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 이것은 꿈이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악마가 여기에 있는 걸까?

 어째서 카라마츠가 아닌, 오소마츠의 몸에 들어가 있는 걸까?

 "지금까지 속여서 미안해. 사실 카라마츠는 내 그릇이 아니었어. 내 진짜 그릇은… 이 녀석이야."

 "당장 그 몸에서 나가…!"

 나는 산소호흡기를 떼어버리고 악마에게 소리쳤다. 그 순간 내 몸은 나의 의지가 아닌 내 분노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윽고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묵직한 현기증이 나를 짓눌러왔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카라마츠를 발견했을 때는 가슴이 턱 막히기까지 했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이미 늦었어." 그것은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은 악마 치고 꽤나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는 평소와 달리 꽤나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것이 내 비위를 더욱 상하게 했다. 마치 동정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 너를 도우러 온 거야. 그러니 너무 매몰차게 굴지 마."

 악마의 손은 내 귀와 뺨을 천천히 쓸어내리다가 내 목을 감쌌다. 그가 주문을 속삭이자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 기운이 사라질 때 쯤에는 몸이 가벼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목을 감싸고 있던 붕대를 풀어보니 상처가 말끔히 나아있었다. 나았다기보다는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왜 나를 살려주는 거야? 넌 내 영혼을 원했잖아."

 "인간은 어차피 언제가 죽어. 네 영혼은 이미 내 거야."

 악마는 몸을 일으켜 창가로 걸어갔다. 이윽고 달빛이 그를 비추었다.

 "오소마츠와 계약했구나… 내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조건으로 그의 몸에 들어간 거야. 그렇지?"

 "응."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담배를 하나 꺼내물었다. 이윽고 낮은 숨소리가 들려오는가 하면, 동그랗게 피어오른 하얀 연기가 창 밖으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어쩔 수 없었어. 이 녀석은 내가 여태껏 만나온 그 어떤 그릇보다 더 끈질겼거든."

 "돈도 싫다, 여자도 싫다, 명예도 싫다, 정말이지 욕망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한심한 종자더라고. 뭐, 몇몇의 악마들은 그것을 '약점이 없다'고 표현하기도 하지."

 "너도 알다시피 이 녀석의 약점은 가족과 너 뿐이잖아. 처음에는 카라마츠의 목숨으로 협박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럴 바엔 차라리 널 살려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카라마츠의 몸에는 어떻게 들어간 거야?"

 "정말 간단했어. 내가 딱 한 마디 하니까 바로 허락해주던 걸. YOU OR YOUR BROTHER."

 "나쁜 자식…"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영혼을 회수하는 것은 본래 스케줄러가 하는 일이고, 이 악마는 스케줄러들의 우두머리인 사신이니까. 딱히 특별하다 할 것도 없는 내 영혼을 위해 보스인 그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그는 일부러 자신을 낮추고, 나의 스케줄러를 자처했다. 오소마츠에게서 허락을 받아내려고,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내게 접근한 것이었다.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팔에 박혀 있던 링겔을 뽑아버린 뒤 침대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두 발을 딛는 순간 또 한번 현기증이 밀려와 시야가 흐려졌다. 상처가 다 나았다지만, 여전히 몸이 뜨거웠다.

 "도대체 인간계에서 뭘 할 셈이야…"

 "일급비밀─."

 자신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의 마음은 악마를 욕하고, 때리고, 오소마츠로부터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나의 몸은 몇 걸음 나아가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휘청거리다가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순간 자괴감이 밀려왔다. 빨간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연기를 내뱉는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면 살아났다는 것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을 기다릴 때보다 더욱 두려웠다.

 "참, 이제 내 이름 알려줄게. 아무래도 좋겠지만, 나는 카인이라고 해."

 그는 내 앞으로 걸어와 무릎을 구부리고 앉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후우─ 하고 내 얼굴에 연기를 내뱉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말해줘야겠지. 이제 곧 아벨이 여기로 올 거야."

 "아벨? 네 동생…?"

 "그래. 녀석은 하늘버랭이야. 영적인 존재니까, 나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몸을 빌려야만 해."

 하늘버랭이는 천사를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내 등에 날개가 달려 있었을 때, 신을 위해 일했을 때, 나도 이따끔씩 악마들에게 그렇게 불리곤 했었다.

 "누가 그릇이야?"

 천사와 악마의 그릇은 혈통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인과 아벨이 형제인 이상 그들의 그릇도 반드시 형제로 정해져 있다. 카인의 그릇이 오소마츠라면, 그의 쌍둥이동생 다섯명중 누구라도 아벨의 그릇이 될 수 있다.

 "그걸 미리 알면 재미없잖아. 숙제로 내줄 테니까 풀어 봐."

 "카인─!"

 "내 말 잘 들어. 아벨이 여기 오는 이유는 나를 벌하기 위해서야. 나는 거기에 저항해서 싸워야만 하고."

 "싸운다니… 그럼 너희 그릇은 어떻게 되는데?"

 "우리와 운명공동체지. 내가 이기면 아벨의 그릇이 죽고, 아벨이 이기면… 내 그릇이 죽는 거야." 그가 자신의 앞섬을 살며시 쥐었다 놓으며 말했다. 인간 하나의 희생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그 잔악한 미소가 마침내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원래 나쁜 녀석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 . .

 나는 제대로 기침을 내뱉지도 못하고 가슴을 움켜쥔 채 신음했다. 그러자 돌연 차가운 손이 뺨을 감싸오더니 카인이 내게 입을 맞추었다. 그와 입술이 스칠 때 마다 혐오감이 밀려왔지만, 자신의 숨을 쫓는 것 조차 벅차서 그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

 카인은 나와 이마를 맞댄 채 내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가 다시 삼키고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알아, 형제를 죽인다니 끔찍하지? 너에게는 그렇게 들릴 거야. 하지만…" 내 뒤통수를 감싸고 있던 손이 문득 나의 머리카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그는 그대로 내 귓가에 바짝 붙어 말을 이어나갔다.

 "두렵고 죄책감이 드는 건… 처음 한 번 뿐이야. 난 이미 과거에 내 동생을 죽였어. 이제 곧 너의 친구도 그렇게 될 거야."

 …

 …

 …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