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여기에 싸인 부탁드립니다.”
“네.” 평화로운 오후. 나는 택배아저씨에게서 건네받은 상자를 끌어안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현관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갔다. 상자 표면에 EMS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새겨진 국제택배를 받을 때의 설레임이란.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대충 알고 있으면서도, 바다를 건너 온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괜스레 기분이 들떴다. 한국으로부터 보내온 상자를 열면, 언제나 가장 위에 편지가 놓여 있었다. 이번 편지에는 일전에 부탁했던 것을 넣어두었다, 덧붙여 이곳의 친구들에게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는 편지를 읽은 뒤 그것들을 보관함 안에 넣어두고 상자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낱개포장된 다섯 개가 하나의 묶음으로 되어 있는 것, 그것은 확실히 내가 찾고 있던 한국의 라면이었다. 물건들을 정리한 뒤 문득 출출함을 느낀 나는 형제들의 방으로 향했다. 방에는 카라마츠와 토도마츠 두 사람이 있었고, 오소마츠를 비롯한 다른 형제들은 모두 외출을 하고 없었다. “둘 다 아직 점심 전이지? 셋이서 라면 끓여 먹자.” 카라마츠는 손에 쥐고 있던 거울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내가 도울 테니 토도마츠는 이따 부르면 나와라.” 이윽고 토도마츠도 그를 따라 일어나서 기지개를 폈다. “나도 갈래. 계속 앉아 있었더니 좀이 쑤시네.” 나는 두 사람에게 가스렌지에 물을 올려달라고 부탁하며 그들을 먼저 1층의 주방으로 내려보낸 뒤 자신의 방에 두었던 라면을 가지러 갔다. 내가 주방에 도착했을 때는 물이 서서히 끓기 시작하고 있었다. “뭐야, 이거. 또 매운 거야?” 토도마츠가 싱크대 위에 올려 두었던 라면을 보더니 그것을 잡고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냐니, 이 봉지를 봐, 봉지를! 배경에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고, 국물은 엄청 빨갛고, 결정적으로 고추그림이 있잖아! 하○네로의 ‘ㅎ’ 위에 꽂혀 있다고!” “그런가─.” “뭐가 그런가야! 누굴 장님으로 아나! 보나마나 너 또 우리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웃을 셈이지?” 토도마츠는 이…! 하고 말을 삼키면서도 내 머리에 강한 꿀밤을 놓았다. “나도 처음 먹어보는 거야. 그런 건 원래 나눠먹고 싶은 거잖아.” 나는 맞은 부위를 손으로 감싸고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구시렁댔다. “그렇다. 시스터의 마음을 오해하지 마라, 토도마츠.” 그렇게 말하는 카라마츠도 지난 번에 내게 한 번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인지 조금 께름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매번 그냥 넘어가주니까 바보취급을 당하는 거야.” “뭐가 어쨌든 시스터가 같이 먹고 싶다잖냐. 불평 그만하고 탁자에 그릇이나 갖다 놔라.” 카라마츠가 차곡차곡 쌓아놓은 식기들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토도마츠는 속으로 분해하면서도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형인 카라마츠를 무시하기 일쑤이면서 그가 조금 엄한 목소리로 말하면 곧잘 듣는 토도마츠였다. 그러고보니 화났을 때 가장 무서운 형이 카라마츠라고 했던가. 나는 끓는 물에 면과 스프를 집어넣으며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내 곁에 있는 카라마츠는 여전히 상냥한 사람이었고 그런 그에게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토도마츠의 심정에 공감이 갔다. … … … “잘 먹겠습니다.” 토도마츠는 여전히 미간을 좁히고 있었지만 그래도 수저를 쥐고서 식사를 시작했다. 그는 면보다 국물을 먼저 먹어보고는 ‘이 정도는 아직 괜찮아’ 라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자 그 표정은 일그러졌다. 물론 매운 것에 그다지 강하지 않은 카라마츠도 마찬가지였다. “이야─. 한국인들은 여러 가지 의미로 정말 대단하군─. 뭐랄까…… 나로서는 도저히…… 흡…… 범접할 수 없는…… 하…… 그런 맛이다─. 하하하─.” 카라마츠 표정관리, 표정관리. 지금 표정 엄청 위험해.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웃음을 참았다. “이럴 줄 알았어! 뭐야 이 터무니없는 매움은! 너희 나라 사람들 전부 식도 괜찮냐? 위는? 이런 걸 돈 주고 사서 먹는다니 믿을 수 없어! 사람 맞아? 괴물 아냐? 으아아아!”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전세계 어디에 가도 있을 터인데, 아무리 맵다고 해도 우리 나라 사람들 전체를 괴물이라고 말할 것까지는……. 나는 토도마츠의 언사에 단단히 심술이 돋았다.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묘한 유쾌함이 느껴져서 손으로 살며시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아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폭소를 터뜨릴 것 같았다. 토도마츠는 물을 마시면서도 매운 맛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잔을 홱- 꺾었다. 그러나 순수한 물로는 입안에 남아 있는 매운맛이 좀처럼 씻겨내려가지 않는다. 그럴 때는 우유나 스프 같은 다른 무언가를 마셔야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악마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나도 이 집에서 아주머니 만큼이나 요리를 자주 하니까, 너희도 슬슬 내 매운 맛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돼. 한 편 카라마츠는 물도 마시지 않고 젓가락과 앞접시를 꽉 움켜쥔 채 매운 맛을 참고 있었다. “점잖게 먹도록 해라, 토도마츠. 음식 하나에도 아픔의 미학이 있는 거라 생각하고…….” “아픈 건 형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거든! 어째서 먹으면서까지 아픔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나는 키득거리며 웃다가도 천천히 손을 내렸다. 이러다가 만일 한국음식에 거부감이 생기면 어떡하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몇 번이나 이런 일을 겪고나서 또 내게 어울려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운 맛으로 장난을 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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