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뭔데~? 들어줄게~.”

 “엣, 드, 들어보지도 않고…?”

 “ 네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그 사진과 관련된 것 아니야~? 예를들면 사진 속 남자아이로 변신해달라든가~.”

 “…….”

 아무리 내가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편이라지만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쩜 그렇게 정확히 꿰뚫어볼 수가 있지. 토비 녀석 영악한 만큼 눈치도 빠르구나. 앞으로 비밀을 가지고 있을 때는 그의 앞에서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정말 해주는 거야…?”

 “ 너니까 해주는 거야~. 사진 이리 줘봐~.”

 친구들의 사진을 건네주자 그것을 잠시 바라보는 토비. 푸른 잎사귀의 녹황색으로 주변이 온통 물들어 있어 잘 보이지 않는 걸까. 세 사람 중 누구 하나 빠짐없이 눈에 담고 있는 듯하다.

 이윽고 내게 사진을 돌려주고는 토비가 두 손을 모아 인을 맺는다. 퐁- 하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라지니 어느덧 리트리버 같은 덩치는 사라지고 작은 소년이 시야에 들어온다. 숲의 조명에 약간 묻히긴 했지만 푸른색의 머리카락, 푸른색의 복장을 한 어린 시절의 오비토다.

 “안녕~? 너의 첫사랑 오비토야~.”

 “ㅍ하하하핫…!”

 두근두근 긴장하고 있는데 토비의 첫사랑 드립 때문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근처에서 들려오는 시냇물 소리와 함께 가슴에 흘러드는 그리움에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오비토에게 천천히 손을 뻗는다. 그런데.

 “잠깐, 어째서 난쟁이 신발을 신고 있는 거야?”

 끝부분이 뾰족하다 못해 달팽이 처럼 말려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신발을 보고는 황당한 목소리로 묻자, 오비토 아닌 오비토의 모습을 한 토비가 대답한다.

 “아니~. 숲속이니까 이런 것도 어울리지 않을까나 하고~.”

 “어울릴 리가 없잖아! 신발만 독보적으로 튀어서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다고!”

 “그치만~. 사진을 봐도 무릎 아래쪽으로는 잘려서 보이지 않으니 알 수가 없는걸~.”

 “평범한 파란색 샌들이야! 멋대로 이상한 상상하지 마! 오비토는 이렇게 패션꽝이 아니라고!”

 토비가 뒤통수를 긁적이고는 다시 인을 맺으니 퐁- 하고 신발이 올바른 모양으로 바뀐다. 이제 만족스럽긴 한데, 대신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토비는 평화로이 쉬고 있다가 내 뜬금없는 부탁을 들어주고 있는 것인데, 순간 너무 황당해서 나도 모르게 그를 다그치는 듯이 말해 버렸다.

 “그런데 토비 너 변신술이 정말 능숙하구나. 뒷모습도 잠깐 보여주지 않을래?”

 아까보다 공손한 느낌으로 부탁하자 토비가 천천히 몸의 방향을 돌려 앉는다. 그런데.

 “잠깐! 어째서 등쪽 전체가 시스루인 거야!”

 “아니~. 섹시한 반전을 주면  네가 기뻐하지 않을까 하고~.”

 “기뻐할 리가 없잖아! 앞쪽은 오비토인데 뒷쪽은 그냥 정신나간 취향의 변태라고!”

 기억을 더듬어가며 토비에게 여자저차 설명을 한 끝에 비로소 뒷모습도 올바르게 바뀌었다. 그래도 왠지 불안한 마음에 오비토의 전신을 한 번 더 훑어보았으나 이제는 정말 내 기억속에서 걸어나온 듯한 그의 모습이다. 그런데.

 “잠깐! 코 파는 거 그만둬!”

 “좋아하는 남자애니까 뭘 해도 귀여워보이지 않아~?”

 “그런 문제가 아니라! 오비토는 그런 지저분한 짓 안 한단 말이야!”

 “거야 모르지~.”

 나른한 목소리로 태연하게 대답하는 토비의 손가락을 황급히 낚아채고는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닦는다. 토비가 그랬다면 그냥 그러느니 했겠지만 오비토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도무지 봐줄 수가 없다. 그래도 다행히 여러가지로 위험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하마터면 내 추억에 불필요한 이물질이 남을 뻔했는데.

 “정말이지,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두근두근 하는 설레임을 차분히 느끼게 해줘.”

 “…….”

 거의 애원에 가까운 내 부탁을 듣고는 조금은 진지하게 어울려줄 마음이 생겼는지, 지금까지 졸린 듯한 눈을 하고 있던 토비의 표정이 사뭇 달라진다. 더 이상 코를 파는 등의 이상한 짓도 하지 않는다.

 “고마워. 잠깐만 그렇게 가만히 있어. 그거면 충분하니까.”

 잠시 흐트러졌던 마음을 가다듬고서 오비토의 모습을 다시금 눈에 담는다. 이번에야말로 어느곳 하나 빠짐없이, 천천히. 방금 전에 그런 모습을 봤는데도 언제 그랬냐는 듯 가슴이 뛴다.

 아까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토비의 변신술이 생각했던 것보다 능숙하다. 마치 진짜 오비토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얼굴이 조금씩 뜨거워지기 시작하고 가슴이 괴로워진다. 저도 모르게 그리움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는 내가 조금은 우스워 보일 법도 한데, 의외로 토비는 그 어느때보다 더 얌전하다. 손을 뻗어 그의 뺨을 감싸니, 그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인다.

 “데이다라 선배가 너를 볼 때는 이런 기분일까나~.”

 “응?”

 의아한 눈빛으로 토비를 바라보니 그가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살며시 모로 향하며 뒤통수를 긁적인다.

 “아, 이 녀석 정말 나를 좋아하는구나~ 라는 느낌~.”

 “(발그레)”

 오비토에게 수줍기도 하고, 토비에게 그런 얼굴을 보인 것이 부끄럽기도 해서, 지금쯤 빨갛게 변했을 뺨을 은근슬쩍 손으로 감추고는 잘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숙인다. 그러자 문득 토비가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린다.

 “허그하자, ~.”

 “허, 허그…?”

 토비와도 정면으로 하는 것은 처음인데, 지금 그의 모습으로, 오비토의 모습으로 허그를 한다고 생각하니 순간 긴장해서 딱딱하게 굳어 버리고 말았다. 가슴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른 템포로 뛰어댄다.

 안 되는데, 위험한데, 토비가 가만히 있는 내게 다가와 먼저 나를 끌어안는다. 꼬옥. 그야말로 꿈속에서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로.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오비토가 나타나 ‘오랜만이야’라고 내게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어떡하지,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상대는 진짜 오비토가 아니라 그의 모습으로 변신한 토비인데, 좀처럼 착각으로부터 헤어나올 수가 없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빠진다. 빠져 버린다.

 “~.”

 “?”

 “오비토가 보여~?”

 “에…?”

 “오비토는 너를 보고 있는데~.”

 토비의 말에 의아한 표정이 되어 주변을 한 번 둘러본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문득 평소와 다른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토비가 내 귓가에 속삭인다.

 “귀엽구나, 너.”

 움찔 하고 떨리며 문득 심장의 템포가 변한다. 뭐지 이 기분은. 조금 전의 고동이 아련한 추억에 향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고동은 그것과 확연히 다른 뜨거운 욕망에 향한 것과 같다. 어째서 갑자기 그런, 조금 전 토비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게 들려왔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낮은 숨소리와 함께 큭큭 웃으며 토비가 내게서 멀어진다. 나를 놀리고 있는 건가. 정말 이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이윽고 퐁- 하며 변신술이 풀린다. 고개를 들어 본래 그의 모습을 마주하는데-

 두근두근. 두근두근.

 이건 말도 안 된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이 미친 듯이 뛰어댄다. 이런 건 이상하다.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 나 배고파~.”

 “토비 너는… 딱히 먹지 않아도 되는 몸이잖아…….”

 “응~. 그치만 지금은 왠지 네가 만들어주는 걸 먹고 싶어~.”

 “알았어… 뭐가 좋은데…?”

 “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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