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아~.  너의 뜻대로 난 매의 아이들을 품에 안기로 했어~."

 "?"

 영문을 모르겠다. 나의 뜻이라니 무슨 소리지. 굳이 말하자면 난 반대로 '안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런 시덥잖은 얘기는 아닌 듯하고. 아이들을 품에 안기로 했다는 것은, 이제 단순히 손을 잡은 관계가 아니라는 뜻인가.

 "애당초 녀석들의 힘이 필요했던 건 아카츠키의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으니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모르지~."

 그때 내가 했던 말은 결코 아이들을 식구로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하지만 뭐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식구가 되면 적어도 나쁜 녀석들에게 더는 이용되는 일이 없겠지. 토비가 못되긴 했어도 동료를 쉽게 버리는 녀석은 아니다.

 "원년 멤버들은 아직 아이들에 대해서 잘 모를 텐데, 잘도 허락해주었구나."

 "너도 알다시피 코난 씨가 나한테 홀딱 빠져 있잖아~."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구나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철회했다. 나쁜 자식 같으니. 하다못해 눈치 보는 척이라도 하면 안 되나.

 "아카츠키에 들어왔으니 이젠 녀석들도 붉은 구름의 코트를 입어야 돼~. 그러니까  네가 먼저 치수를 좀 재줘~."

 "의상 관련된 것은 원래 전부 내 일이었으니 하긴 하겠는데, 난 이제 아카츠키와 아무 관련도 없어. 그건 확실하게 해두자."

 테러리스트 집단과 손을 잡는 것 만큼 그들과 합류하는 것 또한 무서운 일이겠지. 더군다나 아직 15살밖에 되지 않았으니.

 하지만 데이다라는 그보다 어렸을 때 입단했고 오빠가 죽기 전까지는 이런 터무니없는 집단 속에서도 그런대로 잘 지냈다.

 일단 두고보기로 하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자. 이건 토비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다.

 "고마워~.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딱히 상관없지만 어쨌든 이제 한 식구니까  네가 직접 해줬으면 했어~."

 부비적 부비적─. 딱히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토비가 내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부비적거린다.

 아저씨라고 해도 토비의 애교는 언제나 귀엽게 보였으나 어쩐지 오늘은 조금 징그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 매니큐어는 사스케 군이 누차 거절해서 바르지 않기로 했으니까 손은 그냥 내버려둬~."

 "아깝다. 어려도 남자인데 남자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허무하게 사라졌네."

 "남자의 손이라면 여기 있어~. 여기~."

 토비 이 자식, 무얼 슬며시 곰발바닥을 내미는 거냐. 어째서 굳이 그렇게, 강아지가 손을 주듯이 하는 거야. 이러면 또 귀여워보이잖아, 젠장.

 "그러고보니 요즘 너의 손톱을 별로 신경쓰지 못했네."

 얼마 전에 코난 씨와 얘기를 나누면서 문득 손이 허전해 발라드렸더니 내 솜씨는 여전하다고 칭찬해주셨다.

 토비와 내 관계를 알면서 코난 씨는 아무렇지도 않으신 걸까. 원래 쿨한 분이긴 하지만.

 나만 너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아서 조금 허무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매니큐어가 많이 상했구나. 지우고 다시 발라야겠다."

 토비의 장갑을 벗겨 손톱을 살펴보고는 그를 소파로 이끈다. 얌전히 따라와 앉는 녀석. 정말이지 능청스럽다.

 "기운이 없어보이네~. 사스케 군의 손이 그렇게 잡고 싶었어~?"

 그래, 잡고 싶었다. 어리지만 솔직히 잘생겼잖아. 과연 이타치의 동생이라는 말이 나올만 하잖아.

 성격이 조금 냉정하지만 너보단 나아. 사스케는 적어도 바람 안 피울 것 같거든.

 "나더러 주책이라고 하더니~.  너야말로 주책이야~. 주책바가지 아줌마~."

 분명 속으로만 중얼거렸을 터인데,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것이 도리어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나게 한 것 같다.

 "손을 잡지 못해도 딱히 상관없어. 치수를 재다보면 몸에 터치를 하게 되고 자연스레 스킨십이 될 텐데 뭐."

 "카린에게 손대면 죽여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게 누구였더라~?╬"

 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자신의 외모나 그밖의 것들에 대해 별로 자신이 없지만, 가끔은 이런 건방진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미 11살 연하를 꼬신 전적이 있는 몸, 그것보다 더 나간다고 해서 무엇이 다르랴.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지. 흥.╬

 이번에도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토비에게는 나의 생각이 빤히 보였던 모양이다. 그가 내게서 매니큐어를 낚아채 테이블 위에 탁! 올려놓고는 홱! 하고 몸의 방향을 내게로 향한다.

 뭐야! 더 할 말이 있다면 해봐! 오늘 아주 끝장을 보자! 바람둥이 자식아! -라고 생각하며 찰나의 순간에도 속으로 잔뜩 벼르고 있었는데, 토비가 뜻밖에 나를 와락 끌어안는다.

 거의 다이빙하듯이 날아오는 바람에 토비와 겹쳐진 채 소파 위로 털썩 쓰러졌다.

 "그딴 어린애들 땜에 다투지 말고 러브러브하자~."

 조금 더 하면 토라질 것 같더니, 아주 바짝 달라붙어서, 이젠 애보다 더 애처럼 내게 온몸을 부비적거린다.

 하반신의 위험한 곳까지 일부러 내게 닿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 허리를 느릿하게 움직인다.

 러브러브라고 해봤자 결국엔 이런 것. 뻔한 것이지만 토비에게 러브는 사랑이 아니다.

 "표정이 뭐 그래~? 파릇파릇한 젊은 놈들 보다보니 이젠 내가 성에 안 차~?"

 "아니, 그래도 네가 좋아."

 "헤헷~. 역시 그렇지~? 나는 너의…"

 "애들에게는 테크닉이란 게 전혀 없잖아. 반면에 넌 쭈욱 그런 판에서 놀았으니까."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사랑 없이도 토비에게 안길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가 나를 기분 좋게 해준다는 것.

 "뭐야~.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 싫어~."

 "칭찬하고 있는 거야. 어째서 싫어하는 건데."

 "애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잖아~.╬"

 얼씨구, 주기는 싫고 받기는 해야겠다 이거냐. 데이다라와 사귈 때만 해도 사랑밖에 모르는 순정파였던 나를 이렇게 만든 게 누군데. 감히 어디서 앙탈질이야, 앙탈질이.╬

 "비켜, 지금 내려가서 애들 치수 잴 거니까."

 "이런 자세가 되고서 그냥 가겠다고~? 네 애인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내 애인은 데이다라가 마지막이었고 넌 그냥 같이 자는 남자일 뿐이야.╬

 "어째서 그렇게 속마음이 얼굴에 훤히 드러나는 거야~. 싫어~. 싫어~~. 싫어~~~."

 그러는 넌 좀 속에다 감춰라. 엔조이라 할지언정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있거늘.╬

 "날 좋아한다면서~. 흑흑~."

 "……."

 그래도 자신이 내뱉은 말이 있으니. 괜히 속만 쓰리는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내게 부비적거리며 훌쩍이는 토비의 머리를 습관처럼 쓰다듬어준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데이다라가 충분히 우리 관계를 오해할만 했구나. 좋아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면 이런 행동이 자연스레 나오지는 않았을 터.

 "~. 날 정말 좋아하는 거지~."

 몇 번이고 후회하며 속으로 되뇌었던 것이지만 처음부터 토비와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말라는 데이다라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애당초 시작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좋은 선택이 되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토비의 탓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있잖아, 토비."

 "?"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봐."

 "네애~."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면 당혹스러울 법도 하건만 조금도 그런 것이 없다. 그리고 딱히 거기까지 바라진 않았는데 그가 정말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는다.

 "데이다라가 살아 있을 때 말야, 무의식이 아닌 고의적으로… 그러니까 일부러 나를 유혹한 적 있어?"

 "그게 궁금한 거야~?"

 "(끄덕)"

 가슴에 얹고 있던 손이 다시 천천히 내 머리맡으로 다가온다. 토비가 상체를 숙여 그의 가면이 어깨에 닿고, 안쪽에서 낮은 숨소리가 들린다. 어느 때보다 더 짓궂은 그의 목소리도.

 "그야 당연하지~. 바보 아니야~? 아하하하하하핫~."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그가 내 옷깃을 꽉 움켜쥐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다.

 "마치 게임 같았어~. 결국 내가 졌지만~. 마지막에 판을 엎어버리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니까~. 아하하하하하하핫~."

 토비의 웃음소리가, 문득 창밖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와 뒤섞여 귀를 찌른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왠지 가슴이 울렁거린다.

 "~."

 "으, 응…?"

 "고마워~. 날 좋아해줘서~."

 "……."

 "이제 가도 돼~. 가봐~."

 내게서 멀어지는 토비. 구름이 지나가며 그의 가면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누가 뭐래도 사람에게 무엇보다 강한 무기는 젊음이지~. 나도 10대로 돌아가고 싶다~."

 몸을 일으켜 앉아 테이블 위의 물을 따라 마신다. 갑자기 목이 탄다. 옆에서 들려오는 토비의 중얼거림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도 선배처럼 한 여자만 바라보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텐데~."

 토비도 그런 행복을 동경하긴 하는 건가. 관심 조차 없는 줄 알았는데. 문득 초조함에 쓸쓸함 마저 밀려온다.

 "딱히… 아니라도 상관없었는데……."

 그의 말에 가장 중요한 무언가 빠졌다. 그래서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토비의 눈이 조금 슬퍼보인다.

 ", 오늘밤에는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변해주지 않을래~?"

 "왜…?"

 "왜냐니, 너의 귀여운 모습을 보면서 섹스할 거야~."

 "토비… 하는 건 좋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말하진 말아줘… 나도 평범한 여자이고… 수치심을 느낀다고……."

 "으응~. 그렇네~. 미안~. 하하하~."

 다시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토비. 이번에도 품에 안기려는 건가. 아니, 이번에는 토비가 나를 안는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의 품은 나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넓다.

 "나 말야~. 이번에는 지지 않을 거야~. 꼭 이기고 싶어~."

 흔들흔들, 그의 품이 요람처럼 흔들린다.

 "그러니까~. 더럽고 치사해도 그냥 모른 척 해주면 안 될까~?"

 그가 평소와 같이 내게 머리를 부비적거리는데, 갑자기 왜 울컥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이제 헤어지지 않고 계속 같이 있을 거잖아~. 그치~?"

 "……."

 "그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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