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햇살이 거리에 내려앉은 어느 봄날.
바람을 타고 날아온 벚꽃잎이 뺨을 스치고, 어딘지 모를 곳에서 흥겨운 콧노래가 들려왔다.
소년은 가벼운발걸음으로 장차 다섯명의 동생들을 이끌고 매일 홀로 가던 길을 그들과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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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마츠형, 아직 멀었어?"
이제겨우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앳된 목소리.
아이들의 얼굴에는 보드라운 젖살 뿐만 아니라 호기심과 설렘, 그리고 순진무구함이 있었다.
"이제 거의 다 왔어. 힘들면 형아가 업어줄까?"
"으으응─, 괜찮아."
벚꽃처럼 분홍색의 옷을 입은 막내의 볼을 장난스레 꼬집으며, 소년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 앞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가녀린 소녀를 위해서.
"칼라마츠형아, 차 조심해."
"엇, 고마워 이치마츠. 그리고 칼라마츠가 아니라 카라마츠야. 칼라는 색(色)이라고."
"미안… 카라마츠형아."
"괜찮아, 괜찮아."
흰색 셔츠에 파란 머플러를 두른 또다른 소년은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소심한 동생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었다.
소년의 무리를 한쪽 벽으로 몰아세우며 그들을 빠르게 스쳐지나간 앰뷸런스의 사이렌소리가 멀리서도 선명하게 들려오고있었다.
"누가 다친걸까?"
오소마츠라 불린 소년은 발끝에서부터 스물스물 올라오는 듯한 불길한 예감에 저도 모르게 자신의 붉은색 바지를 두손으로 꽉 쥐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소년은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젓고서 두손을 앞뒤로 흔들어가며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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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이야?"
"응."
오소마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베란다가 있는 뒷마당쪽으로 달려갔다.
나머지 소년들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현관 앞을 서성거렸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그치만 현관문은 활짝 열려있어."
"아무도 안 계세요?"
"아무도 안 계세요─?"
그들의 애타는 목소리에도 대답을 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몇번을 더 부르고난 뒤 소년들은 비로소 집이 텅 비어있음에 확신했다.
의아함과 실망감이라는 어두운 색깔의 페인트가 소년들의 마음 위로 쏟아졌다.
…
…
…
"오소마츠형─. 어디있어?"
"그만 집에 돌아가자─."
소년들은 언제나 앞장서서 그들을 이끌어주는 장남을 찾아 조용히 뒷마당으로 이동했다.
"흑… 윽…읏… 흐으으앙─…"
"형아? 왜 그래?"
"으읏…으…흐으으윽…."
"왜 울어?"
당황한 동생들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떨어뜨리던 오소마츠는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하얀 편지봉투를 손에 쥔 채, 소년은 고개를 숙여 퉁퉁 부어버린 두눈을 감추며 마당을 나와서 자신의 형제들에게로 돌아갔다.
"그 애… 편지만 남겨두고 가버렸어…"
"편지에 뭐라고 쓰여있는데?"
"읽을 수 없어……."
"어째서?"
깨끗한 와이셔츠 위에 초록색 멜빵을 맨 소년은 오소마츠에게 편지를 건네받아 펼쳐보았다.
형제중에서 가장 한자에 자신이 있던 소년이었지만, 그가 펼친 종이 안에는 한자도 뭣도 아닌 알 수 없는 문자가 쓰여져 있었다.
그것을 읽을 수 없는 것은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
…
…
그 날 집으로 돌아온 소년들은 우울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좋아하는 간식을 먹는 동안에도 모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눈물의 호수 밑바닥에 잠긴 채 흔들리는 물결을 바라보고있던 오소마츠는 저녁이 되어서야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는 줄곧 손에 쥐고 있던 편지를 엄마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이거 읽을 수 있는 사람… 어디 없을까?"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어째서 자신의 아이들이 모두 슬퍼하고 있는지.
영문을 몰라 답답해하고 있던 엄마는 그제서야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이웃중에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가서 부탁해보자꾸나."
"응……."
그녀는 아들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더이상 그가 상처입고 슬퍼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안함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들이 건네준 편지를 보았을 때 좋지않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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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용인가요?"
"그게……."
한국인 유학생이라는 어느 여성은 편지를 읽고난 뒤 한참을 망설이더니 엄마를 데리고 가서 그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후 엄마가 모퉁이를 돌아 아들에게 돌아왔고, 그로부터 잠시후에는 여성이 작은 펜과 종이를 들고 그들에게 돌아왔다.
"내가 일본어로 번역해서 적은 거야."
"고맙습니다."
오소마츠는 여성에게 건네받은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안에 소중히 넣어두고, 종이 위에 쓰여진 익숙한 문자들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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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오소마츠.
오늘 같이 놀기로 한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아빠가 말하길,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치료를 받아야만 한대.
너와 함께 있는 게 너무 좋지만 더이상 아빠를 걱정시키면 안 될 것 같아.
사실 난 지금 무지 아파. 병원에 가지 않으면 죽을지도 몰라.
나중에 건강해지면 또 일본에 놀러오겠다고 약속할게.
그때는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
…
애처롭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알 턱이 없는 어린 소년은
저도 모르게 가슴 앞으로 손을 가져가며 눈물을 삼켰다.
소년의 손 안에서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종이가 그의 마음을 대신 보여주는 듯했다.
…
…
…
그리고 10여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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