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다시 만난 이후 내 삶을 통틀어 사랑한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그것이 깊은 의미를 가졌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조금은 아껴 두어야 하는 것 아니냐."

  "예전에는 그랬지. 하지만 아끼고 아끼다 결국 말할 수 없게 되면 무슨 소용이야."

  한 번 아픔을 겪고나니 자신의 감정을 곧바로 표현하지 않으면 괜스레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데이다라와 사귀던 시절 그에게 '사랑해'라고 말했던 기억이 이제 와서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닭살을 떨어놓고 이렇게 말하면 토비는 의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말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

  "연애 초반부터 너무 자주 말해서 미안. 그렇지만 말하고 싶은 걸 어떡해."

  어찌 보면 자기 만족이다. 마음속으로는 토비도 기뻐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만약 부담스럽다고 생각한다면 적잖이 아플 것 같다. 데이다라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내가 더 많이 사랑한다는 점은 변함없는 것일까.

  "푸훗, '연애'는 뭐고 '초반'은 또 뭐냐. 훨씬 이전부터 몸을 섞는 사이였잖아. 뭐, 대부분 억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을 가볍게 여기지 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 너의 사랑이 너무 뜨거워서 얼마 못가 식어 버리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다른 여자라면 몰라도 나에 대해서는 그런 걱정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 너도 알잖아, 나 20년 넘게 짝사랑했고, 애인한테 버림받은 충격으로 아이까지 잃었어. 너무 사랑해서 밉다는 기분은 알아도 사랑이 식는다는 기분은 뭔지 모르겠어. 지금까지 줄곧 그랬으니까 앞으로도 아마 그럴 거야."

  "나의 세계에서 너는 아주 드문 존재다. 바로 그런 점에 무심코 마음을 놓았다가 뒤늦게 이성을 되찾지. 아무리 '사랑해'라고 말해도 떠나갈 것은 결국 다 떠나간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한심하지만, 나는 더 이상 '완전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너에게 조차 말야."

  "……."

  어렸을 때는 내게도 여러 가지 욕망이 있었다. 만약 사랑 보다 강력한 욕망이 생긴다면 사랑을 버리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떨까. 오빠가 죽고, 애인이 죽고, 친구가 죽고, 남은 것은 상처투성이 마음뿐이다.

  아무것도 필요없으니까 곁에만 있어줘.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유별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세계에서 자신은 단 한명의 소중한 사람만을 남겨 두고 있는, 그래서 위태로운, 말하자면 조금 더 불쌍한 인간이다.

  "있잖아, 토비… 이렇게 말하면 나를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반은 농담이라고 들어도 좋은데… 네가 지금 당장 '같이 죽자'고 말해도 난 기꺼이 따를 거야. 어차피 네가 죽으면 나도 끝이니까."

  혼자가 될 바에야 차라리 바람둥이를 끼고 사는 게 낫다. 차마 웃지 못할 얘기다. 그래도 내 생각은 변함없다. 토비가 다시 화류가에 발을 들인다 해도 죽었음 죽었지 헤어지는 건 무리다. 주먹을 날려 가면을 아작내든지 어떻게든 분풀이를 하면 된다. 며칠 외박하는 게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무언가에 이끌리듯 터벅터벅 걸어가 토비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아아, 그래, 이건 좀 집착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릇의 파편을 밟아 피가 나오는데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도 어찌 보면 집착이었다. 사랑과 집착의 경계가 어디쯤에 있는지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다. 단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다정한 손길이 좋다. 눈을 지그시 감고서 잠들고 싶다.

  "데이다라는 너와 이어지는 것에 집착했지. 혈연 같은, 그 이상의, 절대 끊을 수 없는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어. 솔직히 그때 속으로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글쎄, 나도 별반 다르지 않군. 널 이렇게 안고 있으니 마치… 네가 나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 천천히 고개를 들어본다. 진실된 말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어째선지 그림자 속의 검은 눈동자에 쓸쓸함이 비친다.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 걸까. 잠시 방황하는 듯하던 마음이 다시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그래… 네가 있으니… 완벽한 세상은 오지 않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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