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비, 아까부터 멀뚱히 서서 뭐하는 거야?”

 주방 한가운데서 그러고 있으면 방해되거든. 라고 눈빛으로 전하자 토비가 슬쩍 뒤로 물러나며 길을 터준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식사도 했겠다 방으로 돌아가든지 소파에 앉아서 쉬든지 하면 될 텐데 뒷정리를 하고 있는 사람의 등 뒤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저기… …….”

 “왜?”

 아무래도 내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가 우물쭈물거리며 쉽게 말을 잇지 못한다. 잘 모르겠지만 식탁 위를 정리하고 있는 린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의아한 표정으로 눈썹을 찌푸리자, 그가 린에게 들리지 않도록 내 귓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부탁이 있는데…….”

 우물쭈물. 우물쭈물. 답답해 죽겠네. 대체 뭔데 그러는 거야.

“나… 무릎베개 해줘…….”

 “하?”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을 잃고는 그저 멍하니 토비를 바라본다. 이윽고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토비가 돌연 내 팔을 덥석 붙잡는다. 그리고 끌고 가려는 순간, 문득 린이 두 사람을 향해 말한다.

 “제가 해드릴까요?”

 “엣?!”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한들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 들릴 법도 하지. 자신의 아이 같은 부분을 들켜서 당황한 건지, 린이 보인 뜻밖의 호의에 부끄러운 건지 모르겠지만 토비 녀석 또 얼었다. 아무래도 둘 다인 것 같다.

 “토비 씨라면 저는 딱히 상관없어요.”

 “리, 린 씨의 무릎을… 아, 아뇨…! 괜찮아요…! 그런 나뭇가지처럼 얇은 다리에 어떻게…;; 부, 부서지기라도 하면 어떡해욧…!;;;”

 “내 다리는 부서져도 괜찮고?”

 “ 넌 튼튼해서 끄떡 없잖ㅇ… (퍽) 커헉…!;;;”

 내게 분노의 응징을 당한 토비가 맞은 부위를 감싸며 끄응 하고 신음을 삼킨다. 린이 있으니 이제 나는 안중에도 없다 이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한 대 더 때려주고 싶지만 모처럼 달달한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으니 여기서는 그냥 조용히 빠져주는 게 매너일 것 같다.

 “그럼 난 슬슬 데이다라한테 가볼게.”

 “응.”

 린은 나와 토비가 허물없이 지내는 것이 내 연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토비와 더불어 웬만하면 우리 두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한다. 넷이 모였을 때 은근슬쩍 자리를 피해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무릎베개를 대신 해주겠다는 말을 꺼낸 것도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린의 마음은 기쁘지만 이런 재밌는 구경을 그냥 놓칠 수야 없지.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척 걸어 나와서는 살짝 열린 문틈으로 두 사람을 주시한다. 린이 자신의 무릎을 탁탁 두드리며 멍석을 깔아주는데도 토비는 여전히 얼음처럼 굳어서는 우물쭈물하고 있다.

 지켜보는 내쪽이 더 답답해질 때 즈음, 끝내 결심한 듯 토비가 조심스레 그녀에게 다가간다. 한 걸음 한 걸음 아주 천천히, 그가 느끼고 있는 떨림이 여기까지 전해져오는 듯하다.

 내 친구이긴 하지만 새삼 린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웃는 얼굴에는 여러가지로 엄청난 힘이 있어서, 건장한 남자라면 저 웃음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리가 없다.

 “토비 씨, 어서 여기 누우세요.”

 “…….”

 린의 옆에 앉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째서인지 토비가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설마 또 얼어붙은 건 아니겠지. 그냥 머리 붙이고 눕기만 하면 되는데 대체 뭘 망설이는 건지 모르겠다.

 “토비 씨…?”

 “아… 저… 으… 으읏…;; 부끄러워욧…;;;”

 푸핫-. 조금 전까지 답답해서 화가 날 지경이었는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그야말로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부끄러워하는 토비의 모습을 보고는 순간 웃음이 터져나올 뻔했다. 린도 쓴웃음을 짓고 있다.

 “그럼 반대는 어때요?”

 “예…?”

 “토비 씨가 제게 무릎베개를 해주세요.”

 “아… 아아… 그, 그런 것이라면… 네애… 부디…….”

 공손하게 두 다리를 모아 베개를 만들어주는 토비. 이윽고 린이 그의 무릎을 베고 눕는다. 작고 아담한 체구의 그녀는 여자인 내가 봐도 정말 사랑스럽다. 지금 토비에게는 말할 것도 없겠지. 그녀와 닿자마자 또 다시 굳어 버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리 쪽도 바짝 긴장을 하고 있어서 딱딱하기 그지없을 텐데, 린은 그래도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여자로서 이런 점은 확실히 배워두지 않으면.

 “저기, 토비 씨.”

 “네애~?”

 “우리… 예전에 만난 적 없었나요…?”

 “…….”

 “죄송해요… 이상한 소리를 해서…….”

 “아뇨~. 저도 린 씨가 낯설지 않아요~. 오랜 친구와 다시 만난 기분이예요~.”

 “토비 씨를 보고 있으면 그리움이 느껴지는데… 막상 그리움의 안쪽을 들여다보려고 하면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요… 역시 저는 착각을 하고 있는 거겠죠… 이제 이런 일에는 익숙해져 있을 터인데… 쓸쓸해져요…….”

 “으음… 하하핫~.;;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요~.;; 에게도 그렇고… 전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억상실이란 건 겪어본 적이 없거든요~. 의료닌자도 아니니까 전혀 알 수가 없어서…;;;”

 “아뇨, 토비 씨가 사과할 일이 아니예요. 어쩌면 전 그냥 토비 씨와 친구가 되고 싶은 건지도 몰라요.”

 “앗, 저도 린 씨의 친구가 되고 싶어요~. 기왕이면 좀 더 일찍 만나서 말이죠~. 린 씨의 잃어버린 기억 속에 정말로 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린 씨의 그리움도 착각이 아니었으면 좋겠구요~.”

 “…….”

 몸의 방향을 돌려 토비를 지그시 바라보는 린. 그녀는 저 두꺼운 가면을 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어째서인지 그녀의 얼굴이 조금 경직되어 있다. 토비와 눈을 마주친 재 움직이지 않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의아함을 느끼는 찰나 문득 그녀의 두 눈이 스르르 감긴다. 잘 모르겠지만 잠이 든 것 같다.

 꿈속으로 떠나는 린을 배웅이라도 하려는 듯 토비의 손이 그녀의 팔을 살며시 감싼다. 평소에 곰발바닥이라고 놀릴 정도로 듬직했던 손이 오늘따라 작아보이는 것은 그의 손끝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해도 왜 이렇게 내 가슴이 저미어오는 건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토비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이라곤 그저 무릎베개를 좋아하는 바보라는 것 뿐인데, 왠지 모르게 지금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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