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토도마츠의 옷에서 몰래 열쇠를 빼돌렸다. 그리고 모두가 외출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형제들의 방으로 향했다.

 드르륵─.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여유로이 안으로 걸어들어가 책상의 서랍을 열었다. 여러가지 필기구와 잡동사니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가운데 작은 통 밑에 살짝 끼어있는 작은 종이쪼가리가 눈에 띄었다. 평범한 종이가 아닌 매끄러운 필름. 그것은 사진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오소마츠와 함께 찍었던 사진이 그곳에 있었다. 왜라는 의문을 가질 여유도 없이, 사진은 책상 위로 떨어졌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사진속의 나는 행복한 듯이 웃고 있었다. 그런데 오소마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진이 정확히 반으로 찢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반쪽은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떨어진 사진을 주웠다. 그때 무언가 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잃어버렸어."

 오소마츠와 앨범을 보며 어렸을 적 함께 찍었던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거짓말 안 하고 정말 소중히 하고 있었는데, 어느순간 감쪽같이 사라졌어."

 혹시 토도마츠가. . . .

 "헉!"

 누군가 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문을 닫았어야 했는데. 소리없이 다가오는 존재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부러 인기척을 내지 않은 것은 분명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문앞에 서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이런 식으로 몰래 들춰내려 하다니, 너 의외로 음흉하구나?"

 "토도마츠, 저, 저기…"

 "못된 짓을 했으니까 벌을 받아야지?"

 "응?"

 "나를 부끄럽게 만든 만큼 너도 부끄러움을 느껴줘야겠는데."

 나는 토도마츠에게 팔을 붙잡혔다. 어차피 도망칠 생각 따위는 없었지만, 자신이 상대방에 속박되어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이윽고 토도마츠의 나머지 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나는 책상 위에 엎드린 채 그에게 등을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직감했다. 그대로 어떤 일을 당한다고 해도, 저항한다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토도마츠!"

 "쉿─. 지금 아래층에 형 있거든? 소리지르면 바로 달려올 텐데, 이런 모습 보여도 괜찮아? 나는 상관없지만 너는 곤란하잖아?"

 "읏!"

 '형 있거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번뜩 눈을 떴다. 그리고 토도마츠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벗어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적어도 필사적으로 거부의사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토도마츠는 내게 더욱 가까이 밀착해왔다.

 "이런 생각 안 해봤어? 형에 대한 네 기억중 일부는, 어쩌면 형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

 "넌 나한테 속은 거야. 한 번도 아니고, 여러번."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또 한 번 안간힘을 썼다. 토도마츠의 말에 머리가 혼란스러웠지만, 그러한 것은 나중에, 일단 그의 손에서 벗어난 뒤에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텨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난 지금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토도마츠는 상체를 숙여 나를 감싸안으며, 내 귓가에 대고 평소보다 조금 밝은 느낌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로서는 너한테 사랑받을 수가 없잖아. 안 그래?" 물론 그 밝음은, 결코 순수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 나는 점점 짙어져 가는 두려움에 마른침을 한 번 삼킨 뒤, 겨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다니, 뭐가?"

 "말했더라면… 나… 제대로 네 이름을 불러줬을 거야… 토도마츠, 라고…"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었어."

 "하지만…"

 내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자, 토도마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내 뺨과 목에 연이어 가볍게 키스를 했다.

 "우리 재밌는 거 할까."

 "뭐…"

 "여기서 하자고. 친구끼리는 절대 하지 않는 거─."

 이윽고 토도마츠의 손이 내가 걸치고 있던 카디건의 단추를 풀었다. 하나씩 천천히, 일부러 뜸을 들이며.

 "형이 언제 올라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엄청 긴장되지 않아? 그게 좋은 거잖아─."

 나는 토도마츠의 팔을 붙잡고 있던 두 손에 힘을 꽉 주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자칫 비명이라도 질렀다간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소마츠에게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행여 오소마츠와 토도마츠의 사이가 틀어질까 봐, 그것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을 억눌러도, 토도마츠가 내 옷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순간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싫어…"

 "뭐?"

 "나 오소마츠가 아니면 싫어…"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그러나 토도마츠에게는 그 소리가 확실하게 들린 모양이었다. 그의 손이 딱 멈추었다.

 "……."

 토도마츠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몸을 추스리려 했을 때 그의 손은 생각보다 쉽게 나를 놓아주었다. 그는 더이상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내게 무언가를 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시선을 정면보다 조금 아래로 향한 채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

 …

 …

"실은 말야… 나… 오소마츠가 아니야."

 "에?"

 "나, 오소마츠가 아니라고."


 넓고 한적한 공원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껏해야 내 허리까지 올 정도로 키가 작았던, 유구한 어린시절. 당시의 나는 오랜만에 답답한 집을 벗어나서 기분이 매우 들떠 있었고, 언제까지고 그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오소마츠가 그런 말을 꺼냈을 때, 그토록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던 것이었다.

"그런 말 하지마… 무서워!"

 "……."


 그의 검은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은 자신의 눈에도 상당히 애처로워보였다.

"난 오소마츠가 아니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오소마츠…"

 "오소마츠…?"

 "오소마츠…!"

 "그만!"


 털썩─.

 병약했던 나는 여느 남자아이들과 다름없이 건강했던 오소마츠의 손에 밀쳐져 벤치 위로 쓰러졌다. 이유도 모른 채 딱딱한 의자에 몸을 부딪혀, 아픔을 호소했다.

"……."

 나는 오소마츠와 눈이 마주쳤을 때 다시 한 번 그의 눈동자를 깊이 바라보았다. 차가운 유리알과도 같은 그의 눈은 또래의 어린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고요하고도 날카로운 감정을 띠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몰랐지만, 그러한 눈빛이 반드시 누군가를 상처입히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눈앞의 어린 소년에게 두려움을 품고, 아무 말도 못하는 벙어리가 되어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그러는 와중에 오소마츠의 얼굴이 서서히 온기를 되찾았다.

 한동안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던 오소마츠는 어느덧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미안, 아팠어?"

 "(끄덕)"


 그는 나를 일으켜세운 뒤 내 등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주었고, 여전히 겁을 먹고 있는 내 뺨을 부드럽게 쓰담듬어주었다.

"이제 그러지 않을게."

 그 뒤 나는 그날의 일을 최대한 빨리 자신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 했다. 내게 있어서 오소마츠는 언제나 상냥한 아이였기에 그렇지 않은 그의 모습은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의문을 품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내가 바랐던 대로 완전히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날의 오소마츠가 본래의 그와는 상당히 달랐다는 것을.

 …

 …

 …

 "처음엔…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했어."

 "계속 오소마츠형인 척해야 하는 건 싫었지만 너와 노는 게 정말 즐거웠거든."

 "하지만 당시의 나는 어쩔 수 없는 어린애였으니까…"

 "형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네 사진을 보고, 저질러버렸어."

찌이이이익─.

 "형은 아무것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 앞에 가서 사과했어."

 "미안해."

 "이거 이제 내 거야."

 "내가 형한테서 무언가를 뺏는 건 이게 마지막일 테니까, 용서해줘."

 …

 …

 …

 "이런 말, 너한테는 조금 소름끼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난 그때가 그리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거든."

 "날 보는 네 눈빛과 표정, 말투, 몸짓… 정말 모든 게."

 "그래서 네가 처음 나를 '내' 이름으로 불렀을 때 조금도 기쁘지 않았어."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워… 그때의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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