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루젠 님의 심부름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평소와 다른 가게에 들러 장을 보게 되었다.
"실례합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선생." "안녕하세요, 할머니." "오랜만에 보네 그려. 잘 지냈는가?" "예, 잘 지냈어요. 그 동안 오지 못해서 죄송해요. 실은 제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거든요." 야마토의 집에서 가까운 이곳은 내가 그와 사귀던 시절 자주 이용하던 야채 가게이다. "근데 그 훤칠한 청년이 보이질 않는구먼. 같이 오지 않은 게야?" "아, 텐조 말씀이시죠? 요즘에는 같이 안 다녀요." "왜? 싸웠는가?" "그게……." 이제 벌써 4년 전의 일인데도, 가게 주인 할머니께서는 여전히 눈을 가느다랗게 뜨시곤 그 시절 내 옆에 서 있던 사람을 찾으신다. 근래의 일을 잊어버리는 대신 예전의 일을 바로 어제처럼 선명하게 기억하시는 것이다. 과거에 나는 약 일년 간 야마토의 집에서 그와 함께 생활했다. 내게 있어서는 그것이 이성과의 첫 동거였고, 이루카와 살던 집을 나와 새롭게 시작한 첫 독립 생활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필요 이상으로 들떠 있기도 했다. 야마토는 암부였으니까 원칙상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그의 팔을 붙잡고 다니며 장을 보거나 산책을 하고는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런 우리가 마치 신혼부부처럼 보였는지도 모른다. '잠깐, 야채를 이렇게 많이 사서 어쩌려구요?' '텐조가 부지런히 먹으면 돼. 너 잘 먹이려고 일부러 많이 사는 거니까 하나도 남기지 마.' '거참 젊은 선생이 바깥 양반 내조를 똑부러지게 잘 하는구먼. 암, 남자는 잘 먹어야지. 여기 받으시게.' '감사합니다, 할머니. 후훗.' '저, 정말이지…….' 땀이 배어 있는 암부복을 갈아입고 집을 나와서 장보기에 어울려주던 나의 애인. 그와 노을빛으로 물든 길을 나란히 걸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서 밥을 먹고, 밤이 되면 같은 침대에 누웠다. 그것으로 '하루가 가득 찼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든든했고, 흐뭇했다. 그리고 헤어진 뒤로는 꽤 오랫동안 밤마다 허전함을 느껴야만 했다. 뭘 해도 아직 부족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다음에는 꼭 같이 오시게. 내가 많이 챙겨줄 테니까." "그게요 할머니… 실은 저희……." 지금은 거짓말이라도 그냥 그러겠다 대답하고 싶다. 헤어졌단 말을 하기가 왜 이리 싫은지. 가슴이 울렁거려서 쉽게 말을 이을 수가 없다. |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