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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루기..." 구치소에서 무사히 풀려나 밖으로 향하던 중, 우연히 미츠루기와 마주쳤다. 재판이 끝난 뒤로 그와 얼굴을 마주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 무죄판결을 받았으니 더이상 그에게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알고있다. 하지만 지난날 내가 그에게 느꼈던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은 여전히 나의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다. 그 때문에 차마 그를 향해 전과 같이 웃어보일 수가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거냐?" "응......" 단정한 옷차림에 무뚝뚝한 표정, 차가운 말투.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처럼 미츠루기의 모습은 평상시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런 그의 앞에서 문득 상처투성이인 나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낀다. "나루호도는 어딨지? 널 데리러 오지 않은 거냐?"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그렇군." 때로는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미츠루기는 강하고 냉정하다. 지금의 나,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감정이 북받쳐오를 것만 같은 나와 너무나도 대조되는 모습이다. 시간이 지나 마음이 안정을 되찾으면 괜찮아지겠지만 지금은 그와 똑바로 얼굴을 마주보기조차 어렵다. 그저 이 상황으로 부터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럼 난 이만 가보겠다." "...미츠루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뭐냐?" 나를 지나쳐 가려던 미츠루기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넌 이번 사건의 범인을... 정말 나라고 생각했어?" "........." 미츠루기는 한동안 입술을 굳게 닫고서 가만히 나를 응시했고, 결국 아무런 대답도 돌려주지 않은 채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로 부터 3개월 동안 나는 나루호도와 예전처럼 편한 친구사이로 지내게 되었고, 매일 그의 사무소에 들러 일을 도왔다. 직장을 잃어버린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잡심부름 정도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다지만 그런 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루호도, 나 왔어." "어서 와." 나루호도는 꾸준히 사무소를 방문하는 의뢰인들로 인해 언제나 바쁘다. 밤을 지새우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 보다 많고, 나나 마요이가 없으면 끼니를 거르기 일쑤이다.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좋지만, 이따금씩 그의 몸상태가 걱정된다. 그것이 내가 그의 사무소에 매일 들르는 이유중 하나이다. "손에 든 건 뭐야?" "오는 길에 야끼소바를 팔길래 사왔어. 아직 식사 전이지?" "응." "급한 일 없으면 식기 전에 먹자." 테이블 위에 음식을 펼쳐두고, 사무실 한 편의 작은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두 개의 잔에 따른다. 그 사이 나루호도가 피곤한 듯 어깨를 주무르며 소파 위에 앉는다. "맛있겠다." "20분 동안 줄 서서 사 온 거야." "정말? 고마워." 그가 나를 향해 가볍게 웃어보인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나루호도의 모습이 내가 못 보던 사이 참 많이도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3년이라는 시간은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다. 겉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현재 그의 점잕은 행동과 온화한 말투는 확실히 예전과 다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더이상 어리숙하던 예술학부 학생의 모습은 그에게서 찾아 볼 수 없다. "." "응?" "요즘 미츠루기랑 연락해?" "아, 아니... 왜?" "그 녀석이 요즘 네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서." "........." 내가 미츠루기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나루호도가 나의 마음을 정확히 치고 들어온다. "오랜만에 연락해보지 그래?" "글쎄, 그 사건 이후로 아직 조금 어색해서......" 고개를 돌려 창밖의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 나에게 구치소에 있던 한 달 간은 매일매일이 흐리고 서늘한 날씨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그가 내 곁에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때 미츠루기는 내 담당검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도 있었어. 그런데도 그 일을 직접 맡아서 했다는 건..." "조금이라도 너를 의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 나루호도와 미츠루기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눈.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점이다. "미츠루기에게 넌 둘도 없는 친구야. 그런 너의 운명이 걸려있는 재판이었으니, 녀석의 성격상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에게 수사를 맡기는 게 당연하잖아." "가장 신뢰하는 사람...?" "대부분의 사람이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 미츠루기에게 가장 신뢰할 수 있던 사람은 바로 미츠루기 자신이었어. 검사들 중에는 자신의 커리어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는 녀석들이 종종 있거든. 미츠루기가 그 사건을 직접 수사했던 건 그러한 조작을 막기 위해서였지, 딱히 널 의심했기 때문이 아니야." "하지만......" 검사들에게 재판에서의 승률은 곧 그들의 커리어로 직결된다. 물론 미츠루기에게도 마찬가지다. 미츠루기는 세간으로 부터 '천재검사'라 불리울 만큼 높은 커리어를 지녔고, 스스로 그것에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만약 미츠루기가 처음 부터 나의 결백을 믿고 있었다면 굳이 자신의 커리어에 흠집을 내면서 까지 그 사건을 맡았을 리가 없다. "미츠루기는 언제나 무뚝뚝한 표정에 차가운 말만 내뱉지만 속이 깊은 녀석이야. 그건 나 보다 네가 더 잘 알잖아." "........." 멍하니 나루호도의 말을 곱씹어본다. 미츠루기와 나는 서로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어 어렸을 때부터 마음이 잘 통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지내왔다. 아마 그의 어머니와 스승인 카루마씨를 제외하고 그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 나일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는 딱히 나의 재판 때뿐만 아니라 언제나 완벽한 검사였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을 뿐, 속으로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을 주곤 했다. 미츠루기의 진짜 모습은 밤송이처럼 두껍고 날카로운 껍질 속에 가려져 있다. 재판의 충격 때문에 내가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네 말이 맞아... 나 아무래도 미츠루기를 만나봐야 할 것 같아." "잘 생각했어." "오늘은 이만 가 볼게, 나루호도." "지금 당장 가려고?" "응." 한 때 미츠루기와 같은 검찰청에서 일했던 나는 그의 스케쥴을 잘 알고 있다. 오늘은 일주일에 딱 한 번 그에게 두 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날이다. 지금 쯤이면 아마 자신의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소일거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졸지에 혼자 밥을 먹게 된 나루호도에게는 미안하지만 미츠루기가 나에 대한 걱정으로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다음 주가 오기를 차마 기다릴 수가 없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그를 만나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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