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여유롭게 쇼핑을 즐긴답시고 천천히 구경을 하다가 노을이 지는 저녁이 되어서야 마켓을 나오게 되었다. 한 손에 꽤 커다란 짐을 들고 길을 걷고 있노라면, 문득 멀리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평화롭다. . . . 얼마 전 오소마츠에 이어서 카라마츠의 러트가 끝났으니 이제 밤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겠지.

 아직 이치마츠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다지 걱정은 되지 않는다. 평소부터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고, 목을 물어도 그런 미성숙한 이빨로는 각인이 되지 않을 테니까.

 "어라?"

 문득 굉장히 익숙하고도 향기로운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온다. 치자나무라고 했던가… 얼마 전 쵸로마츠가 새로 바꾼 바디샴푸와 비슷하다. 아니, 똑같다.

 기분 탓이겠지─하며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또 한 번 바람이 불어온다. 다른 사람은 모르더라도 나는 알 수 있다. 이건 확실히 쵸로마츠의 냄새다.

 나도 정말 중증이구나. . . . 곁에 없는데도 냄새가 난다니.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 걸까.

 …

 …

 …

 "아니… 잠깐."

 지금 시야에 무엇인가 익숙한 것이 비춘 것 같은. . . . 두어걸음 뒤로 물러나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밝은 느낌의 초록색 셔츠가 눈에 띈다. 쵸로마츠다. 역시 그 냄새는 쵸로마츠였다.

 자신의 후각에 감탄하며 저도 모르게 씩 웃음을 짓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는 지금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담장에 등을 기댄 채 아픈 사람처럼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다. 손으로 입을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얼굴도 상당히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괴로워 보인다.

 "쵸로마츠, 괜찮아?"

 "…!"

 나를 발견한 그가 당황하며 몸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것 마저 힘이 드는지, 휘청─ 하며 곧 한쪽 무릎을 꿇고 다시 주저앉아버린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

 조금 전 쵸로마츠는 나로부터 도망치려고 했다. 지금도 마음은 당장 도망치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숨이 거칠다.

 "혹시 러트중?"

 전에도 한 번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집 근처에서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에 별일 없었지만… 오늘 그의 상태를 보면 꽤 오랜 시간이 경과한 것 같다. 분명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다가 한계가 찾아왔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달리 이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다.

 "열 때문에… 걸을 수가 없어… 이제… 숨도 못 쉬겠어…"

 그가 내 옷소매를 꽉 붙잡는다. 러트에 대한 경험이 그다지 없으니 무리도 아니다. 아마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도 처음에는 러트가 오면 이처럼 무력해졌을 것이다.

 "내가 부축해줄게."

 "괜찮아… 조금 기다리면… 멀어지겠지…"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만약 상대편도 같은 상황이라면? 도와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너 먼저 집에 가 있어… 여기 있으면… 나… 너한테 무슨 짓 할지 몰라…"

 확실히 지금 쵸로마츠의 상태는 그에게도 나에게도 위험하다. 약해 보이녜 어쩌녜 놀리긴 했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가 내게 손을 댄다면… 그땐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쵸로마츠를 내버려두고 갈 수 없다. 그가 걱정되는 것이 첫째이지만, 누군가 그를 이런 상태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다.

 내가 사라진 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초조하고, 배가 뜨겁게 들끓는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한 애정이 아닌 질투나 독점욕일지도 모른다.

 "쵸로마츠."

 내 부름에 그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나와 마주본다. 손을 뻗어 그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그리고 조심스레 다가가 살며시 입술을 포갠다.

 "뭐, 뭐하는 거야…? 그만 둬…" 그가 나를 밀치며 서둘러 소매로 입을 가린다. 어지러운 와중에도 꽤나 놀란 모양이다.

 "지금 뿐이야. 쵸로마츠를 위해서니까 가만히 있어."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그에게 키스를 한다. 그는 여지없이 나를 밀어내려 하고 있지만 그다지 강하지 않다. 그 미비한 저항은 곧 끝나고, 빠르게 나를 받아들인다.

 "하아─… 하아─…" 입술을 떼자, 그가 숨을 토해낸다. 그리고 그대로 내 스카프에 코를 묻는다. 그에게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곳이고, 의미가 없는 냄새다. 그런데도 그는 스카프를 푼다.

 "물어도… 될까…?"

 "응."

 너무나도 간단히 수락을 해버린 자신이 스스로도 놀랍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내 목을 무는 행위가 쵸로마츠에게 있어서 특별한 것이라면.

 "미안…"

 들릴 듯 말듯 작은 속삼임이 들려오는가 하면, 목에서부터 결코 가볍지 않은 아픔이 느껴진다. 살갗이 압박을 견디다 못해 찢기고, 짓눌린다.

 뜨거운 피가 흐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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