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내가 느꼈던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며칠 전, 저녁을 먹고나서 자신의 방에 돌아가던 중 돌연 토도마츠에게 팔을 붙잡혀 빈 방으로 끌려갔다. 어쩐지 데자뷰 같은 상황. 어쩌면 나는 그때 불안함을 감지하고 도망쳐야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에?”

 “이번주 금요일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고.”

 “에…… 에……? 어째서……?”

 토도마츠는 목덜미를 긁적이며 뜸을 들였다.

 “저번에 제대로 NO라고 전했지……?”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나였다. 나는 그 시점에서 이미 두 손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린 채 이리저리 휘두르며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말하기 전에 녀석이 먼저…….”

 그 순간 무엇보다도 내게 필요했던 것은 그러한 터무니 없는 상황에 대한 간단명료한 설명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납득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토도마츠는 말끝을 흐렸다가 거기서 끝내 버리고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어쨌든 그런 줄 알고 있어. 이미 정해진 거니까 어쩔 수 없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잠깐 기다려! 무리! 절대 무리! 내 성격 알잖아! 낯선 남자와 미팅이라니, 부끄러워서 죽어, 나!!!”

 나는 너무 당혹스러운 나머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 버렸다. 토도마츠가 그런 내 입을 서둘러 틀어막았다.

 “쉿! 동네방네 저 미팅합니다 소문 낼 일 있냐? 오소마츠형이 알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

 정말 오소마츠가 알게 되면 어떡하지. 나는 토도마츠의 말을 듣고 무심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번뜩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오소마츠가 있으니까 미팅 같은 거 못 한다고, 애당초!”

 나는 토도마츠의 가슴팍을 두 손으로 확 밀어냈다. 이에 그가 휘청거리며 조금 당황하는가 싶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녀석에게 그렇게 말했어, 처음에.”

 “그런데?”

 “좋아하는 사이라고 해도 아직 사귀지 않는다면 OK래.”

 “하아? 뭐야, 그게?”

 그쪽은 괜찮을지 몰라도 이쪽은 곤란해.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토도마츠가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은 원래 무언가 마음을 먹으면 사사로운 일에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추진하는 성격이야. 그런 성격 덕분에 그 나이에 거기까지 올라간 거니까 무리도 아니지.”

 “…….”

 나는 고개를 모로 돌렸다가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는 그대로 두 눈을 질끈 감고, 저도 모르게 두 손을 꽉 쥐었다.

 “어쨌든 나는 안 가! 못 가!”

 ……분명 그렇게 말했을 터인데, 결국에는 금요일 저녁인 오늘 약속장소로 나와 버렸다. 토도마츠는 언변이 좋아서 일단 한 번 얘기를 나누게 되면 나 같은 쉬운 성격은 금방 넘어가 버리고 만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조심하려고 했는데, 나는 정말 바보다. 이런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아츠시군에게는 고맙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다.

 나는 지난 밤 내린 눈으로 희끗희끗 서리가 붙어 있는 아스팔트의 바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윽고 저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려오더니 멋드러진 차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운전석이 열리며 얼굴을 내민 사람은 역시 아츠시군이었다.

 “죄송합니다. 기다리고 계셨군요.”

 “제, 제가 일찍 나온 거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추운데 어서 타십시오. 아직 예약시간까지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가지요.”

 “네…….”

 나는 아츠시군에게 리드를 받아 차에 올라탔고, 달리는 차 안에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어색함을 견뎌냈다. 아츠시군은 사람을 대하는 일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는 듯이 여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생활영역은 집과 마켓이오, 인간관계는 가족 같은 친구들 뿐인 나로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거기 차가 있습니다. 괜찮다면 드십시오.”

 “네, 네.”

 줄곧 창문 쪽을 향해 있던 내가 비로소 아츠시군 쪽을 돌아본 것이 그 때 즈음이었던가. 나는 작은 홀더에 끼워져 있는 보온병과 그 옆의 보관함에 들어 있는 종이컵 하나를 꺼내 차를 따라 마셨다. 솔직히 그럴 여유 따위는 없었지만 차를 마시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에 조금 부산하게 행동을 서둘렀다. 따뜻한 차가 목구멍을 넘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순간 어쩐지 상당히 익숙한 향과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이건…….”

 “고산차입니다. 지난 번 제게 같은 것을 주셨지요.”

 아츠시군은 천천히 핸들을 꺾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원래 커피밖에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만, 그 이후로 차를 즐기게 됐습니다. 그렇게 맛있는 차는 처음으로 마셔봤거든요.”

 내가 다도를 배운 이래 처음으로 완벽에 가깝게 우려진 차. 그것이 그때 내가 아츠시군에게 건네주었던 차였다. 칭찬을 받고 내심 기뻤던 나는 쥬시마츠의 앞에서 그러했듯이 쑥스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런 말은 처음에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만, 마음이 내키시면 언제든 제게 말을 놓으셔도 됩니다. 토도마츠군의 친구라면 서로 나이도 같으니까요.”

 “예…….”

 우리는 그렇게 약속장소에서부터 음식점에 도착할 때까지 20분 간 드라이브를 했다. 몇 번이고 의미 없이 시계를 쳐다봤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아츠시군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색함이 다소 누그러지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긴장한 채로 음식점에 입성했다. 서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에 내부가 깔끔하게 인테리어 되어 있는 썩 훌륭한 곳이었다.

 “원래 말수가 적으신 편인가요?”

 식사를 하던 중 아츠시군이 내게 물었다. 그 순간 포크를 입에 넣고 있던 나는 하마터면 입천장을 찔릴 뻔했다. 그렇잖아도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속으로 죽어라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대방이 그렇게 물어오니 괜스레 움찔한 것이었다.

 “죄송해요……. 지루하시죠…….”

 처음에는 어색해서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계속 질문에 단답을 하거나 웃기만 하는 내가 아츠시군으로서는 답답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닌데도, 나는 좀처럼 버릇을 고칠 수가 없었다. 줄곧 그런 태도로 있으면 상대방은 내가 자신과의 대화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할 것임에 분명했다. 그래도 토도마츠에게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아츠시군은 나를 배려해주었다.

 “저는 원래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당신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습니다.”

 “뭐, 뭐든지 물어보세요. 성실하게 대답할게요.”

 나는 자신의 입으로 대답하고도 속으로 이마를 쳤다. 뭐가 성실하게야……. 무슨 면접이냐고……. 아……. 바보 같아…….

 “지금까지 저만 얘기했으니 이번에는 당신이 제게 무언가 질문을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저도…… 성.실.하.게. 대답하겠습니다.”

 “…….”

 얼굴이 확 달아오른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별로 목이 마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물을 마셨다. 그 차가움으로 열을 식히고나니 조금은 진정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저…… 저기…….”

 “네.”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네.”

 “왜…… 저를…… 만나고 싶다고…… 하신 건가요……?”

 아츠시군은 잠시도 뜸을 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당신에게 호감을 느꼈고, 당신과 가까워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내가 아츠시군과 눈이 마주쳤을 때 바람이 불었었지.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건 말이죠, 일종의 착각이에요. 제 페로몬냄새 때문에 뭔가…… 이렇게 저렇게 돼서…… 제가 현실과 달라보였던 걸 거에요, 분명.”

 아츠시군은 이전과 다르게 곧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내가 그에게서 듣게 될 말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 공백 만큼이나 그의 말이 나를 깜짝 놀라게 했기 때문에.

 “저는 알파가 아닙니다.”

 “예?”

 “알파가 아니라서 실망하셨습니까?”

 “아, 아뇨! 그게……. 아츠시군이 저를 처음 봤을 때부터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다니까……. 저는 당연히 제 냄새……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알파가 아닙니다. 그리고 단지 냄새 같은 것으로 누군가에게 흥미를 가질 만큼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전 당신의 얼굴을 보고, 눈을 보고, 분위기를 느끼고, 목소리를 듣고, 그러고나서 당신에게 호감을 느꼈습니다. 한 번 더, 제대로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

 나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무언가에 밀려나듯이 머릿속에서 당혹스러움이 사라지는가 하면, 가슴이 묘하게 죄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어째서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단 한 번도 자신을 ‘오메가 이전의 사람’으로서 생각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 그러십니까?”

 “그런 말을 듣는 게…… 처음이라서요…….”

 마침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소리. 나는 듣는 이의 기분에 따라서 평화롭거나 우울하게 느껴질 법한 그 선율을 귀에 담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츠시군은 그런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제 주변에는 세 명의 알파가 있어요…….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만약 내가 오메가가 아니었다면…… 그래도 지금과 같이 지낼 수 있었을까……. 나라는 여자한테서 페로몬을 빼면 뭐가 남을까…… 하고…….”

 내 말이 아츠시군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나는 속으로 고민했다. 하지만 그는 내게 답을 찾아낼 틈을 주지 않았다.

 “의심은 불확실에서 비롯되는 것이지요.”

 “?”

 “어떠한 관계가 당신에게 확실한 믿음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거기까지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사람의 마음이란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인간 관계에도 여러 가지 장애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의 속내 조차도 알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도 참고 견디며 계속 이어나가다보면, 언젠가 자신이 원하던 결말에 이르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구태여 불확실한 관계에 기대를 걸어서 상처입을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나는 미약하게 죄어오던 가슴이 크게 꿈틀대는 것을 느끼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상담을 받는 이유는 타인이야 말로 내가 처한 문제에 대해서 감정에 일절 구애를 받지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츠시군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애당초, 상대방이 알파가 아니라면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오메가인 나’를 좋아하는 건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문득 내 손이 오른팔로 향해졌다. 지난 날 물렸던 상처가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누구에게 물린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만큼 내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아츠시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내게 이런 상처를 주지 않겠지. 하지만 우울함 속에서도 내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미안해요, 아츠시군. 그래도 저는 역시…….”

 제 친구들을 사랑해요. 라고 말하려던 찰나였다.

 “불확실한 모든 것들을 버려야한다는 게 아닙니다.”

 문득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손에서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가 하면, 아츠시군이 내 손을 살며시 붙잡으며 말했다.

 “그냥 가끔은……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당신에게 확신을 줄만한 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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