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남자들이 살을 맞대고 사는 마츠노가는 멋드러진 상가들에 둘러쌓인 전통가옥답게 언제나 고요한 편이었지만, 그날따라 높은 고성이 울려 퍼졌다. 장남인 오소마츠가 장난삼아 흘린 말로 인해 토도마츠와 카라마츠가 다툼을 하게 된 것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며칠 전 이치마츠가 잠든 카라마츠의 옷을 몰래 입어보고는 오소마츠의 앞에서 해괴한 연기를 했던 일이었다. 토도마츠는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고백을 하고 이치마츠를 덮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자신의 안에서 툭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형제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한데 형제라면 누구라도 상관하지 않는다니. 그렇잖아도 며칠 전부터 카라마츠가 자꾸만 오소마츠와 이치마츠의 눈치를 보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였다. 토도마츠는 뒤에서 그런 일을 벌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카라마츠가 미웠고, 그의 손이 뺨에 닿는 순간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카라마츠의 손을 툭 쳐냈다.
그로부터 얼마나 더 그런 일이 반복되었을까. 처음 카라마츠는 어떻게든 토도마츠의 오해를 풀어보려고 노력했다. 마음 같아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지만 행여 이치마츠가 곤란해질까 봐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화가 난 토도마츠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가 없었기에, 단지 그의 곁에서 ‘아니다’, ‘오해다’, ‘믿어줘’, 그런 말을 반복했다. 아무리 무시당하고 경멸당해도 참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토도마츠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을 때, 위태로이 팽창해 있던 그의 마음이 펑 하고 터졌다. 갈라진 틈새로부터 온갖 악한 감정들이 마구 흘러나왔다. 오소마츠의 말은 믿으면서 왜 자신의 말은 믿지 않는 걸까. 그렇게나 서로 좋아하고 아꼈었는데, 어쩜 그리도 쉽게 이별을 결정할 수가 있을까. 밉다, 밉다, 밉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들은 곧 비디오의 필름이 되감기 되듯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모습을 감추었다. 아무리 미워도, 카라마츠는 토도마츠의 연인이기 이전에 형이었다. 자신의 감정보다는 동생의 감정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그는 지난 날 토도마츠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속으로 3을 셌다. 늘 그랬듯이 단지 3초면 그에 대한 미움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 후 카라마츠는 소파에 엎드리고 누워 울고 있는 토도마츠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또 외면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 외로 토도마츠는 카라마츠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이 슬픔과 분노와 배신감 등으로 말이 아니게 망가져 있었다. 카라마츠는 가슴이 미어졌지만 애써 괜찮은 척하며 한 쪽 팔로 그의 다리를 휘어잡고 나머지 한 쪽 팔로 등을 받쳤다. 그리고 토도마츠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렇잖아도 마른 체형인 토도마츠가 아침부터 줄곧 울었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욱 가볍게 느껴졌다. 카라마츠는 소파에 앉고서 그대로 토도마츠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토도마츠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하지만 그는 토도마츠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는 너와 헤어질 수 없다. 형으로서, 연인으로서,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밉다면 그대로 있어도 좋다. 나는 미움받더라도 항상 너에게 최선을 다할 거다. 내게서 멀어지지만 말아라…….”
국어책을 읽어내려가듯이 딱딱하게 들려오던 토도마츠의 목소리가 서서히 줄어드는가 하면 이내 그의 입속으로 숨어버리고는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딱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엇을 어디부터 걸고 넘어져야 하는 걸까. 문득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종이에서 꾸깆-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러한 침묵도 잠시.
“이게 뭐야?”
나는 능청스레 시선을 모로 돌리며 귀를 후비적거렸다.
“BL이잖아.”
“그래, BL인 건 알아. 너에게 이런 취미가 있다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고, 네가 거기에 대해서 글을 쓰던 그림을 그리던 아무래도 좋아. 지금 내가 묻고 있는 건 왜 하필이면 쿠소마츠형과 나를 엮었냐는 거야.”
“뭐랄까, 카라마츠의 벤츠력이 가장 돋보이는 조합은 역시 카라토도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그것은 문득 스쳐지나간 생각이 아니라 지난 날 토토코와 긴 토론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지금까지는 카라마츠가 세메인 경우 보통 이치마츠가 우케였지만 최근 이치마츠는 그다지 우케 같은 구석이 없고, 있다고 해도 우케가 세메를 괴롭히는 구도가 되어 버려서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카라마츠는 상냥한 형(혹은 동생)이라는 점에 매력이 있는 거니까, 그런 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대체적으로 어리광쟁이 역을 맡는 막내와 엮는 것이 좋다. 사람 마다 취향이 다르다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자면 그렇다.
“그러니까 희망사항이 너무 많아!!! 현실과 다르다고!!! BL이라는 시점에서 이미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지만 말야!!! 변태 나르시스트 싸이코패스 쿠소마츠형 어디 갔어?!! 누구야, 이 왕자님 캐릭터는?!! 성인 남자에게 공주님안기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니, 카라마츠라면 토도마츠정도는 거뜬히 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무게와는 상관없어!!! 내가 이 손가락으로 눈을 콱 찔러 버릴 테니까!!!”
“너무해……. 아, 아니, 이건 괜찮은 소재일지도.(끄적끄적)”
“무얼 또 적고 있어?!! 그만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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