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습관적으로 현관앞의 편지함에서 우편물을 꺼냈다.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보니, 당연히 우편물도 여느 집보다 많다. …오늘은 다섯개인가. 카드사에서 보낸 명세서, 적십재단으로부터 온 것도 있고(카라마츠와 쥬시마츠가 주기적으로 헌혈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족이 보내온 국제우편, 그리고. . . . 쥬시마츠의 앞으로 온 편지.

 "쥬시마츠─."

 자신의 방으로 가기 전에 형제들의 방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레 문을 열어본다. 마침 쥬시마츠가 외출로부터 돌아와 소파에 앉아 있다.

 "편지 왔는데."

 "편지─? 어디서─?"

 "음… 후쿠오카에서."

 편지봉투에 적혀 있는 주소를 찾아 불러주자, 쥬시마츠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리고 편지를 건네받은 다음, 그것을 들고 베란다로 나간다. 딱히 엿볼 생각은 없지만 그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보니 묘한 호기심이 생긴다.

 "……."

 발소리를 죽이고 몰래 벽에 붙어서 유리창 너머의 쥬시마츠를 바라본다. 그는 지금 베란다를 이리저리 서성이며 편지를 읽고 있다. 아까부터 괜스레 뒷덜미를 비비적거리거나 어깨를 주물럭거리거나 하는 것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하아─…"

 문득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쥬시마츠가 편지를 손에 쥔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꽤 양이 많아보였는데, 어느새 다 읽은 모양이다.

 "저기…"

 베란다의 문을 살며시 열고서 바깥쪽으로 고개를 쑥 내민다. 나와 눈이 마주친 쥬시마츠가 종전의 심난함을 얼굴에서 지우고 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그 웃음은 결코 평소와 같은 것이 아니다. 조금 쓰고, 조금 어둡고, 조금 아픈, 그런 웃음이다.

 "괜찮다면 그 편지 누가 보낸 건지 물어도 될까?"

 "아…"

 쥬시마츠는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무리 둔한 나라도 사람의 불안정한 감정 정도는 느낄 수 있다. 말과 말 사이의 공백, 침묵. 비록 아무 소리도 없지만, 그것이 내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전에 얘기한 적이 있었지─?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었다고…"

 "응."

 "그 애가 보낸 거야─."

 그런가. . . . 나는 그녀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고, 그 밖에 대한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설마하니 두 사람이 여전히 연락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사실 나는 쥬시마츠가 그녀의 소재지 조차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기약도 없이 급하게 떠났으니까. 그런 일을 겪고도 언제나 씩씩한 쥬시마츠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나보다. 뭐, 몇번이고 되새기는 것이지만 아무리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 해도 그 역시 평범한 인간이다. 그러니 이제와서 새삼스레 그가 약해보인다던가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단지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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