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서서히 의식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끼다, 갑자기 날카롭게 파고드는 감각에 깨어나 신음을 토해낸다.

 방의 불이 모두 꺼져 있고 달빛은 침대가 있는 곳까지 닿지 않기에 지금 내 눈에는 검은 실루엣만 보인다. 그러나 어둠속에서도 그의 시선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 시선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알 수 있다.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그가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가면 너머로 약간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하아… 하아……."

 말을 꺼내기 전에 숨을 고르려는데 그의 손이 계속 몸을 더듬어서 좀처럼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물론 그는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잠깐 쉬는 동안에도 내 모든 감각을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해서.

 "하아… 하아… 하……."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서 아무리 숨을 들이마셔도 진정이 안 된다. 한동안 서로 숨소리만을 섞다가 겨우 가라앉혔지만 어쩐지 그는 점점 더 거칠어지는 것 같다.

 "무슨 소리야, ~?"

 "토비 네가 허벅지에 달고 있는 두꺼운 납덩어리 말이야… 무게가 나한테까지 전해져……."

 "그래서 풀고 해달라고~? 헤헷~."

 "응……."

 토비의 손이 내 뺨을 어루만지고 사라진다. 오늘은 어째 짓궂은 장난을 치지 않고 그야말로 상냥한 애인처럼 내 말을 들어준다. 조금 전까지 나를 꼬옥 끌어안고 있던 그가 내게서 멀어지니 갑자기 뜨거운 열기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온다. 몸만으로는 괴롭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나 달아올라 있었던 것인가.

 딸각─. 의외로 청아한 소리와 함께 무거운 납덩어리가 시트 위로 떨어진다. 허리에서부터 고정되어 있는 거였구나. 그런데 납덩어리라는 말 그대로 엄청난 무게라서 푹신한 매트리스가 푹 꺼졌다. 평소 토비는 무엇을 하고 있어도 딱히 저것을 풀지 않는데, 새삼 굉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풀었어~."

 "고마워."

 "이젠 어떻게 할까~?"

 그가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자 잠시 여유를 갖고 있던 몸이 다시 일렁이기 시작한다. 조금 두려운 느낌. 아까와는 달리 내게서 멀어져, 대신 내 허리를 붙잡고 행위를 계속 이어나간다. 지금은 희미한 시선 조차 느낄 수 없다. 줄곧 끌어안고 있었지만 사실 내게는 그의 이런 모습이 더 익숙하다.

 "말하지 않으면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거야~."

 "토비는 어째서 언제나 그런 무거운 것을 달고 다니는 거야…?"

 "에에~. 지금 그게 중요해~?"

 "궁금해서……."

 행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런 이야기가 시작되면 정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비로소 토비도 한숨 돌리려는 듯 상의 끝자락을 살며시 올려 후끈거리는 열기를 식힌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갑자기 육감적인 근육이 두둥 나타나서 약간 움찔 했다.

 "토비는 굳이 단련이 필요없는 몸이잖아……."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보면 볼 수록 참, 뭐라 표현할 수가 없구나. 오른팔 때문인지 늘 이상하리 만큼 온몸을 천으로 꽁꽁 싸매고 있어서, 잠깐 잠깐 보이는 것이 오히려 더 아찔하다. 여자들이 굳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도 OK라 할만 하달까. (…)

 "단련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무게감을 느끼고 싶었어~."

 무게감이라니. 몸은 가벼울 수록 좋은 것 아닌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당히 독특한 취향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왠지 토비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토비는 이따금씩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움직임이 빠르다. 그것이 여자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녀석이다.

 아무리 토비라도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불쾌하겠지만 결코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속박하려 들면 견디기 힘들어하겠지.

 어찌 보면 저 납덩어리도 그의 몸을 속박하는 물건이다. 그런데 토비는 오히려 그 무게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딱히 이상하달 것까진 없지만 은근히 모순 같다.

 "몸은 가벼운 게 좋지만 그래도 무게감이 전혀 없으면 나 혼자 동떨어진 기분이 들어서 괜히 초조해지거든~."

 새삼스레 초조는 무슨. 언제나 속으로 욕을 하긴 했지만 솔직히 토비처럼 파격적으로 즐기면서 사는 것도 썩 나쁜 삶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토비는 어쩌면 그런 삶을 살면서도 무언가에 속박된 상태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는 녀석일지도 모른다. 정말 어쩌면이지만.

 "는 정말 궁금한 건 못 참는구나~. 하하핫~. 이제 계속해도 되지~?"

 "아… 응……."

 그대로 다시 시작하는 줄 알았더니 문득 토비가 나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체위를 반대로 바꾼다.

 "~. 네가 위에 있어도 딱히 무겁지 않으니까 쓸데없이 힘주지 말고 편하게 있어~."

 쓰담쓰담. 토비가 내 넓적다리를 살살 어루만진다. 그래도 무의식적으로 버텼는데 야릇한 손길에 결국 힘이 저절로 빠져나간다.

 "내가 다 할게~.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커다란 손이 뒤통수를 감싸오고 부드럽게 만져주니 아픈 것은 잊혀지고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그리고 이제는 쾌감이 밀려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공평하지만 토비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것이 좋다.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바람둥이지만 솔직히 굉장히 능숙하니까, 딱히 사랑이 없어도 상관없다.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기분 좋다. 단지 그거면 된다.

 화류가의 여자들을 수없이 상대해온 남자에게 아무리 애써봤자 서툴게 느껴질 뿐. 어차피 그는 애무 따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하아… 하아……."

 토비의 숨은 가면속에서 흩어지지만 굳이 내 몸에 닿지 않아도 충분히 뜨겁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녹아내릴 것만 같다.

 "……."

 예전부터 서로 부둥켜안는 게 일상이었던 토비와 나지만 정작 관계중일 때는 그런 일이 별로 없었다. 그야말로 '애정없음'의 적절한 예.

 그런데 어째선지 토비가 나를 끌어안은 채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어서, 요즘에는 거의 시작부터 끝까지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내 힘으로는 들기 조차 어려운 납덩어리를 몸에 달고서 딱 달라붙어 있으니, 거친 움직임에 무게로 인한 충격까지 더해져서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아까 숨이 부족한 와중에 무겁다는 말을 힘겹게 꺼낸 것도 그런 이유. 예전에는 팔과 다리에 모두 달려 있었지만 그나마 지금은 다리의 것만 보인다.

 "내일부터는 이거 그냥 떼고 다닐까~?"

 내가 지금 고개를 끄덕이는 건지, 그냥 몸이 파르르 떨리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토비는 대답으로 받아들인 듯 흐트러진 내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고 뺨을 쓰다듬어준다.

 "그 대신  네가 나를 더 자주 안아줘야 돼~."

 몇 번인가 넋을 놓았다 깨어나서 아직 비몽사몽한 상태로 어떻게든 끄덕끄덕 고개를 움직인다. 그런 내가 가여우면서도 기특했던 걸까.

 토비가 더할나위 없이 나를 꼬옥 끌어안으며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그리고 자기도 칭찬을 바라는 듯 내게 기대어 머리를 부비적거린다.

 "고마워……."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언제나 기분 좋게 해줘서… 싫은 것을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아픔이 많은 사람은 싫은 것을 잊을 수 있는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데이다라에겐 그것이 '일'이었고, 토비에게는 '이성'이었다.

 토비는 이성과의 관계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수단으로밖에 이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사랑도 필요없다.

 '사랑'은 내가 필요로 하던 것. 그런데 깨닫고 보면 어느덧 나도 토비와 완전히 똑같은 이유로 그를 이용하고 있다.

 "……."

 조금 전, 토비의 몸이 살짝 떨리는 듯했다. 조금은 괴로움을 느끼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다.

 토비도 가끔은 우리의 이런 관계가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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