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으니 한시름 덜었다. 쵸로마츠가 허락만 하지 않으면 아벨이 카인과 싸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아벨은 잠시 제쳐두고, 카인에 대해서 고민할 차례다. 카인이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든 간에 그에게는 오소마츠가 필요하다. 아벨과 달리 이미 그의 허락을 얻어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말로는 아벨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지만, 지금 쯤 어떤 터무니 없는 일을 벌이고 있을지 모른다. 그 모든 일들에 내 친구가 이용될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죄어온다. 나는 본래 시야가 좁은 인간이다. 종말이 찾아오든, 찾아오지 않든 내게는 오소마츠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어떻게든 지키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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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침도 거른 채 온종일 고민하다가 마침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 형제들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방 한 가운데 오소마츠가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서둘러 그에게 달려갔다. 오소마츠는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로 홀로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피가 필요해…', '아주 많이 필요해…' 나는 그 말을 듣고 왜라는 의문을 갖을 여유도 없이 그의 뺨을 두드렸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불안함과 두려움에 그저 어서 정신이 들게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피가 필요해… 아주 많이 필요해…"
"오소마츠!"
나는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오소마츠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러자 흐릿하던 그의 초점이 비로소 내게 맞춰졌다.
"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방금 뭐라고 했지…"
그는 내 품안에서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무얼 하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소마츠, 할 얘기가 있어. 부탁이니까 지금부터 내가 아무리 터무니 없는 말을 하더라도 나를 믿어줘."
"무슨 얘긴데?"
그는 나를 봐서 기쁘다는 듯 내게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는 길게 뜸을 들이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너에 대한 거야."
…
…
…
"그러니까, 그 카인이라는 녀석이 내 몸을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다는 거지?"
"응."
"내 몸에 들어와서 무언가 위험한 일을 벌이려 하고 있고?"
그의 연이은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아, 이게 얼마나 황당한 얘기인지. 하지만…"
"널 믿어."
오소마츠는 살며시 손을 뻗어 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었다. 그의 두 눈이 마치 나에게 '걱정 마'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실은 전부터 이상한 일을 겪고 있었거든.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뜨면 전혀 다른 장소에 있다던가…"
"넘어지거나 부딪혀도 전혀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던가?"
"네가 어떻게 그걸…"
"카인이 말해줬어. 실은 누군가 그와 마찬가지로 다른 형제의 몸에 들어가려 하고 있거든."
"그게 누군데?"
"아벨. 카인의 동생이고, 천사야."
"천사라면… 좋은 녀석 아니야?"
"그는 카인을 벌하려고 해. 당연히 카인은 거기에 저항할 테고, 그러면 그릇인 네가 죽을지도 몰라."
"맙소사……."
오소마츠는 고개를 모로 돌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잠깐, 카인이 저항한다면 반대로 아벨이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거잖아."
"맞아. 아벨의 그릇도 위험해."
"……."
그는 쵸로마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보다 더욱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그가 동생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잘 알고 있던 나도 그 못지 않게 참담한 기분이었다. 나는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자신이 당장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꼭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미안해…"
그보다 먼저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이 옳았지만, 오소마츠는 자신이 카인에게 허락을 한 이유가 나라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렇잖아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 얘기까지 꺼내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커다란 죄책감을 억누르며 나중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그는 내 어깨 위에 손을 얹고 나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문득 그의 부드러운 머리칼이 뺨을 간질였다.
"난 괜찮아."
"정말?"
"그래. 네가 있잖아."
조금은 원망해도 좋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나를 괴롭게 만드는 걸까. 오소마츠의 대답은 나로 하여금 그러한 뻔뻔한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따뜻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슬픈 의문점을 만들어냈다.
"내가 네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날 떠나지마. 그것만으로 충분해."
나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믿으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오소마츠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그의 곁을 지켜주는 것 뿐이었다. 오소마츠가 내게 원하는 것이 그것으로 전부인 것은 결코 행복한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내게 힘이 되어주었다. 부담이 되지 않으려 했다. 그것이 고마워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오소마츠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고 그의 이마에 키스를 했다.
"……."
같은 시간 방의 문 너머에는 한 남자가 어둠속에서 침묵에 잠겨 있었다. 내게 있어서 오소마츠 이상으로 소중한 사람이었다. 나는 불행하게도 자신이 오소마츠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었던 그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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