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きって言ってみな。"

 붉은 저녁의 노을은 언제나 낮동안 벅차올랐던 가슴을 가라앉히고, 그 활기와 열기를 밤의 고요함과 안락함으로 바꾸어 포근하게 감싸준다.

 그날도 오소마츠와 나는 내 방과 이어진 마당의 작은 마루에 걸터앉아 헤어짐의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일 또 올게.' 그렇게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고도, 그러한 생활에 기한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소마츠의 얼굴을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안도감이라 하는 또다른 감정이 있었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도, 열심히 손짓을 하는 것으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했다.

"ね、ねえ、好きって言ってよ。"

 "…?"

 "ほら、好きー。"

 "……."

 "好きー。"


 오소마츠의 말속에서 반복되어 들려오는 한 단어, 好き(스키). 내가 말해주길 바라는 걸까. 그렇게 짐작한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스… 스키."

 "はい、よくできました。"
그는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중에서야 好き가 '좋아해'란 뜻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 수줍음에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곤니치와라는 인사 다음으로 가장 먼저 배운 일본어가 되었다.

 …

 …

 …

"오소마츠!"

 작은 두 손을 가슴앞으로 가져가며 기침을 하면, 한겨울의 눈 만큼이나 하얀 입김이 손등 위로 떨어졌다. 한 시간정도만 바깥을 걸어다녀도 다리가 후들거리던 나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었는지 모르겠다.

"콜록콜록…!"

 자신의 발목을 완전히 덮어버리는 눈밭을 걸으며 오소마츠를 찾아다니던 나는 종양과도 같은 가슴의 통증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두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어렸던 탓인지, 머지않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오소마츠… 어딨어… 흑흑…"

 그렇게 눈물이 차가운 얼음을 녹일 때 즈음,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고개를 들어올리는 순간, 익숙한 남자아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아직 옅은 슬픔이 남아 있는 얼굴에 환하게 웃음꽃을 피우며 그 아이의 목을 끌어안았다.

"な、なに…?"

 "오소마츠… 오소마츠으…"


 그와 만나게 된 순간 하고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오직 하나 뿐이었다.

"좋아해… 좋아해…"

 작지만 따뜻한 가슴에 뺨을 부비적거리며, 언제나 그가 듣고서 기뻐했던 말을 반복했다.

"좋아… 좋아해…"

 "あの、僕は…"


 그때 오소마츠는 당황하며 나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나는 결코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좋아해… 오소마츠… 좋아… 좋아…"

 "……."


 …

 …

 …

 그 후, 우리는 근처의 공원에서 눈사람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며 즐겁게 놀았다. 두 팔로 눈을 끌어모았다가 흩뿌리고는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이불 같이 푹신한 눈밭에 누워 옥색의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흐릿한 먹구름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편안해지는 하늘──.

"오소마츠 좋아해."

 "分かったからやめなよ。"

 "좋아해."

 "もう言わなくてもいいって。"

 "좋아…"

 "……."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기뻐해주었는데, 그날의 오소마츠는 내가 그 말을 꺼낼 때 마다 단지 내 시선을 피하며 부끄러워했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기엔 오소마츠와 만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기쁨과 설레임이 너무나도 컸기에. 하지만 나의 마음과 관계없이 병약한 몸에는 곧 한계가 찾아왔다.

"오소마츠… 와, 와타시… 아타마… 후라후라…"

 "めまい?"


 그것이 맞는 표현인지 아닌지 조차 모르는 채, 나는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단어들을 내뱉으며 손을 머리로 가져갔다. 그러한 제스츄어로 용케 내 말을 알아들은 오소마츠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내게 자신의 등을 내어주었다.

"하아─… 하아─…"

"お前の家、どっちなの?"

 "……."


 그가 내게 무언가 묻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또다시 열병이 도진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何だよ、もうー。"

 오소마츠는 내가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면 언제나 나를 업어서 집에 데려다주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는 나를 공원 한켠의 벤치에 눕혔다.

"苦しいなら僕… いや、俺が誰か呼んでくるから。"

 "오소마츠…"


 나는 오소마츠가 어딘가로 가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무심코 손을 뻗어 그의 뺨을 감쌌다. 그리고. . . .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쪽─.

"좋아해…"

 "……."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오소마츠… 카오… 아카이로…"

 "ち、違う!"


 그가 멀어지려는 순간, 나는 그와 마주한 손에 살며시 깍지를 끼었다. 그런 다음에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오소마츠… 좋아…"

 "分かったって!"


 왠지 화를 내고 있는 듯했지만, 나는 뒤돌아선 그의 귀가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

 …

 …

 그때 그 아이가 토도마츠였다니.

 본인에게 직접 듣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얼얼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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