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도 오늘 많이 힘들었나보구나~. 응, 이리와~.”
쓰담쓰담. 토비의 커다란 손이 주저없이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는다. 따뜻함이나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의 검은 장갑에 스며든 차가운 기운, 그리고 거친 느낌이 이따금씩 생각날 때가 있다. 특히 온종일 집안일에 시달리거나 해서 고단한 날엔 그렇다. 이게 은근히 힐링 된달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듯하다. “기분 좋아보이네~.” 내가 그렇게 나른한 얼굴을 하고 있었나. 서둘러 표정을 고치고는 시선을 모로 향한다. 문득 쓰담쓰담 하는 움직임이 멈추고 토비가 내 머리카락을 모아서 뒷쪽으로 쓸어넘기는 듯하더니 하나로 묶듯이 움켜쥔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지그시 바라본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문득 깨닫고보면 지금 내 모습은 어린 시절의, 그러니까 포니테일을 하고다니던 시절의 나와 같다. 그때에 비해 머리카락의 길이가 상당히 짧긴 하지만. “ 넌 포니테일이 잘 어울릴 것 같아~.” “에… 그래…?” “그런데 묶고 있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뭔가 이유라도 있어~?” “데이다라가 짧은 머리카락의 여자를 좋아하는데, 솔직히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거든. 자르긴 싫고 묶으면 도리어 긴 느낌이 날 것 같아서 그냥 풀고 있는 거야. 그리고 실은…….” “실은~?” “그때 사진에 있던 여자애 기억나? 린이라고 하는데, 오비토가 좋아하는 여자애였어. 당시에 오비토에게는 린이 가장 이상적인 여성이었던 것 같아. 예전의 나는 그런 린을 닮고 싶었어. 그래서 머리 모양도 길었던 것을 짧게 자르고 그녀와 똑같이 한 거야.” “그랬구나~. ” “오비토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말야… 하하하…….” “이렇게 좋아한다는 티를 팍팍 내는데 정말 몰랐던 걸까나~. 알면서 모른 척한 걸지도~.” “물론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냥 몰랐던 거라고 생각할래…….” “왜, 아직도 생각하면 슬퍼져~?” “응…….”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은 흐릿하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이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도리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씁쓸한 마음에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손끝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머리카락이 스르르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토비의 손이 귓가로 다가와 그곳을 어루만진다. 묘하게 야릇한 손길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만 말야~. 나라면 널 무시하지 않았을 거야~.” “에…?” “적어도 3회 이상은 해본 뒤에 진지하게 생각해ㅂ…” 퍽-!!! 두 손으로 제스츄어를 취해가며 아무렇지 않게 시모네타를 내뱉는 토비의 복부를 있는 힘껏 가격한다. 이윽고 ‘커헉!’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내 어깨 위로 힘없이 쓰러진다. 부들부들. 단단한 근육밖에 느껴지지 않는 배인데도 불시에 맞으니 아프긴 한가보다. 그러게 쓰담쓰담까지만 했으면 좋았잖아. “사랑이라는 게 꼭 마음부터 시작하는 건 아니잖아~… 몸부터 시작할 수도 있지~…….” “그걸 잘못된 사랑이라고 하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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