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사무실 안, 팔짱을 끼고 소파에 앉은 채 창밖의 네온사인을 바라보다가 문득 테이블 위로 시선을 옮긴다.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차갑게 식어 버린 음식들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음식들을 그대로 봉지 안에 담아 냉장고 안에 넣어둔다. 이렇게 많은 양은 혼자서 먹을 수 없을 뿐더러, 먹고 싶은 마음도 없다.
띠리리리링-...... "?" 주머니속에서 울어대는 휴대전화기를 꺼내들어 발신번호를 확인한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 수행을 위해서 쿠라인마을로 돌아갔던 마요이다. 오늘도 보나마나 내가 저녁을 먹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전화를 했을 것이다. "여보세요?" "나루호도군! 오늘은 어땠어? 드디어 언니랑 데이트한 거야, 응?" 나의 사무소에 자주 들르게 된 이래, 마요이의 관심사는 온통 나와 그녀에 대한 것 뿐이다. 지금은 그다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지만, 어린 여자아이의 호기심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이럴 때는 피곤해도 적당히 상대를 해주는 것이 신상에 좋다.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어. 일이 바빴거든." "인생에는 일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겠어. 정말 답답하다니까!" "........." 17살 여자아이에게 인생에 대한 설교를 듣다니,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언니 오늘은 사무소에 안 오셨어?" "왔는데 그냥 가버렸어. 당장 미츠루기를 만나야겠다면서." "...검사님?" 마요이가 의아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더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못한다. 이 녀석은 나와 이어줄 생각만 했을 뿐, 미츠루기의 모호한 관계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마요이와 처음 만난 것이 불과 한 달 전이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 두사람은 보통사람이 보면 일반적인 친구사이 같지만, 그들과 어린시절을 보낸 나나 야하리는 알 수 있다. 그들은 단순한 친구사이가 아니다. 그들의 사이에는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무언가 존재한다. ───내가 결코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무엇인가. "나루호도군은 언니가 검사님에게 가버려도 괜찮아?" "글쎄." "글쎄, 라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잖아......" "돌아올 거야. 걱정할 필요 없어."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그녀가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내게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있지만, 모른척하고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이고, 둘째로 그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딱히 그녀가 싫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래... 문제는 내 자존심과 질투심이다. 의 곁에 언제나 잘난 미츠루기가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충분히 행복해 보여서... '정말 내가 필요한 걸까?'하는 의심이 든다. 이런 기분을 마요이에게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나루호도군... 한 가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 "나루호도군 말야... 평소에는 언니에게 친절하지만 어떨 때는 차가운 얼음인간 같아. 뭐랄까... '그 이상 다가오지 마'라고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 모습을 보면 언니가 쉽게 고백할 수 없을 만도 해. 나루호도군에게 어떤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언니를 좋아한다면 조금만 더 마음을 열어줘." "........." 확실히 나는 에게 마음을 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예전 부터 그녀가 용기를 내서 다가오면 그 만큼 뒤로 물러나서 그녀와 거리를 유지해왔다. 그것을 '경계한다'고 표현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나는 눈앞의 보다 그녀의 곁에 서 있는 남자들에게 집중하면서 남몰래 질투하고, 그녀를 외면했다. 내가 자신의 감정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이유는 어느 순간 부터인가 자신의 감정이 단순한 질투심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독점욕과 다름없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복잡하게 생각할필요가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을 진작 포기했다. 만약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나는 줄곧 진실을 외면해온 것이 된다. 는 그런 나로 인해 그동안 많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문득 지난 날들의 추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후회되고, 가슴이 아려온다. "네 말이 맞아... 나는 이따금씩 그녀의 앞에서 바보처럼 행동할 때가 있어." 지금 생각해보면 가 미츠루기를 떠날 수 없는 것은 내가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그것이 나의 실수였다면 지금 부터라도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언니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마." "그럴 거야. 이대로 어떤 이변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어렸을 때 부터 그녀를 특별하게 여겨왔다. 자신의 감정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조차 알지 못한 채, 애매한 상태로. 이제 그 매듭을 지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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