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날이 참으로 따뜻하구나. 집안일을 끝낸 뒤 데이다라를 졸라서 잠깐 산책이라도 다녀올까 하고 생각하며 잠시 차 재료를 구하러 숲으로 나왔는데, 넓은 초원이 펄쳐진 곳에 문득 낯익은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린과 토비. 점심을 먹은 뒤로 보이지 않더니 이런 곳에 있었구나.
맑은 하늘 아래 초원에는 화이트 클로버가 군집해 있고 마침 개화의 계절을 맞아 하얀 토끼풀꽃이 가득 피었다. 이를 테면 꽃밭인 셈이다. 그림 같은 한 장면을 보고 있자니 왠지 뭉클하고 가슴이 감성적으로 젖어든다. 이따가 나도 데이다라를 데리고 여기로 와볼까. 생각만 해도 로맨틱하다. 햐아. "귀엽다아~. 이건 무슨 꽃이예요~?" "쑥부쟁이라고 해요. 꽃말은 그리움이죠." "헤에~." 아이처럼 두 다리를 쫙 뻗고 두 손으로 몸을 받친 채 꽃을 구경하는 토비. 린은 눈치채지 못한 듯하지만 왠지 초조해하고 있는 것이 내 눈에는 보인다. 마치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망설이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번 내게는 끝끝내 하지 않을 거라고 하더니 혹시 고백하려는 것일까. 팔에 끼고 있던 바구니를 바닥에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모습이 수풀에 가려져 보이지 않도록 자세를 낮춘다. 정말 고백이라면 어떻게 되는지 지켜봐야하니까. 톡 까놓고 말해서 훔쳐보는 것이지만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만큼 중대한 일이 아닌가. "이건 무슨 꽃이예요~?" "그건……." "마치 린 씨 같네요~." "그건… 개쉽싸리라고 해요." ?! "아… 저, 저는…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 속으로 탄식을 내뱉으며 집게손가락을 미간으로 가져간다. "으음… 그럼 이건 무슨 꽃이예요~?" "그건……." "뭐랄까~. 이 꽃은 린 씨에 대한 제 마음 같아요~." "그건… 존넨쉬름이라고 해요." ?!!! "아, 아니예요…;;; 제 마음은 그런 게…….;;;;;;" 아아-. 또 다시 탄식이 흘러나온다. 토비 저 녀석 무슨 미다스의 손도 아니고 이상한 이름을 가진 꽃만 골라서 집는 거야. 정말이지 조마조마해서 못봐주겠다. "그, 그럼… 이건…?" 토비도 당황스러운지 꽃을 내미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파란빛의 작고 예쁜 꽃. 이번에는 괜찮겠지. "그건… 그건… 개불○꽃……." 어째서?! "아아아아아아…! 죄송해요오오옷…!;;;; 린 씨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게 하다니이이이이…!;;;;;;" 당황하지 마! 그런 꽃은 그냥 버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냐! 네 마음을 전하는 거야! 힘내라 토비이이! "토비 씨, 평소에는 들판의 꽃을 그다지 돌아보지 않으시지요?" "아하하~.;; 들켰나요~?;; 뭐어 이름을 하나도 모르니 들킬 수밖에 없겠네요~.;;;" "제게 여기로 오자고 하신 건 무언가 할 얘기가 있으신 것 아닌가요?" 그렇지, 역시 린은 똑부러지구나. 이제 좀 진지하게 얘기를 할 수 있겠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저대로 고백해도 괜찮은 걸까. 꽃이름 때문에 분위기가 좀 뭐랄까 코미디처럼 되어 버렸는데.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여기에는 저밖에 없으니까요." 죄송합니다만 저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행여 제 인기척을 깨닫더라도 부디 저는 신경쓰지 마시고 두 분의 대화에 집중해주세요. 그렇게 간절히 바라며 수풀 너머로 시선을 던지고 있으니, 문득 린이 근처의 꽃을 취해 토비에게 건넨다. 처음에 얘기했던 쑥부쟁이란 꽃이다. 꽃말이 그리움이라고 했던가. 왠지 모르게 토비에게 잘 어울린다. "저… 린 씨……." "네, 토비 씨." "일전에는 당분간 계속 이곳 아지트에 머물 생각이라고 하셨지만… 실은 곧 떠날 생각이시죠…? 언제… 가시는 거예요…?" "내일이요." 뭐라고? 내일? 설마 그럴 리가. 토비에게는 그렇다쳐도 린이 내게까지 거짓말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 혹시 아무 말도 없이 떠날 생각이었던 건가. 어째서. "린 씨… 저 말이죠… 그냥… 멋대로 생각해봤는데요… 린 씨가 아무리 타카시 씨를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그 사람을 선택하는 건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전 사랑을 해본 적도 없고, 사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행복해질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만은 알아요… 린 씨가 사라져 버리면 저도… 저도 슬프니까… 그러니까… 저는… 린 씨가 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토비 씨……." 저 녀석, 정말 진심이구나. 린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토비를 지켜보면서 이렇게 가슴이 저릿해지는 것은 처음이다. 조금 전에는 너무 답답해서 끽하면 확 뛰쳐나가 버릴 것 같은 심정이었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이 이상 내게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을 이유도 자격도 없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두 손으로 귀를 막는다. 다만 안타까워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고개를 숙인 토비의 모습으로부터 눈을 떼는 것만은 할 수가 없다.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다만 토비의 어깨가 떨리고 있어서 그의 가면 너머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바보… 남자가 차인 정도로 울지 마…….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 동안 토비의 곁에 있었던 만큼, 그를 아꼈던 만큼, 그의 아픔이 마치 내 아픔처럼 느껴진다. 저 바보가 좋아하는 여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이제 겨우 다시 사랑이라는 감정을 되찾게 됐는데, 결국 다시 남는 것은 그리움 뿐이라니. 지금도 앞으로도 나로서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기에 나 또한 눈물이 날 것 같다. (…) 토비 : (아니예요 린 씨….) (오늘도 내일도 많은 것들이 사라지겠지만… 당신은 아니예요…….) (이번 만큼은… 두 번 씩이나… 그러지 않아도 돼요…….) (아무리 차가운 곳이라고 해도 혼자가 아니라면 무섭지 않을 텐데…….) (차라리 그냥 나랑 같이 가요… 나도 데려가줘요…….) (당신은 내게 동료와 친구들이 있다며 위로하겠지만…….) (난 언제나 계속 혼자였어요.) (그리고 당신이 사라지는 날 다시 혼자가 될 거예요.) (왜냐면 이 세상은 내게 아픔만 안겨줄 뿐이니까요.)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 수록 안개가 짙어져요.) (하루에도 몇 번 씩 전부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당신이 구하고자 했던 게 바로 이것들이니까…….) (무엇 하나 쉽게 놓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 붙잡고 있는 당신의 손도 곧 내게서 멀어지겠죠.) (짧았던 순간도 같이 흘려보내야겠죠.) (그래도 난 여전히 당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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