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을 뜨는 순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아침을 먹고나서 곧바로 방으로 돌아와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눈을 떠보니 벌써 정오가 넘은 시간이다. 푹 자고 일어났더니 기분은 조금 나아졌지만 나른해서 하품이 나온다.
나는 기지개를 펴며 복도를 지나 형제들의 방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외출준비중인 쥬시마츠가 보였다. "운동 가는 거야?" "응─. 같이 갈래─?" "오늘은 패스. 내일 하자." "알았어─. 그럼 다녀올게─." 생각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탁상 위에서 연습장 같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보니 표지에 크로키북이라고 써 있고, 그 옆에는 몽땅한 4B연필이 놓여 있다. "쥬시마츠, 이거 누구 거야?" "토도마츠 거─." "그렇구나. 구경해야지." "허락 맡는 게 좋지 않겠어─?" "살짝 보는 건데, 뭐. 괜찮아." "난 모른다─?" 쥬시마츠가 방에서 나간 뒤, 나는 탁상 앞에 앉아 크로키북을 펼쳐보았다. 설마하니 드라이몬스터 토도마츠에게 이런 취미가 있을 줄이야. 초등학생수준의 낙서가 나오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막상 페이지를 넘겨보니, 그의 그림은 내 실력을 월등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선택할 수 있는 컬러는 진한 검은색과 연한 검은색 두 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조로운 그림은 하나도 없었다. 말을 타고 가는 기수의 모습은 그 빠르기를 느낄 수 있을 만큼 꽤 역동적이고, 지하철의 풍경에는 꾸벅꾸벅 잠을 자고 있는 사람, 휴대전화기로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 등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단지 종이와 흑연을 사용했을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그릴 수 있는 걸까. 여태껏 모노풍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이것은 컬러 이상의 매력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라?" 나는 페이지를 넘기고 있던 손을 멈추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어린여자아이의 모습이 계속 나오는가 하면, 모두 동일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희한한 것은 그 여자아이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마치 어린시절의 나 같았다. "오소마츠가 그린 건가?" '그럴 리가 없지.' 나는 홀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소마츠는 그림에 전혀 흥미가 없고, 그다지 잘 그리는 편도 아니다. 게다가 그림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크로키북의 그림들은 모두 한 사람이 그린 것이다. 토도마츠 외의 다른 사람은 생각할 수 없다. "기분 탓이겠지." 토도마츠가 내 어린시절의 모습을 알고 있을 리가 없다. 만약 그것을 상상해서 그린 것이라면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내 추측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말 많이도 그렸네." 크로키북은 거의 중간부분부터 끝까지 온통 한 사람의 모습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그림들은 하나 같이 예쁘고, 따뜻함이 느껴졌다. 상대방에게 깊은 애정이 있지 않은 이상 그렇게 그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어린시절 모습'을 그렸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을 이성적으로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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