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도마츠 안에 있어? 들어갈게."

 지난번 토도마츠에게 빌렸던 물건을 돌려주기 위해, 형제들의 방 앞에 멈추어 서서 양해를 구한 뒤 문을 열었다. 한 명쯤은 집에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푹푹 찌는 더운 날씨에 다들 어디엘 간 건지 방이 텅 비어있었다. 저녁에 다시 올까 생각하다가 그냥 탁상 위에 올려두고 가기로 결정한 나는 남자의 땀과 향수 냄새 등이 남아있는 조용한 방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무언가 발에 걸리는가 하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주먹크기 만한 종이뭉치가 눈에 띄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러한 종이뭉치가 바닥, 탁상 위 등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었다.

 일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두껍고 거친 재질의 종이. 토도마츠의 크로키북을 찢어낸 것이었다. 나는 호기심에 구겨진 종이를 펼쳐보았다가 흠칫 놀랐다. 까만 흑연으로 그려진 자신의 어린시절 모습, 그 위로, 엉망진창 낙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의 모양새는 누군가 상당히 신경질적인 상태에서 마구 그어놓은 것으로 보였다. 다른 그림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다른 형제가 토도마츠의 그림에 그런 유치한 장난을 칠 리는 없다. 그것은 토도마츠 본인이 한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왜? 나는 조금 심각한 기분으로 구겨진 종이들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그러는 동안 1층에서부터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토도마츠라면 주저없이 물어보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종이를 탁상 위에 내려놓고 앉은 자세를 바르게 고쳐잡았다. 이윽고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맨 차림의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토도마츠였다.

 "이거… 네가 그런 거야?"

 방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외출을 한 시점에서 내가 그 그림들을 보게 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 터. 토도마츠는 소파 위에 가방을 던져놓고 모자를 벗은 뒤 유유히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내게 등을 보인 채, 서랍을 뒤적거리며 대답했다.

 "그리고나서 보니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

 나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그림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내 눈에 그 그림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기분을 모른다. 그래서 찝찝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더이상 추궁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공을 들여 그린 그림이라면 사소한 실수 하나가 상당히 거슬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토도마츠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책상 앞에 서 있었다.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던 그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가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것을 서랍으로 되돌렸다.

 "뭘 감추는 거야?"

 "아무것도."

 그는 주머니에서 열쇠꾸러미를 꺼내 서랍을 잠근 뒤 방을 나갔다. 덜컥─. 당연한 것이지만 단단히 잠겨있는 서랍은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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