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집에 없으면 아무도 음식을 찾지 않으니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 냉장고를 열었을 때 놀라울 정도로 텅- 비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장을 보러 다녀왔다.

  처음에는 당분간 필요한 것들만 간단히 채워 넣을 요량이었는데, 이것저것 고르다 보니 양이 많아져서 매우 풍성한 느낌이 되었다.

  이제 아이들도 없는데 이 많은 식재료를 다 어떡한담. 토비는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첫날에는 오랜만이었기에 함께 먹었지만 두 번 세 번 씩이나 나의 식사에 굳이 어울려줄 필요는 없다.

  그래도 어쩐지 아쉬운 기분이 드니까, 음식이 남으면 아까우니까, 맛과 모양을 제대로 신경써서 토비의 몫까지 만들었다. 나 혼자뿐이었다면 아마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째깍째깍 시곗바늘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은 꽤 늦는구나. 홀로 식탁 앞에 앉아 토비가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따금씩 가슴의 주인으로 손을 가져가기도 하며.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평소였다면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이 아닌가.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이 차갑게 식었다. 먹는다면 전부 데워야겠지. 힘들게 만든 것이 본연의 매력을 잃어 버려서 속상하다.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둘이서 알콩달콩 식사하기는 글렀으니 그만 먹자.

  "다녀왔다."

  등뒤에서 스스스 하며 공기의 흐름이 묘하게 뒤틀리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입에 넣으려던 수저가 그대로 멈추고, 기다림으로 지쳐 있던 가슴에 희열이 번진다. 벌떡 일어나 뒤돌아서자 토비가 식탁 위의 음식들을 보고 조금 머쓱한 듯 피식 웃는다.

  "그거, 너 혼자 먹기엔 많은 것 같은데."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는 잠깐의 틈도 없이 나로 하여금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들었다. 토비가 성큼성큼 걸어와서 나를 와락 끌어안는다. 더 이상 뭐라 해야 할지. 쓰담쓰담 만져주는 손길에 눈물이 글썽일 정도의 행복감을 느낀다.

  "왜 이제야 왔어…?"

  혼자 남겨지는 것에 새삼 두려움이라도 느끼는 것인지 나도 모르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토비가 작게 탄식하더니 '이거야 원…' 하며 중얼거린다. 그리고 글썽이는 눈을 슥 닦아주며 내게 대답한다.

  "어떤 말뼈다귀 같은 자식이 성가신 물건 하나를 들고 나타나서 계획에 차질이 조금 생겼다."

  "성가신 물건…? 계획…?"

  토비가 대답하기를 주저하며 내 뺨을 천천히 쓸어내린다. 하얀 가면일 때는 분위기 때문에 이따금씩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를 향한 그림자 속의 눈이 부드러운 미소를 띤다.

  ​"때가 되면 전부 얘기해 줄 것이다. 너는 당분간 이대로 마음 편히 지내라. 집에서 책 읽고, TV 보고, 낮잠 자고… 특별히 어려운 일을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내 옆자리를 지키면 돼. 그래 줄 수 있겠지."

  나도 토비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 말하며 당장이라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싶었지만 누군가 들으면 비웃음만 살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돕는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이래 봬도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훈련을 받아온 어엿한 닌자이지만, 오빠가 죽은 뒤로는 내게서 그를 빼앗아간 '닌자의 세계'라는 것이 무섭게 느껴져서 수리검을 손에 쥐는 일이 그다지 없었다. 가사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정보를 수집하러 다니거나 아지트에서 멤버들을 기다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뜩이나 약한 몸에 두려움까지 생겨서 이제는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토비가 밖에서 얼마나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른다. 오빠부터 시작해 멤버들이 하나둘 씩 떠나며 아카츠키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지만 어쨌든 토비는 변함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온나라가 전시상황과 같으니 아마 전보다 훨씬 위험한 임무일 것이다.

  더 이상 아카츠키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단언한 이후로는 토비에게 임무에 대해 묻지 않았고 아예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지만─ 토비의 말대로 그냥 옆자리를 지키기만 해도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토비가 크게 다치거나 만에 하나 죽는다면 나도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이번에는 견뎌낼 자신이 없으니까── 그냥, 죽이되든 밥이되든 일단 뭐라도 하고 싶다.

  집에서 안락함만 바라고 있는 나약한 자신 보다는, 넘어지고 깨지고 굴욕을 당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다. 슬슬 두려움을 떨치고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여행하는 중에도, 돌아온 뒤로도, 몇 번이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토비, 가끔 내 수행을 도와줄 수 있어?"
 ​
  "수행?"

  "알아, 지금 내가 나서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된다는 거. 그러니까 앞으로는 나도 노력해서 좀 더 강해지고 싶어. 이래 봬도 기본적인 역량은 갖추고 있으니까 가르쳐주면 배울 수 있어. 그리고 나중에… 나중에라도 좋으니까, 토비의 일을 돕게 해줘. 나한테도 기회를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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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의 간절함에 동요하며 속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 듯했다. 침묵이 지나간 뒤, 뜻밖에 그가 웃음을 지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따뜻함과 나긋함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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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수행을 봐주겠다. 하지만 내 일에 가담하는 것은 안 된다."

  "어째서…?"

  "실은 말이다, 내가 지금 게으름을 피우고 있거든."
 ​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벙찐 얼굴이 된 나를 보며 토비가 하하하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다시 내게로 향해진 눈빛은 마치 사랑스런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하다. 심쿵해서 괜스레 가슴을 졸이고는 조용히 그의 가슴에 기댄다.

  "데이다라 몰래 게으름 피웠을 때처럼…?"

  "아니, 그래 봬도 당시에는 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게으름피우고 있을 뿐이야."

  토비의 곰발바닥 같은 커다란 손에는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전보다 다정해진 손길에 일일이 가슴이 떨린다. 그가 내 뒤통수를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편안함을 느낌과 동시에 '으응…' 하고 이상야릇한 감탄사가 입술 사이로 새어나간다.

  "날 기다리느라 배고팠을 텐데, 음식보다는 내가 고픈 표정이군 그래. 후후후."

  하얀 가면일 때도 능글맞은 건 여전하구나. 이젠 어떤 가면도 딱히 무서워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악당 같은 웃음소리마저 귀여워서, 즐거워서, 저도 모르게 토비에게 동화되어 같이 웃어 버렸다. 하하핫. 알면 빨리 키스 먼저 해줘 자식아.

  "자, 매달려라."

  여유로이 심호흡을 하더니, 약간 오만한 말투와 함께 그가 능청스레 두 팔을 벌린다. 키스해줄 테니 안기라는 것이다. 덧붙여 자기는 움직이지 않으려는 것 같다. ─너랑 내 키차이를 생각해 바보야. 그런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니 토비가 재주껏 안겨 보라며 눈짓한다. 왠지 오기가 생겨서, 두어걸음 뒤로 물러난 뒤 도약까지 해가며, 힘껏 점프해서 그에게 매달리는데 성공했다. 사실 토비가 떨어지려는 나를 단단한 팔로 감싸안아준 것이지만.

  "귀여운 토비 나와라."

  "마법 주문이냐."

  실없는 농담처럼 들리긴 해도 토비의 성격이 180도 변하는 것은 정말 마법 같다. 애초에 마인드 컨트롤은 닌자가 갖춰야 할 아주 기본적인 능력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대단하다'는 것이 더 깊이 와닿는다. 토비라면 아마 변신술만으로 상급닌자 몇 명쯤은 거뜬히 속일 수 있을 것이다.

  토비는 단지 요령 있게 모습을 바꾸고 있는 것뿐인데, 나는 그 와중에 하얀 가면일 때와 소용돌이 가면일 때 어느 쪽도 토비의 진짜 모습인 것처럼 여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반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어색함이 없으니까. 너무 자연스러우니까.

  퐁- 연기가 사라지기도 전에 가면으로 손을 뻗어 비껴쓰게 했다. 아무리 뭐래도 이건 좀 당황스러웠는지 토비가 잠시 주춤한다. 예전에는 언제나, 언제나, 너 하고 싶은 대로 끌어안고 덮쳤지. 앞으로는 달라질 거야. 나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거침없거든. 이젠 내가 먼저 행동한다. 쪼오오오옥──.

  "음…웁… 핫… ~…;;"

  나의 격한 애정표현에 싫지만은 않은 듯 웃음지으면서도 부드럽게 저지하며 다시 한 번, 숨을 고른 뒤 편안한 분위기 속에 입을 맞춘다. 조금 전에는 거의 입술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으로 반장난 같았지만 이번에는 천천히 포개지며 다정한 키스를 했다. 딱히 무언가를 먹지 않아도 충분히 달달한 기분이다.

  제법 길었던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너무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슬슬 떨어져야 한다는 걸 알지만 계속 붙어 있고 싶어서 토비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검은 천으로 가려진 그의 눈에 살며시 키스했다. 왼쪽에 한 번, 오른쪽에 한 번. 재회한 뒤로도 소용돌이 가면일 때는 계속 이런 모습이었기 때문에 거의 유일하게 아직 키스해본 적 없는 곳이 바로 '눈'이었다. 예전에는 홧김에 몇 번인가 찌르기도 했었지. 당시에는 그래도 싸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는 마음이 좋지 않다. 괜시리 미안해서 양쪽에 한 번씩 더 키스를 해주었다. 쪽, 쪽.

  "저기… ……."

  어쩐지 망설이는 목소리.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토비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잇는다.

  "만약… 내가 가면을 완전히 벗으면… 그래도 지금처럼 키스해줄 거야…?"

  네가 하지 말래도 할 거야. 너무 당연한 걸 물어오니 어이가 없어서 도리어 대답하지 못했다. 설마하니 아직도 얼굴의 흉터를 신경쓰고 있는 것인가.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억울한 마음에 평소보다 대담하게, 하지만 조심스럽게, 토비의 눈을 덮고 있는 검은 천 안으로 손을 살짝, 아주 살짝 넣었다. 그리고 쓰담쓰담 만져 주었다.

  "이렇게 말하면 화낼지도 모르지만, 난 토비의 흉터가 좋아. 처음부터 싫지 않았어. 닌자에게 이 정도 흉터가 남는 것은 크게 놀랄 만한 일도 아니고… 닌자로서의, 남자로서의… 지금까지 거친 삶을 살아온 것이 느껴지는… 으음… 와, 와일드함이 느껴져서 멋지다고 생각해……."

  말주변이 없어서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리고 부끄럽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천천히 고개를 떨어뜨린다. 어차피 지금 토비는 볼 수 없을 테니 괜찮겠지. 그런데 마치 보이기라도 한 것처럼, 우습기도 하지만 기쁜 듯, 토비가 마찬가지로 내 뺨을 감싼다. 차가운 오른손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져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매일 이렇게 토비의 맨얼굴을 만질 수 있다면… 그리고 키스할 수 있다면… 눈이 안 보여도 괜찮을 것 같아……."

  차라리 그렇게 되면 마음이 편해질까. 토비는 흉터 때문에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되고, 나는 혹시라도 토비가 화내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지금은 그의 가면이 무섭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두꺼운 가면은 내게 벽과 같다. 토비와 나를 갈라놓는 단단한 벽.

  "아~… 그보다, 음, 밥 먹자~. 하하하~."

  어쩐지 다급한 느낌으로 토비가 나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잘 모르겠지만 터덜터덜 식탁으로 향하는 뒷모습이 조금 쓸쓸해 보인다. 토비에게 감춰진 부분을 드러낸다는 것은 기쁜 일임과 동시에 슬픈 일인 것 같다.

  "잠깐, 데워서 먹어야지."

  "식어도 맛있어욤~."

  애교스런 말투로 대답하더니 그새 음식을 입에 넣고 있다. 우물우물. 정성껏 만들었으니까 기왕이면 더 맛있게 먹자고 잔소리를 하고 싶은데, 내 음식에는 정말 한 마디의 불평조차 하지 않는 토비가 귀여워서, 고마워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생각하자면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먹을 필요가 없는 그에게 음식의 맛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토비는 단지 함께라는 기분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 오늘 드라마 볼 때 나 무릎베개 해주면 안 돼~?"

  "대신 드라마 재미없다고 투덜거리기 없기다."

  "계속 억지로 보다보니까 나도 다음 화가 궁금해졌어~. 켄타는 정말 코마치 여사의 친아들인 걸까~? 만약 그렇다면 켄타와 슌이 형제가 되고~, 카에데는 원래 슌의 아내였으니까~, 켄타는 형의 전처를 사랑하는 거네~."

  맨날 투덜거리기만 하고 보는 둥 마는 둥 했으면서 내용은 다 꿰고 있구나.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젓가락으로 반찬 하나를 집어서 토비의 밥 위에 얹어준다. 예전에 그가 맛있다고 칭찬해 줬던 게 생각나서 다시 만들어 보았다. 물론 그때보다 더 맛있게.

  "정말로 사랑한다면 형의 전처가 아니라 조상님의 전처라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조상님이라~. 으으~. 왠지 기분 나쁜 상상을 해버렸다~. 으웩~."

  "?"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얼굴을 갑자기 떠올려서 비위가 상한 듯 토비가 근처에 놓여 있던 물을 따라 마신다. 대체 무슨 상상을 한 걸까.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차갑게 식어버린 음식을 끝까지 맛있게 먹어주는 걸 보면 기특해서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아, 그러고 보니.

  "저기, 토비… 일전에 나한테 남편이 되어주기로 했었지…?"

  만약 토비가 진심이라면 그에게 제대로 말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저, 근데… 네가 모르는 사실이… 음… 나랑 데이다라 말이야… 실은… 결혼을 약속한 상태였달까, 이미 여보 당신 하는 단계까지 갔었거든… 법적으로는 물론 부부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러니까… 나한테 있어서는 엄밀히 네가 두 번째…"

  콰직─. 토비가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이 강렬한 소리를 내며 두동강 났다. 아무리 힘이 세다지만 장인이 튼튼한 나무를 엄선해 만든 것인데 일회용젓가락마냥 아주 간단히… 뜨헉.

  ", 나 지금 식사 중이잖아~. 밥맛떨어지는 소리 하지 마~."

  "으, 응… 미안…;;"

  처참하게 부서진 젓가락의 파편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내가 큰맘 먹고 산 고급젓가락이라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토비의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등골이 오싹하고 식은땀이 흐른다. 보아하니 토비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말하지 말걸 그랬나. 서로 숨기는 것 없는 투명한 관계를 바랐던 게 도리어 화를 초래했다. 새 젓가락을 가져다 주는데 눈에 보일 정도로 손이 파르르 떨린다.

  "이참에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네가 과거에 어떤 자식과 뭘했는지 나는 궁금하지 않아~. 선배가 아니라 조상님과 잤다 해도 쥐뿔도 관심 없어~. 듣고 싶지 않으니까~. 질투유발이라도 하려는 게 아니면 그런 얘긴 꺼내지 말아줘~. 화낼 거야~."

  "네……."

  여자의 입장으로는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내 남자의 과거를 캐묻게 되는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남자에게는 오로지 현재만이 중요한 걸까.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남자는 질투할 때가 제일 무섭다'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나는 토비의 여성편력에 하도 단련이 돼서 내가 100번째든 1000번째든 딱히 상관없는데… 토비는 자신이 1번째냐 2번째냐 하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나 보다. 애초에 그냥 생각하기 싫은 것 같다.

  "너는 처음부터 내 거였어~."

  혼잣말처럼 나지막이 말하더니 토비가 조금 경직된 움직임으로 식사를 이어간다. 여기서 '내 처음은 네가 아니라…'고 말하면 '데'가 나오기 전에 식탁이 박살날 것이다. 이토록 불길한 예감을 안은 채 구태여 입을 열 필요는 없겠지. 어쨌든 토비가 상관없다면 그만이니까. 나도 얌전히 밥이나 먹자.

  "…날 위해 태어났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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