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TALK!

거기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당신에게.

너무나도 일찍 찾아온 삶의 끝에서 당신이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요?
영원한 안식? 가족의 행복? 새로운 삶? 아마도 그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선택이겠지요.
하지만 나는 그 세 가지중 어떤 것도 아니었어요.
나는 혼자가 아니길 바랐어요.

내 삶에 외로움만이 전부가 아니었기를.
이 죽음이 그 외로움의 연장선이 되지 않기를.
나는 단지 그것만을 바랐어요.

그래서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눈물이라는 보석을 욕심냈던 거에요.
그것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도, 훔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가치를 가진 것이 바로 한 방울의 눈물이랍니다.
내가 삶의 끝에서 깨달은 것이니 믿어도 좋아요.

당신은,
당신의 곁에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줄 사람이 있나요?

어쩌면 나는 좀 더 일찍 깨달아야 했는지도 몰라요.
아마도 나는 좀 더 빨리 그것을 욕심내야 했을 거에요.

이제는... 너무 늦어버렸어요.


삐─────.

"xxxx.xx.xx 00시 00분 심폐기능 정지."

제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몇 명 있어요.
내 가족, 내 친구들, 그리고 친구 이상의 의미를 가진 한 남자.
그 남자는 내가 숨을 쉬는 것을 멈추는 순간까지도 울지 않았어요.
하지만 나의 장례식이 끝난 뒤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채로, 아무도 없는 계단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남자가 숨을 죽이며 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아무도 그를 위로하지 않았죠.


"윽..."

"으...읏....흑...윽...흑흑...'

"왜..."

"왜───!!!"

나는 그의 마음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 애절한 소리에 의식을 되찾고 눈을 떴죠.
어느새 아버지께서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어요.
슬픔과 안타까움이 담긴 눈을 하시며.


"이것으로 만족하니?"

아니요.
후회가 밀려와요.
좀 더 잘 해주지 못해서.
좀 더 사랑해주지 못해서.
하지만 이제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요.


"네가 조금만 마음을 달리 먹었더라면, 너는 이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었어."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더욱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슬퍼하고, 화를 내고, 용서했어야 했다는 말이야."

"이미 다 끝난 일이에요."

"네가 생각하는 끝이란 무엇인지 묻고 싶구나."

"더이상 후회해도 소용없는 순간이죠."

"만약 이게 끝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거니?"

"........."

문득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와요.
이 바람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너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마."

"한 번 더? 제게 삶을 되돌려주신다는 말씀인가요?"

"그래. 그 삶을 행복으로 채울지, 불행으로 채울지는 너에게 달렸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봐요.
저 구름의 언덕 너머로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어요.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괜찮은 걸까요?


"네 마음은 이미 알고 있으니 그냥 대답만 하렴."

"저... 돌아갈래요."

"좋다."

하얀 빛이 나를 감싸오네요.
온몸에 따뜻함과 편안함이 깃들어요.
그와 동시에 시끄러운 소리도 들려오고요.

잠깐

이게 무슨 소리죠?

귀가 찢어질 것 같아요.

그만

그만─!!!


"헉!"

"하아─. 하아─."

여기가 어디지?

방.

누구의 방이지?

머리맡에서 울려대는 알람시계를 끄고 몸을 일으킨다.
여긴 내가 알고 있는 장소가 아니다. 완전히 낯선 곳이다.
침대에서 내려와 주변을 둘러보다가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발견하고서 그 앞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한자와 히라가나가 섞여있는 일본의 달력. 일본이다.

커다란 화장대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본다. 이 여자아이는 대체 누구지? 저건... 저건 나다. 하지만 내가 아니다. 내가 움직이면 여자아이도 따라서 움직이지만, 그녀의 얼굴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구지?"

무심코 뒷걸음질을 친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방안 곳곳을 뒤적거린다. 장롱의 문을 열자 그 안에 걸려 있는 형형색색의 옷들이 눈을 아프게 한다. 나풀거리는 레이스와 얇은 천 사이로 조금 투박한 느낌의 옷 한 벌이 눈에 띈다. 교복이다. 상의와 하의가 옷걸이 하나에 함께 걸려있다. 서둘러 옷걸이로부터 옷을 빼내어 상의에 달린 명찰을 찾는다.

「미우라 아즈사」

분명 모르는 한자일 터인데, 어째서인가 나는 이 이름을 올바르게 읽을 수 있다. 생각해보면 달력을 볼 때도 그랬다. 모든 일본어글자들이 너무 친숙하달까, 너무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서 모르겠다던가, 어렵다던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마치 자신의 모국어를 읽는 것만 같다.

역시 나는 되살아난 건가? 내가 아닌, 새로운 인간으로?

문득 자신의 몸을 더듬어본다. 하나도 낯설지 않다. 소름이 끼칠정도로 익숙하다. 내가 아닌데, 내가 전혀 모르는 여자아이의 몸인데, 느껴진다. 이건 나다. 내 몸이다.

────♪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알람시계 옆에 놓여 있던 블랙컬러의 스마트폰이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울어대고 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엄마. 액정에 뜬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엄마'라는 사람이 결코 내 엄마는 아닐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난생 처음 만져보는 기종의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통화버튼을 누른다. 아니나다를까 수화기 너머로부터 어느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세요?」

"........."

「일어났니? 아즈사?」

"네, 네."

내 목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지금 이 몸이 자신의 몸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몸이 아님을 떠올린다. 내 원래 목소리는 이렇게 얇고 간드러지지 않는다. 이런 목소리,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흉내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게 내 목소리다. 꾸밈없는 내 진짜 목소리.

「엄마는 지금 막 이탈리아에 도착했단다. 정말 피곤하구나.」 문득 수화기 너머로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그 주위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소리도.

「집을 떠나기 전에도 말했지만, 너를 혼자 두게 되어서 정말 미안하다.」 아무래도 그녀는 지금 공항에 있는 것 같다.

「아빠도 3개월 후에나 집으로 돌아오실 거야. 우리가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 알고 있지?」

"네."

모른다. 뭔가 복잡한 집안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내 엄마가 이탈리아유학파 출신의 잘나가는 패션디자이너인가? 내 아빠가 그런 엄마를 대신해 나를 키웠나? 잘난 아내를 견딜 수 없어서 바람을 피웠나? 그래서 별거를 하기로 했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아침은 먹었니?」

"아, 아뇨. 아직..."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밥을 먹을 여유 따위가 있을까보냐. 하지만 아까부터 배가 꼬르륵거리고 있긴 하다.

"지금 막 일어났어요." 원래의 나는 아침이 되면 입맛이 뚝 떨어지는 타입의 인간인데, 이 여자아이는 나와 달리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챙겨먹었나 보다. 몸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을 운영하는 시스템이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늦잠을 잤구나. 학교에 늦지 않도록 하렴. 아침 꼭 먹고.」

학교.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혈압이 치솟았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그런가... 나는 학생인 건가... 여자아이의 앳된 외모를 봐서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내가 학창시절로 되돌아가게 생겼다고 생각하면 또 혈압이 오르려고 한다. 난 학교가 싫다. 옛날에도 정말 미치도록 싫어했고, 지금도 싫어한다.

"저기, 어... 엄마?"

「그래.」

이 여자, 아니, 엄마는 지금 굉장히 길을 재촉하고 있는 것 같다. 수화기너머로부터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상당히 높은 굽의 하이힐이 내는 소리. 이만한 딸을 두고 있다면 40대이거나 아무리 적어도 30대 후반일 텐데, 말투도 그렇고 상당히 세련된 여성인 것 같다. 그런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니 애당초 어린 딸내미를 두고 지구반대편의 멋드러진 휴양지로 날라버린 거겠지.

"이런 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전 지금 어느 학교에 다니고 있죠?"

「세이하라 고등학교잖니.」

"몇 학년이죠? 반은요?"

「1학년. 반은... 확실히 A-2였지.」

"그렇지, 참. 고마워요."

「이상하긴.」

나는 바보다. 내가 바보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달리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솔직하게 저는 당신의 딸이 아닙니다. 딸의 몸을 차지한 다른 사람입니다. 라고 말해야 하나? 처음 몇 번은 농담으로 듣더라도 조금 지나면 나를 정신병원에 데려가거나 귀신 쫓는 무당에게 맡길지도 모른다. 서양 유학파라면 UFO를 연구하는 이상한 단체에 넘겨버릴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것은 좋지 않다.

"저 학교 다녀올게요."

「그래. 차 조심하렴.」

그리고 당신은 이탈리아에서 망할 바겟트나 먹어라! 통화를 끊고 스탠드 앞에 전화기를 던져놓는다. 아, 바겟트는 프랑스 거였지, 참. 나는 좀 더 이탈리아스러운 피자나 스파게티 등을 떠올렸어야 했다.

"하아─." 힘없이 침대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쉰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했던 것도 이제는 아득히 먼 옛날 이야기인데, 도대체 아버지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날더러 거길 다시 다니라니. 갑자기 다른 사람의 삶을 살라고 해도,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나는 아즈사란 아이의 몸을 차지한 것이 맞나? 살아있는? 아니면 그녀의 육체도 죽었다가 되살아난 건가? 뭐가 뭔지 쥐뿔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후자라고 믿고 싶다. 그도그럴것이 만약 아즈사가 살아있었다면 그녀는 나로 인해 뜬금없는 낭패를 본 셈이니까. 갑자기 다른 영혼이 자기 몸을 비집고 들어오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책장 앞으로 다가가 그곳에 꽂혀 있는 분홍색 두꺼운 다이어리를 꺼내든다. 펼쳐보니 일기가 적혀 있다. 어쩌면 이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지각을 하지 않으려면 서둘러 준비를 하고 나가야 한다.

"가볼까...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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