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저 바람이나 쐴까 하고 토비를 따라나섰다가 왠지 모르게 예전 아지트에 들렀다. 기껏 같이 와놓고 지금은 토비와 떨어져서 혼자 바위에 걸터앉아 전경을 바라보고 있다. 과거의 내게 일어났던 이런 저런 일들을 회상하면서.

 내가 처음 이곳에 왔던 날로부터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토록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도 눈에 보이는 넓은 숲과 암벽들은 그다지 달라진 바가 없다. 한때 나는 이 자리에서, 똑같은 풍경을, 누군가와 함께 바라보곤 했었다. 오빠, 그리고─.

 뒤적뒤적 목을 감싸고 있는 옷깃을 헤치고 익숙한 감촉의 끈을 잡아 밖으로 꺼낸다. 하얀 새가 먼 시야를 배경으로 흔들흔들 움직인다. 얼핏 보면 실제로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하다. 예전의 내가 올려다 보곤 했던 그때 그 모습과 같이.

 "하아─."

 이제는 습관처럼 자신을 다그치며 말한다. 다 지나간 일이라고. 한숨을 쉬어도 어쩔 수 없다고. 만약 데이다라가 오비토처럼 어딘가에 아직 살아 있다면 그 또한 찾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겠지만 정말 죽어 버렸으니 아무런 방법이 없다.

 데이다라가 죽었을 때, 아이가 죽었을 때, 토비와 비 마을에 도착했을 때도 나는 생각했다. 두 번 다시 그 자식 때문에 울지 않을 거라고. 그랬는데, 나도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닌가보다. 문득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뜨거운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계속 흘러내린다.

 "(킁)"

 토비는 어디 있는 거지. 슬슬 그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여긴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언제까지고 여기 있을 수는 없다. 계속 이러고 있으면 마치 내가 그를 잊지 못하고 아직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질 않는가. 그것만은 봐줬으면 한다.

 흘러내린 눈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소매로 깨끗하게 닦은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표정을 고친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하늘을 똑바로 응시하며 소리 없이 외친다. 내 연인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손에 잡히지 않는 구름 같았던 그 자식에게.

 난 전부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던 것 같아. 그러니까 오늘 여기에 전부 놔두고 갈게. 네가 날 놔두고 간 것 처럼 말야. 이제 더 이상 이 마음의 주인은 없어. 왜냐면 우리 둘 다에게 버려졌으니까. 이제 정말 안녕이야, 안녕.

 나 간다, 나쁜 자식아. 다음에 만나면 면상이 구겨지도록 패줄게. 그리고 내 뒷모습 잘 지켜봐. 넌 한 번도 본 적 없겠지만 돌아설 땐 나도 꽤 매몰차다고. 적어도 너와 한 가지 약속은 지킬 수 있겠네. 좀 뭐 같긴 하지만 난 토비와 러브러브할 거야.

 (…)

 휙─.

 토비의 손이 허공에 궤적을 그림과 동시에 하얀 새가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만약 아까 내 손으로 직접 저것을 던졌더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여 절벽을 향해 뛰어가는 자살 행위 따위는.

 덥석, 토비가 뒷덜미를 붙잡아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손이 멋대로 움직인다. 멋대로 펜던트를 던진 것은 둘째치고 지금 내 목숨줄을 쥐고 있는 토비에게 버럭 화를 내는 것도 모자라, 그의 몸에 상처를 입혀 버렸다.

 내가 방금 뭘 한 거지. 내가, 내가 토비의 손을 찔렀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져왔던 수리검으로. 그냥 평범하게 놔달라고 부탁했어도 됐을 텐데 그 순간에는 어째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난 지금 보기좋게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설마 찌를 줄이야…….'

 지금쯤 토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나. 어쩌면 '이 여자는 이제 쓸 수 없겠군…….'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계속 떨어지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이 온통 하얀 새 뿐이라는 것이다.

 데이다라를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물건. 그런 것은 이제 아무래도 좋았을 터다. 당당히 안녕을 외친지 얼마나 되었다고, 마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 같다. 그리고 후자는 미쳤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이제 죽는 수밖에 없나. 이대로 데이다라와 만나면 무지 쪽팔릴 텐데.

 죽는 것은 그래, 솔직히 지금도 죽지 못해 살고 있으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적어도 그의 앞에서 얼굴은 들 수 있어야 할 게 아닌가. 그래야 면상이 구겨지도록 패든지 말든지 하지. 복수는 커녕 도리어 비웃음을 당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아무리 뭐래도 데이다라가 그럴 녀석은 아니지만.

 무조건 살아야 한다. 그리고 분하지만 펜던트를 찾아야 한다. 그게 나에게 필요한지 어떤지는 좀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어쨌든 살아날 궁리를 하는 것이 먼저다. 가만보자, 나는 닌자이고, 지금 내게는 차크라가 차고 넘친다. 이 차크라로 절벽에 붙는다면, 떨어지는 것을 멈출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무사할 것이고, 운이 나쁘더라도 부상 정도로 끝날 것이다.

 치지지직, 나와 절벽 간의 마찰력 때문에 신발은 고사하고 발에 불이 날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살 수만 있다면 발이 나가떨어진다고 해도 딱히 불만은 없다. 그보다 펜던트, 망할 펜던트는 어디로 떨어졌지. 절벽 아래는 무성하게 자란 풀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바스락바스락, 녹음을 밟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토비겠지. 그 후 어떻게든 무사히 착지하긴 했는데 제대로 설 수 없을 정도로 발이 아프고 계속 수풀을 헤집고 다닌 무릎에서도 피가 난다. 예상은 했지만 워낙 넓을 뿐더러 풀이 빼곡하게 자라 있어서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괜찮아~? 굳이 그렇게 안 했어도 떨어지기 전에 주인이 열려서 살 수 있었을 텐데~."

 아 맞아, 내게는 자살방지용 주인이 있었지.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토비의 주인은 환술 말고도 여러가지 힘을 낼 수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추락하고 있는데 그런 나를 바라보는 토비의 모습이 꽤나 무덤덤해보였던 것 같다. 어차피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설령 죽는다고 해도 신경이나 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토비가 나를 데리러 왔다는 것은 최소한 내가 그에게 아직 쓸모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랑 여기로 온 이유는 전부 내려놓기 위해서였던 거 아냐~? 그 펜던트도 가지고 있어봤자 쓸데없이 지난 기억을 떠올릴 뿐이잖아~. 그냥 버려두고 가자~."

 토비의 말에는 동의하지만 찾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다. 그만둘 수 있었다면 진작에 했을 것이다. 이제 와서 그깟 펜던트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나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몸이 멋대로 움직인다.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린 것처럼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다.

 "~."

 뒤적뒤적-.

 "~~~."

 뒤적뒤적-. 뒤적뒤적-.

 분명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언제 뒤로 다가온 거지. 돌연 토비에게 팔을 붙잡혀 억지로 일으켜세워진다. 덕분에 이젠 팔까지 아프다. 기다리기 싫으면 먼저 가버리면 될 것을. 계속 찾겠다는 나와 그만두라는 토비 간의 실랑이가 벌어진다.

 짤랑─.

 토비가 앞으로 내민 손, 그 안에서 상당히 눈에 익은 물건이 미끄러져 나오더니 바람을 타고 흔들흔들 움직인다. 조금 전까지 내가 필사적으로 찾고 있던 하얀 새다.

 "어째서 그게 토비 너한테……."

 무심코 손을 뻗자 토비가 홱 하니 손을 뒤로 뺀다. 그와 동시에 하얀 새도 내게서 멀어진다. 넋이 나간 얼굴로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발끝에서부터 묘하게 소름이 돋는다. 어떻게 된 건지 이제 알 것 같다.

 "이번에도 환술이었어…? 나쁜 자식…! 나쁜 놈…! 돌려줘…!"

 다시 한 번 손을 뻗어보지만 토비에게는 무엇 하나 당해낼 수가 없다. 그의 커다란 키, 기다란 팔, 그리고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짓궂음…….

 "돌려줘…! 돌려달란 말이야…!"

 "너무 날뛰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찾을 수 없는 곳에 던져 버릴 거야~."

 어쩐지 카부토에게 브릿지를 빼앗겼을 때의 데자뷰를 보는 것 같다. 뱀에게 붙잡히지 않았다고 해도 그때라면 딱히 까치발을 들 필요가 없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굴욕적인 상황에 놓이고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두 손으로 토비를 마구 때려보아도 마찬가지. 결국에는 힘이 다 빠져서 쓰러지듯 그의 가슴에 기대어 버린다.

 "돌려줘… 부탁이야……."

 조금 전까지는 왠지 모르게 두렵고 불안했는데, 이제는 슬픔이 겉잡을 수 없이 북받쳐오른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더니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쏟아져나온다. 눈물의 절반은 그대로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절반은 토비의 옷을 적신다.

 "토비… 돌려줘… 그게 없으면… 살 수가 없어… 실은 나 아직… 데이다라를……."

 스치는 바람과 함께 나의 흐느끼는 소리가 침묵 속에 조용히 울려 퍼진다. 파르르 떨리는 어깨를 감싸오는 커다란 손. 토비가 조심스레 나를 자신에게서 떼어놓고는 손에 쥐고 있던 펜던트를 내 손에 쥐어준다.

 "."

 타다닷─.

 "……."

 내게 무언가 말하려 하는 토비를 외면한 채 몸의 방향을 돌려 정처없이 뛰어간다. 스스로도 이유를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토비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술래잡기 하는 거야~? 재밌겠네~."

 (…)

 아까 절벽 아래 있을 때는 하늘이 맑은 푸른색이었는데, 시간이 지나 어느덧 검푸른색이 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직 따라오고 있다. 길을 선택할 여유도 없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가파른 언덕을 거의 기다시피 올라가는데 몇 번인가 휘청 하고 굴러떨어질 뻔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도망가고 토비는 나를 쫓아온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나를 잡는 것은 일도 아닐 텐데, 마치 일부러 간격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끝내 내가 지쳐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려는 듯이.

 이래 봬도 사소리 오빠의 심부름으로 단련된 몸이라 달리기 하난 자신 있었는데,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뛰었더니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여기 저기 스치고 부딪혀서 그야말로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팔다리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바들바들 떨린다. 더는 무리다.

 조금 전에 내가 필사적으로 올랐던 언덕을 한 번에 뛰어올라 토비가 내 뒤로 바짝 다가온다. 한계라는 것을 알고 이제 술래잡기를 끝내려는 것인지, 눈 깜짝할 사이 따라잡혀서 그의 손에 팔을 붙잡혔다. 어떻게든 뿌리쳤지만 두 걸음을 채 떼지 못해 완전히 지고 말았다.

 털썩-. 쓰러지긴 거의 동시에 쓰러졌는데, 이길 수 없는 것은 힘 역시 마찬가지다. 아주 자연스레 위를 선점한 토비가 발버둥치지 못하게 내 양쪽 손목을 붙잡는다. 꽈아아악-. 역시나 뼈가 부러질 것 같다. 아마도 이 아픔을 마지막으로 나를 체념시키려는 것이겠지.

 "하아… 하아……."

 "~. 아직 선배를 사랑해~?"

 "하… 하아… 하아……."

 "여전히 펜던트를 손에 꼭 쥐고 있는 걸 보니 사랑하나보구나~. 죽어버리면 어쩔 수 없다는 거 알면서 왜 미련하게 굴어 바보 같이~. 내가 잊을 수 있게 도와줄게~. 난 네 애인이니까 뭐든지 할 거야~."

 마지막이 아닌 건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당황하는 사이 토비가 내 다리를 휘어잡는다. 내게 바짝 밀착해온다. 의식이 흐릿하고 눈앞이 캄캄하다. 제대로 저항 조차 하지 못한 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하며, 머지않아 내 안으로 들어오는 남자를 받아들인다.

 아픔을 비롯한 모든 감각이 평소보다 선명하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몸의 안쪽에서는 신음소리 한 자락도 새어나오지 않는다. 다만 여전히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같은 일을 반복한다. 기력이 다 빠져서 그런지 딱히 수치심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라고 해야 할까.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토비의 검은색 코트자락이 내 몸을 하늘로부터 가리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딱 붙어 있으니, 마치 토비가 나의 부끄러운 곳을 감춰주고 있는 듯한, 그에게 보호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떻게 봐도 억지로 당하는 상황인데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 펜던트 이리줘~."

 무심코 빼앗기지 않으려 손을 꽉 움켜쥐자 토비의 손길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래도 여전히 망설임이 남아 있는 내 손은 바들바들 떨린다.

 "내가 가지고 있을게~.  네가 원하면 언제라도 돌려줄 테니까~. 응~?"

 구부러진 내 손가락을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펴게 한 뒤, 끝내 그가 내게서 펜던트를 가져간다. 자신의 코트 안주머니에 넣고, 허전해진 내 손에 깍지를 낀다. 반대쪽 손도. 그와 관계 중에 이렇게 손을 잡는 것은 처음이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가감 없이 움직이고 있는데도 묘한 달달함이 느껴진다.

 "……."

 고개를 모로 돌려 토비와 이어진 손을 보니 씁쓸하지만 이제 확실하게 체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신도, 달달함을 느껴버린 자신의 마음도. 잘못 되었다면 잘못된 채로 좋다. 이렇게 망가졌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데이다라에게 보여주고 싶다.

 "… 날 봐……."

 두 사람의 손이 머리맡으로 다가와, 묘한 달달함이 더 뚜렷하게, 더 깊게,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날 생각해……."

 나지막이 속삭이며 나를 감싸안는 토비. 가면에 부딪히는 그의 숨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려온다.

 "그리고…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마……."

 꼬옥-.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작은 속삭임은 그야말로 연인의 그것처럼 들려온다. 정말 러브러브인가. 한동안 착각에 빠져 지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려서 충분히 자괴감을 느꼈지만, 그런 것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 관계는 애당초 토비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반증하듯 아주 자연스레 아픔이 쾌감으로 변해간다. 변명할 여지 없이 나 자신이 그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게 뭔지, 나도 잘 안다고는 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지난 날 데이다라와 함께 있을 때 느꼈던 감정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문득 그때의 기억 한 점이 떠올라 토비를 마주안는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뜨거운 뺨을 부비적거린다. 금발의 부드러운 머리카락 대신 차가운 천의 질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도 썩 나쁘지 않다.

 "에… ……."

 "토비 너야말로……."

 반쯤 넋이 나가버린 나에 비해 태연하던 토비에게도 이제는 여유가 없다. 거친 숨소리와 움직임, 감당할 수 없는 쾌감에 두 눈을 질끈 감는다. 그와 손이 이어져 있지 않았다면 몸이 진작에 부서졌을 것 같다.

 "너야말로 날 두고 가지 마……."

 "……."

 토비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딱딱한 가면의 감촉. 그 와중에도 머리를 부비적거리는 습관은 어디 가질 않는다. 귀여워서 웃음이 나올 것 같지만 실제로 그럴 여력 따윈 없다. 점점 절정이 다가와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미안…….' 그것이 조금 전에 대한 대답이었는지, 아니면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욕망 때문에 사과를 한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나의 가슴을 파고들어 내 몸과 마음을 휘어잡는다. 마침내 거친 움직임이 멈추고 머릿속이 하얗게 물든다.

 "하아… 하아……."

 나의 가장 깊숙한 곳에 뜨거운 것이 흐른다. 뜬금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토비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안으면서 그런… 뭐랄까, 보호물을 사용한 적이 없다. 심심하면 애 다섯 시모네타를 하던 게 설마하니 진심이었을 리는 없고… 제멋대로인 것은 언제나의 일이라고 해도 문득 그가 얄미워진다. 그러한 감정을 너무나도 간단히 사라지게하는 자신의 마음도 마찬가지로 얄밉다. 그의 머리와 등을 상냥하게 쓰다듬어주는 자신의 손에는 완전히 탄복했다. 그 동안 나쁜 남자들에게 하도 시달렸더니 얄미운 사람에게 애착을 가지는 이상한 버릇이 생겨버린 것 같다. 아니면 그냥─. 평범하게──.

 "토비……."

 "응~?"

 "예전에 네가 그랬잖아… 같이… 새로운 세상으로 가자고… 그거 아직 유효해…?"

 "물론이지…  너만 좋다면……."

 마음을 가다듬으며 줄곧 놓지 않고 있던 손을 다시 한 번 꼬옥 붙잡는다. 그때는 내가 먼저 놓아버렸지. 어쩌면 그때부터 우리는 어긋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조금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바로잡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한때 내가 사랑한 사람들과 함께했던 이곳을 버려야만 한다고 해도, 그러한 선택이 업보가 되어 죽게 된다고 해도 상관없다.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토비가 내 옆에 있어줄 거라고 믿으니까.

 "그 세상에서는 토비 네가 가면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얼굴 무섭지 않아~? 익숙해진다고 해도 여전히 보기 좋은 것은 아니잖아~."

 "애당초 그때 봤던 게 토비의 진짜 얼굴이 맞는 거야…? 요즘 껏하면 환술로 장난치는 게 수상해… 혹시 그것도 환술이었던 거 아냐…?"

 "글쎄~. 그렇다고 해도 실제 얼굴과 크게 다르진 않을 거야~. 사고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하하핫~."

 "많이 아팠어…?"

 쓰담쓰담-. 가면으로 덮여 있지만 그래도 토비의 뺨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을 어루만져준다. 그리고 묻자, 그가 내 손에 마찬가지로 부비적거리며 대답한다.

 "으응, 진짜 아파서 죽을 뻔했어~."

 평소와는 다른 느낌으로 토비의 말이 내 가슴을 찌른다. 그리고 지나간 자리에 짙은 안타까움을 남긴다.

 "하지만 아픈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혼자 남겨지는 거야~."

 혼자가 되는 것의 두려움은 지금의 내가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토비가 느꼈던 것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의 마음을 잘 알기에 이보다 더 가슴이 아플 수가 없다.

 상처가 흉터로 변하는 동안 아픔에 무뎌지고 무뎌져서 지금쯤 토비에게는 그때의 감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는 거겠지. 다만 아픔이 남긴 두려움은 앞으로도 계속 품고 살아가야만 한다.

 문득 지난 날 토비에게 무엇이 두려운지 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토비는 '전부'라고 대답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두렵다고. 그 만큼 많은 상처와 아픔이 그를 밟고 지나갔다. 그런 세상을 버리고 싶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내가 토비를 떠나면 너는 다시 혼자가 될까…?"

 "모르겠어… 생각하고 싶지 않아……."

 아이처럼 내 어깨를 파고드는 토비를 어느 때보다 더 다정하게 쓰다듬어준다. 그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지만 어쨌든 이것은 나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행동이다.

 나를 감싸안은 토비의 팔에 놓지 않으려는 듯한 힘이 들어가서 은근히 아프다. 서로 겹쳐진 채 누워 있으니 무겁다. 그 힘과 무게감이 두려운 듯하면서도 편안한 것은 어째서일까. 지금은 무엇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토비와 이어져 있는 감각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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