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 마을에 온 뒤 외출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 동안 마음을 추스르느라 다른 것은 생각할 여력이 없었는데 어쨌든 줄곧 이곳에 계셨던 페인 씨와 코난 씨에게 한 번쯤은 인사를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른 오후가 되어 집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봤던 게 언제였더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내가 코난 씨의 심부름을 마치고 잠깐 비 마을에 들렀던 때였을 것이다. 그땐 데이다라가 살아 있었고 나도 그를 위해 아카츠키의 일을 간간히 돕고 있었으니까. 멤버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가면서 아카츠키 내에도 묘하게 어수선한 분위기가 맴돌고 있다. 페인 씨는 듬직한 남자니까 그렇다치고 코난 씨는 잘 지내고 계신 걸까. 의미 없는 걱정이라는 생각에 문득 피식 웃음이 터져나온다. 코난 씨는 보통 여성이 아니다. 나처럼 연약하고 행동력 없는 그런 여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녀라면 분명 여전히 아름답고 도도한 얼굴로 비에 젖은 전경을 바라보고 있겠지. 늘 내가 동경했던 그 모습 그대로. 이 시간에는 방에 머물고 계시려나. 간단히 먹을 간식거리를 만들어왔는데 맘에 들어하실지 모르겠다. 언제나 맛있다고 말씀은 해주시지만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으셔서──. 그런 생각하다가 저도 모르게 노크를 잊고 말았다. 덜컥-. "……." 문을 열자마자 시야에 비치는 광경에 저도 모르게 넋을 놓았다. 코난 씨는 여기 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다. 책상 위에 쓰러져 있는 그녀 위로 남자가 있다. 만약 그 남자가 페인 씨였다면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며 정중히 사과하고 문을 닫았겠지만 그는 페인 씨가 아니다.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오늘 아침에도 침대 위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사람이다. "이런~. 바람의 현장을 들켜 버렸네~." 노크 없이 문을 열었다가 엄청난 광경을 목격해 버린 나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광경을 내보인 코난 씨 역시 당혹스러워 보인다. 남자에게 붙잡힌 손목을 빼내려 해보지만 그는 놓아주지 않는다. 코난 씨의 저런 흐트러진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아마도 그녀는 조금 전 내가 자신의 방으로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겠지. 하지만 남자는 경우에는─. 토비라면 분명 내가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순서를 따지자면 저쪽이 바람인가~. 어쨌든 지금은 곤란하니까 나중에 얘기하지 않을래~?" 가슴이 조용히 타들어간다. 이 아픔은 내 삶에서 무언가 어긋날 때마다 나를 괴롭혀왔다. 이렇게 또 하나가 어긋나는 것인가. 이미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데. 이제는 이런 상황이 별로 슬프지도, 화가 나지도 않는다. 늘 그렇듯 허망한 기분이 들 뿐이다. 뒤돌아서 문을 닫은 뒤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리고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만 속으로 생각한다. 오늘 아침 토비가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를 건넸을 때 내가 어떤 반응을 보였더라. 아아, 나도 그에게 같은 말을 돌려주었다. 드물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속이 울렁거린다. 가슴이 타고 남은 잿가루가 밖으로 솟구쳐 나올 것만 같다.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다가 홱 하고 방향을 돌려 어두운 골목길 안으로 들어간다. 시원하게 토하고 싶은데 가슴을 움켜쥐면 그저 꾸우우욱 하고 짓눌리는 듯한 아픔이 느껴진다. "윽……."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니 바닥에 고인 흙탕물이 하얀 옷에 스며든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울고 싶지 않다. 정말 울고 싶지 않은데 가슴이 말을 듣지 않는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과 뒤섞여 떨어진다. 나의 괴로움과 함께. "으윽… 윽… 으으윽……." 행여 내 울음소리가 하늘에 들릴까, 그에게 들릴까,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오열을 삼킨다. 어쩌면 이곳이 내가 머무르게 될 마지막 장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나를 비웃는 듯한 천둥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정말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 "오비토……." 지금 어디 있어…? 난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나 좀 구해줘……. 여기서 나가게 해줘……. (…) 토비 : 한 번 더 분명히 말해두마. 만에 하나 나를 배신한다면, 네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해주겠다. 이곳에서의 네 삶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절망밖에 남지 않을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끝내 저주받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코난 : 도구인 난 그렇다치고… 왜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거지…? 토비 : 그녀 또한 너와 다를 것이 없다. 내게 이 썩어 빠진 세상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훌륭한 도구지. 그리고 도구는 깨끗이 닦아내기만 해서는 길들여지지 않아. 코난 : 당신의 눈에 인간들은 전부 똑같이 보이는 거야…? 토비 : 그래, 이 세상은 마치 거대한 쓰레기 처리장 같아. 이따금씩 그 안에서도 쓸만한 것을 찾게 되지만 그래봤자 쓰레기일 뿐이지. 적당히 이용하다 버린 다음 새것을 구할 거야. 그게 이 세상에 떨어진 것들의 정해진 운명이잖아? 코난 : 뭐라고 해도 결국에는 당신도 인간… 인간은 상처를 입어… 상처를 입은 인간은 나약해지지… 자신은 상처입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ㅇ… 크흑…! 꽈아아아악─. 토비 : 그 무엇도 나를 상처입히지는 못해. 왜냐면 내 마음은 이미 여길 떠났거든. 그저 즐기고 있을 뿐이라고.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로 계속 상처입어가는 너희들을 지켜보면서 말야. 코난 :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싶다는 생각은… 자신이 상처받기 두렵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어리석은… 남자 같으니……. 토비 : 너는 도구 주제에 말이 너무 많아. 그리고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아 날 피곤하게 만들어. 난 지금 아주 지쳐 있다. 사람은 지치면 종종 자신의 물건을 부수기도 하지. 특히 너 같은, 얼마든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물건에는 아무런 애착도 없다. 코난 : 그녀는 달라… 생각해봐… 너는 동료를 죽이면서까지 그녀를 손에 넣었어……. 토비 : 데이다라는 배신자였다. 망가진 도구였다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지 않나. 코난 : 도구에게 질투하는 인간이라… 우습기 그지 없군……. 토비 : 질투라고…? 코난 : 당신이 그녀를 손에 넣었을 때… 솔직히 안심했어… 만약 우리가 가는 이 길이 잘못된 길이라면… 그 만약을 위해 탈출구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잖아… 난 그게… 당신의 가슴 속에 있다고 믿어……. 토비 : ……. 코난 : 당신의 말대로 이 세상은 망가진 것들 투성이야… 누가 상처를 입든… 무엇이 찢기고 부서지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 근데 그거 알아…? 이따금씩 당신은 그것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어하는 커다란 아이 같아……. 토비 : 마치 죽고 싶다는 듯이 떠들어대는군. 코난 : 난 이 세상에 옳고 그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당신의 말도 맞고… 적의 말도 맞아… 그러니… 어느 쪽에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상관없어……. 토비 : 너의 마음도 이미 이곳을 떠난 거냐. 코난 : ……… 토비 : 어렸을 때 너도 성냥팔이 소녀라는 동화를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겠지. 너는 나를 배신하지 마라. 그럼 적어도 그 소녀처럼 마지막 불씨에서 꿈을 볼 수 있게 해줄 테니. 코난 : 만약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겠지… 그래… 그 점에 대해서 만큼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토비 : 넌 내 것이다. 내가 널 버릴 수는 있어도 네가 날 버릴 수는 없어. 그걸 가슴에 새겨넣고 잊지 마라. 코난 : 역시… 당신은 커다란 아이야……. 토비 : 망할 계집……. 토비 : (아무래도 내가 널 너무 오랫 동안 곁에 둔 것 같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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