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비마을에 왔을 때 나는 매사에 의욕이 없었다.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는 이유조차 몰랐고, 느즈막이 눈을 뜨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런데 수행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체력이 붙고, 별안간 사람은 일찍 일어나야 건강해질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도 부지런히 일어나 토비를 배웅했다. 입맛은 없었지만 아침을 먹었고, 집안일을 했고, 뒤뜰로 나가 어제의 수행을 반복하고 다시 집안일을 했다. 둘이서 사는 데도 집안일이 보통 아니구나. 평범한 주부들에 비하면 (남편이 밥을 안 먹는)나는 한결 수월한 편이겠지만 애당초 집안일은 하고자 마음 먹으면 끝이 없는 것 같다. 나름 고된 하루를 보내고 짧은 티타임을 가진 뒤 소파 위에 널브러졌다. 피곤해서인지 뭔가 달달한 것이 땡긴다. 과자나 케익 같은 디저트는 아니다. 좀 더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닭튀김 같은. 부스럭─. 일부러 인기척을 내어 놀라지 않게하려는 것은 토비가 돌아왔음에 틀림없다. 몸을 일으켜 보니 오늘은 그의 손에 봉투가 하나 들려 있다. 오는 길에 가게에 들렀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어젯밤에도 토비의 팔을 베고 누워서 닭튀김이 먹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잠결에 내뱉은 말이고 토비도 눈을 감고 있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여간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설마하니 닭튀김을 직접 사올 줄은 몰랐다. "맛있는 냄새!" 벌떡 일어나 봉투에 달려들다 어서 오라는 인사도 잊었다. 뒤늦게 깨닫고는 얼굴을 조금 붉히며 남편과 마주보았다. 그런데 웬걸, 토비가 웃고 있다. 그의 눈동자에 따뜻한 미소가 비친다. 뿐만 아니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라고 다정하게 속삭이는 듯하다. "닭튀김이야?" "그렇다만, 열어봐라." 소파로 돌아가 앉아서 봉투 안의 용기를 꺼냈다. 솔솔 풍겨오는 것이 실로 오랜만에 맡아보는 고기냄새다. 데이다라와 사귀는 동안 고기는 하물며 고기가 들어간 음식까지 전부 멀리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대체 이게 얼마만의 닭튀김이란 말인가. 치느님 하나에 피로가 싹 가시며 행복감이 밀려온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내가 먹고 싶었던 닭튀김은 달달한 양념에 버무린… 흔히들 말하는 '닭강정'이었다. 토비가 사온 노말한 닭튀김과는 다르다. 이러어어언 후라이드! 기분에 따라서는 이쪽도 감사하지만, 오늘은 굉장히 아쉽다. "가게의 메뉴판을 보니 의외로 종류가 많더군. 칠리맛이니 갈릭맛이니… 내가 제대로 산 게 맞는지 모르겠다." "으응… 고마워……." 어쨌든 기쁘니까. 쓴웃음을 지으며 봉투 안의 물건을 마저 꺼내는데… 이것은 양념?! 작은 통에 양념이 들어 있다!! "아, 그건 옆에 보이길래 같이 넣어달라고 했다." 부먹과 찍먹은 엄청난 차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야. 내 남편 센스 대박.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정말 고마워, 잘 먹을게." 토비는 오랫동안 병량환으로 식사를 대체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조금 무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뭐 어떠랴. 이만하면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어떡해, 너무 맛있어-." "그럼 자주 사다주마. 다음 번에는 빨간 녀석이 어떠냐. 내가 보기에 색깔이 있는 것 중에는 빨간 게 제일 맛있어 보이던데." 이러어어어언 센스쟁이! 감격에 겨워 토비를 확 끌어안는다. 분명 내가 안았는데 단단한 두 팔이 감싸오며 반대가 되어버렸다. 널직한 품에 안겨 헤실헤실 웃자 뭐가 그리 좋냐는 듯이 실소가 들린다. 거친 느낌의 곰발바닥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이제 입맛이 없다고 끼니를 거르지 마라. 나와 했던 약속은 앞으로도 계속 지켜야 한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얘기하고." "네, 여보-." 입속에 커다란 닭튀김이 들어 있어서 열심히 오물거리며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탐스럽게 부풀어진 것이 보기 좋은 듯 토비가 내 뺨을 장난스레 꼬집는다. "나중에 우리 애기가 먹고 싶다는 것도 사다 줄 거지?" "무얼, 그때가 되면 나는 다른 일 다 제쳐두고 닭의 꽁무니를 쫓고 있을지도 모른다." 푸핫, 내가 먼저 웃음을 터뜨리고 토비도 피식 웃는다. 여전히 거친 느낌의 곰발바닥. 그렇지만 손끝을 살짝 세워서 살살-, 어느 때보다 사랑스러운 쓰담쓰담을 받았다. |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