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의 재료를 다듬은 뒤 손에 묻은 물기를 닦고 돌아서는데, 조금 전까지 소파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고 있던 토비가 어느덧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잠들어 있다. 가면을 써서 눈을 감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스- 스- 하는 숨소리가 작게 들려와서 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데이다라 말로는 요즘 하루종일 멍한 상태에다가 밤에 잠도 자지 않는다고 하던데, 정말 피곤하긴 했나보다. 그 동안 토비가 나무 위에서 자는 모습은 많이 봤어도 이렇게 소파에 앉아 아무도 모르게 잠든 적은 없었다. 무언가 중얼거리는 것을 보니 꿈까지 꾸고 있는 모양이다.

 “응… 으응…….”

 무서운 꿈인가. 그렇다면 깨워주는 편이 좋겠지. 토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까부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가 싶더니 팔걸이 위의 손끝이 움찔 움찔 떨린다.

 “리… 린…….”

 이제 꿈에서도 린을 보는 거냐. 아이고 토비야. 사랑 같은 건 필요없다더니 네가 아주 푹 빠졌구나. 그때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토비도 사람인데 남들 다 하는 사랑을 하지 않을 리가 없다. 단지 그 대상이 나는 아니었을 뿐. 린이라면 토비의 이상형에도 딱 들어맞으니 첫눈에 반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린은 잠깐 나갔어. 곧 돌아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토비가 깨지 않도록 작게 속삭이고는 조심스런 손길로 그의 머리를 살며시 만져준다. 쓰담쓰담. 솔직히 말해서 지난 번 그 일이 있던 이후로 아직 토비를 보는 것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그와 동시에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그 여자에게는 이미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이 있으니.

 원래 나는 용서가 그리 빠른 편이 아니다. 그때 생각만 하면 아주 그냥 가면을 10m까지 늘려서 확 놔버리고 싶으니까. 다만 그 동안 토비와 지낸 시간이 있기 때문에 지금쯤이면 토비도 당황스럽겠구나 싶고, 앞으로 힘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뭐라고 해도 데이다라의 파트너니까 끝까지 돌봐주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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