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밤.
 저녁을 먹은 뒤 여느날처럼 세안을 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복도 위를 걷고 있노라면, 문득 어깨 너머로 나를 부르는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스터."

 "응?"

 올 것이 왔구나.
 어떤 말을 들어도 절대 놀라지 않을 거라고 굳게 다짐한 나는 무던히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목을 한 번 가다듬은 뒤 그를 돌아보았다.

 "잠깐 할 얘기가 있다만."

 "뭔데?"

 그는 바로 말을 꺼내려다 잠시 주춤 하고는 시선을 모로 돌리며 뺨을 긁적였다. 딱히 긴장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정말로 괜찮은 것인지 속으로 고민하며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토도마츠에게 미리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더라면, 카라마츠의 이 표정을 보고도 아마 나는 여기에 무언가 미리 계획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화를 내며 주먹을 날리지 않으면 실패라고 하니, 어쩌면 토도마츠가 일부러 카라마츠를 곤란하게 만들려고 내게 얘기를 한 것인지도 모른다.

 불쌍한 카라마츠를 위해 한 번쯤 연기를 해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나를 내기의 벌칙 따위에 멋대로 집어넣은 것이 괘씸하다.

 여기서는, 카라마츠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절대. . . .

 덥썩─.

 내가 무방비해진 사이 돌연 카라마츠가 내 팔을 붙잡고 홱 잡아 당긴다. 쾅! 벽에 등을 부딪혀 잠시 아픔을 호소하다 감았던 눈을 떠보니, 어느덧 어두운 그늘 속에서 카라마츠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와…"

 "나와… ㅅ…섹○하지 않겠나."

 "……."

 어떤 말을 하더라도 절대 당황하지 않겠노라 생각했는데, 무심코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미 진상을 알고 있으면서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그것으로 모자라 두근두근 뛰어댄다.

 카라마츠로서는 이것이 내게 확실하게 맞을 수 있는 방법인가… 그야, 사귀지도 않는 남자로부터 갑자기 그런 말을 듣는다면 당연히 화를 낼 것이다. 꼭 여자가 아니여도, 누구나.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상대방을 역으로 당황시켜주지 않으면!

 "카라마츠는 나를 그런 가벼운 여자로 보고 있었구나…"

 "하?"

 "너무해… 아무리 내가 가족들과 떨어져 타지에서 외롭게 산다 해도, 부탁하면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다니…"

 "다, 달ㄹ…"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우는 시늉을 하자,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카라마츠가 안절부절 못하며 내게 손을 뻗었다가 거두기를 반복한다. 이게 아닌데. 그의 얼굴이 정확히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 카라마츠 따위 몰라! 다시는 아는 척도 안 할 거야!!!"

 다다다다다─.

 "기다려!!!"

 가만히 있던 나를 건드린 벌이다, 바보. 나중에 오소마츠녀석도 제대로 응징해줘야지.

 그보다 저 드라이몬스터는 언제부터 저기서 동영상을 찍고 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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