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료들과 마을 외곽의 숲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혼자서 낙오가 된 적이 있었다.
사실 그런 일은 부지기수였지만, 지금까지 내 기억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닌자 주제에 길치를 타고나서 혼자서는 제대로 집도 못찾아가는 바보. 지금도 이러니, 그때는 오죽했을까. "아… 힘들어……." 거진 두 시간을 숲에서 헤매다 발견한 냇가에서 목을 축인 뒤 잠시 쉬어갈 생각이었다. "?" 풀밭을 붉게 물들인 핏자국을 발견하는 순간,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의료 닌자를 목표로 수행하는 자로서 간과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동료가 근처에 쓰러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으으, 벌레…!" 부스럭 부스럭 풀을 헤치고 핏자국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과연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동물 얼굴의 탈을 반쯤 올리고 있는 나뭇잎의 암부. 동료였다. 크게 부상을 당해 지혈 조차 하지 못하고 피를 막으려는 듯 상처 위에 손을 얹은 채 기절한 듯보였다. 나무 기둥에 기대어 앉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의식이 없음을 확인한 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옅은 의학 지식으로 그를 치료했다. 내 수준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결코 자신의 의료 기술을 과신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사람을 불러오고 싶어도 마을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을 뿐이었다. "윽… 으윽……." 의료 닌자를 목표로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첫 환자가 눈앞에서 죽어 버리는 것은 앞으로의 삶에 큰 트라우마로 남기에 충분한 일.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는데도 깨닫고 보면 나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제발 죽지 마. 죽지 마. 죽지 마. 어린 마음에 끝없이 속으로 되뇌이며, 그의 부상, 그리고 두려움과의 싸움이 반나절 동안 계속되었다. "……." 부상자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자신은 추위에 벌벌 떨며 꾸벅꾸벅 졸다가 깨어난 나는 문득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정신을 번뜩 차렸다. 남자의 의식이 돌아온 것이었다. "정신이 들어요? 괜찮아요?" 내 서툰 의료 기술로 괜찮을 리가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내게는 그가 살 수 있다는 희망, 두려움을 떨쳐낼 용기가 조금 더 필요했다. "하… 하아……." 그의 거친 숨소리에 나는 속으로 자신의 이마를 쳤다. 바보인가, 나는! 이 정도로 큰 부상을 입으면 열이 나는 것은 자명한 일. 어두워서 얼굴빛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이마에 손을 얹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나는 냇가에서 수건을 적셔 남자의 이마와 얼굴을 닦아주며 다시 몇 시간 동안 싸움을 계속했다. 어느덧 밤하늘이 옥색으로 변하고, 샛별이 뜨고,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 차가운 물로 적신 수건을 들고 남자에게 돌아간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와 눈이 마주쳤다. 문득 그가 움직이려고 하기에 말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고, 나를 계속 응시하며 내게 손을 뻗었다. 그는 내 손을 자신의 손으로 살며시 감싸며 이렇게 말했다. "차갑…네요… 계속… 저 때문에……." 나는 그가 살아났다는 안도감에 가슴이 벅차올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안…해요……." 그는 새벽의 추위에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흘러내린 담요를 덮어주는 것 정도였다. "차크라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그런대로… 좋은 곳… 만들어… 줬을 텐데……." "더 이상 말하지 말아요." 암부는 마을의 정예. 그렇기에 존댓말을 사용했지만, 나보다 한참은 어려보이는 소년이었다. 그런 소년이 벌써 암부가 되고, 그렇게 다칠 정도로 위험한 적들과 싸웠다는 사실이 새삼 믿기 어려웠다. 좋은 곳을 만든다는 그의 말도 당시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에게 그런 것을 신경쓸 여력은 없었다. "진통제를 먹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통증이 심할 거예요." "진통…제…? 언제… 그런 것을…?" 나는 그의 물음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마른 침을 한 번 삼킨 뒤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환자가 약을 삼키지 못할 때는… 이, 입으로… 그……." "아아……." 잠시 후 내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을 때 열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얼굴도 붉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보다 암부의 얼굴을 보면 어떻게 되는 걸까. 위급 상황에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는데도 나는 그 와중에 그런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암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고, 그저 강하고 무서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암부의 얼굴을 보면 살해당한다는 헛소문을 믿을 근거는 없었지만, 딱히 믿지 못할 근거도 없었기에.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지만, 나는 뒤늦게 불안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의식적으로 그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했다. "저… 전 머리가 나빠서 사람의 얼굴 같은 건 좀처럼 기억하지 못하거든요." "?" "방금 전에 본 얼굴도 돌아서면 잊어 버리고, 아는 사람이 지나가도 눈치채지 못할 때가 많아요." "……."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 만큼 사람의 얼굴 같은 건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거예요. 네." 소년이라고 해도, 아니 오히려 그 나이에 암부가 되었다면, 나 같이 약한 의료 닌자 하나를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지금은 부상을 당했지만 나중에 완치가 되면 그때는-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이미 암부에게 살해당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푸훕-……." 그의 웃음 소리에 움찔 놀라면서도 나는 무심코 다시 그의 얼굴을 봐버렸다. 웃을 때 통증 때문에 행여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진통제의 효과 덕분인지 다행히 그는 크게 괴로워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전의 웃음으로 한결 편안해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상한 소문… 믿지 말아요… 암부는… 가끔… 동료를 죽여야… 할 때도 있지만… 언제나… 마을을 위해… 당신 같은…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그렇다고 해도 너무 무리였는지, 그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천천히 떨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니 다시 두려움이 생겨서, 나는 얼굴을 보는 것 따윈 신경쓰지 않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윽… 하… 하아……." 여전히 바들바들 떨리는 몸.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위에 걸치고 있던 옷의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 다짜고짜 소년을 끌어안았다. "뭐… 뭐하는……." "아침이 되어도 마을로 돌아오지 않으면 수색대가 찾으러 오겠죠. 그때까지만 버텨요." 소년은 당황하는 듯했지만 머지않아 지친 듯 내 어깨에 이마를 기대었다. "신기…하네요……." "?" "아까… 손은… 그렇게나 차가웠는데… 당신의 품은… 굉장히… 따뜻해요……." "……." 아침이 밝자, 예상대로 수색대가 나타났다. 그들은 부상당한 소년을 데리고 가면서, 길을 잃은 나 또한 동행하도록 해주었다. 닌자 주제에 길치라니,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은 조금 아팠지만. 그래도 나는 소년과 함께 무사히 마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 시간이 흘러 내가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나는 누군가의 차가운 손이 이마에 닿아오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동물의 탈을 쓰고 있어도, 그때의 소년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게 문병을 올만한 사람들 중에, 암부라고 하면 그밖에 생각할 수 없었기에. "안녕하세요." "결국 저를 죽이러 오신 건가요?" 내 시덥잖은 농담에,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보고 싶어서 왔어요." "……." 그때부터였을까, 내 심장이 그에게 반응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 아마도 그보다 한참 전부터였을 것이다. 단 한 번 얼굴을 본 것 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가 너무나도 가깝게 느껴졌다. " 씨죠?" "네… 어떻게 제 이름을……." "그날 이후 조사를 해봤어요. 당신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었거든요. 근데……." 말을 함에 있어서 막힘이 없던 그가 뜸을 들이기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탈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그가 쑥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서, 선배가… 그… 조사하는 것만으로 뭘 할 수 있냐고… 직접 만나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하셔서……." "………" 그 순간 나는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두 손으로 이불을 만지막거리며 슬그머니 붉은 뺨을 가렸다. "멋대로 조사를 하면 안 되는 거지요.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요……." 나는 이불 밖으로 두 눈만 내민 채 겨우 용기를 내어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내게 암부인 당신과 같은 능력이 있었다면… 저도 진작 당신에 대해 조사를 했을 거예요……." "정말입니까…?" "당신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은데… 암부에 대한 정보는 기밀로 되어 있어서… 줄곧… 답답했거든요……." "그렇다면…!" 그가 얼굴에 쓰고 있던 동물탈을 벗는 순간, 나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암부의 얼굴을 봐도 살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그것은 금기와도 같이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는 암부가 아닌 저 자신을 당신에게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나는 가슴이 마구 뛰어대는 것을 느끼면서도 떨리는 두 손으로 이불을 제치고 몸을 일으켰다. 그가 내게 얼굴을 보여주었으니, 나도 숨어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아니, 제가 뭐라고 부르면 돼요…?" "키ㄴ……." 그는 왠지 모르게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텐조입니다. 그렇게 불러주세요." "네, 텐조씨." 당시에 그가 사용했던 코드 네임은 '키노에'. 텐조라는 이름은 그보다 훨씬 전, 그가 뿌리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것이다. 그런데 왜 내게 텐조라는 이름을 가르쳐주었는지, 그 이유는 훨씬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제게는 정해진 이름이 없어요. 이름 같은 건 아무런 의미도 없죠. 하지만 당신만이 나를 다르게 불러준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내게는 특별할 것 같아요." 텐조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때, 그의 눈에 비친 내 얼굴은 그저 기뻐하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은 두 말 할 것 없이- "저와… 사귀어주시겠어요?" "네……." '사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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