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어린시절을 내가 어떻게 알아?"
"역시 그렇지?"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토도마츠와 나는 오소마츠를 통해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뿐, 실제로 얼굴을 본 것은 성인이 되고나서니까. 그런데도 토도마츠 몰래 휴대전화기로 찍어놓은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자꾸만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무의식중에 그에게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려 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나는 정말 몹쓸 인간이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탁상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손으로 턱을 괸다. 이래서야, 몹쓸 인간이라는 말을 들어도 별 수 없다. 여자아이가 누구인지 신경이 쓰여서, 알고 싶어서, 온종일 그것에 대한 생각만 하게 된다. 차라리 AV에나 나올법한 성인 여자의 관능적인 모습이라던가, 그런 것을 그렸다면 나았을 텐데. 그러면 '음흉한 자식'하면서 웃어넘겼을 테니까. 그렇게 많은, 정성이 담긴 그림을 보고서 어떻게 풋풋한 첫사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무리다, 무리. "혹시 너… 내 크로키북 봤어?" "응." 그가 묻는 순간 가슴이 뜨끔, 한다. 하지만 그림을 훔쳐본 것 정도는, 내가 여태껏 토도마츠에게 쳤던 못된 장난들에 비하면 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면 분명. . . . "그럼 하는 수 없네. 사실대로 말하는 수 밖에." "?" "실은 나, 어렸을 때 너 본 적 있어." … … … 내가 6살이었을 때 감기에 걸린 오소마츠가 한동안 놀러오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가서 무작정 오소마츠를 찾아다녔다. 쉴 새없이 기침이 나오는 탓에 자칫하면 길한복판에서 혼자 쓰러질 뻔했지만, 그런 와중에 오소마츠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그 날에 대해서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와 노을이 내려앉을 때까지 재밌게 놀았다는 것뿐. 어찌보면 특별하고, 어찌보면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그런 하루였다. 그런 나로서는 10년도 넘은 뒤에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그때 그 남자아이가 사실은 토도마츠였다니. 그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전봇대에 기대어 기침을 심하게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고, 처음에는 그저 내가 걱정 되어서 말을 걸었던 것 뿐이라고 했다. 모르는 여자아이가 갑자기 목을 끌어안으며 기뻐할 때는 자기도 놀랐다며. 나중에는 착각하는 나를 보는 것이 재밌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정말 자신이 오소마츠라는 착각을 해버려서, 나와 헤어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려서, 사과할 기회가 없었다고. . . . "여자아이의 그림들을 보면 전부 같은 옷에 같은 신발을 신고 있잖아. 이거, 그 날 네가 하고 있던 차림새를 그대로 그린 거야." 사실 어린시절의 내 얼굴은 나 자신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찍는다고 해도 옛사진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 내가 그림을 보자마자 '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림속의 여자아이가 실제로 내가 입었던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뭘 이렇게 많이 그렸어?" 우리는 단지 반나절도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놀이터에서 놀았을 뿐인데, 그의 그림은 몇 년 동안 나를 관찰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다양하고, 사소한 부분까지 아주 구체적이다. 내가 스카프를 풀고 있는 모습, 내가 꽃에 물을 주는 모습, 내가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 내가 휴대전화기를 만지는 모습. . . . 잠깐, 휴대전화기? "이것들 전부 현재의 나를 어린아이모습으로 표현한 거구나." "뭐, 그런 셈이지…" 시선을 가로 돌리며 대답하는 것은 불편한 질문을 받은 사람의 반응. 그러나 더욱 궁금해진다. "왜?" "그냥…" 불편함이 극에 달한 듯, 그는 두 손을 가슴높이로 들어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냥 나도 너와의 추억을 좀 더 많이 가지고 싶었어. 그게 안 되니까 그림으로 대리만족한 것 뿐이야. 됐어?" 그의 목소리가 돌연 템포를 올리는가 하면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드라이몬스터의 쑥스러워 하는 모습이라니, 정말이지 드물게 좋은 광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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