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봐, 토끼풀이 잔뜩 있어!"

 쥬시마츠와 길을 걷던 중 돌연 그가 앞으로 튀어나가는가 하면 무성한 녹음 가운데 하얀 눈꽃들이 보송보송 내려앉은 화단 앞에서 나를 부른다. 가까이 가보니 참으로 어여쁜, 눈 같은 토끼풀들이 오목조목 피어있다.

 "정말이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거리에 나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 여태껏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유의 소박한 매력이 느껴진다. 하얀 민들레 같은 것, 수십 개, 수백 개가 동시에 바람을 따라 흔들거리는 모습도 나름대로 진풍경이다. 자연이란 건 멀리 있는 듯해도 언제나 가까이 있으니. . . . 그것을 위해 굳이 도시 외곽으로 나갈 필요는 없겠지.

 "앗, 클로버도 있다."

 세 장의 사랑스러운 잎이 뺨을 맞대고 있는 난장이풀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쥬시마츠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내게 다가온다.

 "클로버도, 라는 건 틀린 말이야─. 왜냐면 이 화이트클로버와 토끼풀은 같은 거니까.─"

 "정말? 몰랐어…"

 멋쩍음에 뒤통수를 긁적이며 토끼풀의 머리를 슬쩍 들춰본다. 쥬시마츠의 말대로, 줄기부분이 클로버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결국 토끼풀이란 것은 클로버의 꽃이었던 건가. 쥬시마츠를 따라다니며 듣고 배운 것으로 나도 이제는 꽃에 대해서도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상식이 결핍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결코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다. 문득 낯이 뜨거워진다.

 "여기보다 더 많이 피어있는 곳이 있어─. 가보지 않을래─?"

 "가볼래, 가볼래!"

 …

 …

 …

 어리숙한 나를 향해 햇빛보다 따뜻하게 웃어주는 친구와 봄날의 눈부신 거리를 걷고 걸어, 우리는 어느 동산에 이르렀다. 동산이라 해도 본래 높은 야산이었던 것을 깎아 마을 사람들 위해 산책로를 만든 곳이라, 오르기 쉽도록 계단과 난간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를 따라 10분 정도 계단을 오르니 어느덧 들판과도 같은 낮은 평지가 나타났다. 그가 자신있게 말했던 것에는,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단하다… 여긴 마치… 토끼풀의 천국 같아."

 "안쪽으로 들어가자─. 내가 자주 다녀서 아는데, 위험하지 않아─."

 "응."

 나는 쥬시마츠가 내민 손을 잡고 그와 함께 난간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 꽃 송이송이가 바람에 일제히 춤을 추는 모습이 마치 천사들의 날개짓 같아서, 한동안은 정말로 천국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자연 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꽃을 사랑하는 쥬시마츠는, 나를 이곳에 데려와준 그는 아마도 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처럼 왔으니까 조금 놀다 가자─. 주변에 연한 가지가 있으면 좀 주워 줘─."

 "알았어."

 낯선 곳에서는 가이드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나는 영문을 모르고도 마냥 즐겁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연한 가지'를 찾았다. 온통 초목으로 둘러쌓인 곳이다보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초봄에 새로 돋아나서 목질화 되기도 전에 바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버린 나뭇가지를 세 개 주워 건네주자, 그는 그것들을 자신이 주운 것과 합쳐서 동그랗게 엮었다. 아무래도 화관을 만들고자 하는 것 같았다.

 "쥬시마츠 손재주 좋네…"

 "몇 번 반복하다보면 이정도는 금방 익숙해져─.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나뭇가지 사이에 토끼풀을 끼워넣고, 두 줄기가 자연스레 어우러지도록 가다듬는다. 워낙 흐드러지게 피어 있으니 꽃을 얻기 위해서 멀리 손을 뻗을 필요도 없다. 말로는 금방 익숙해진다지만, 쥬시마츠의 손 안에서 점점 모양을 갖추어가는 화관을 보고 있자니 감탄을 금치 않을 수가 없다.

 "좋아, 다 됐다─. 한 번 써 봐─."

 나는 쥬시마츠의 앞에서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바람보다도 사뿐하게 내 머리에 화관이 씌워졌다. 자연, 사람, 그리고 향기. . . . 가슴을 스미는 봄기운에 얼굴이 붉어지고, 머리도 시야도 몽롱해졌다. 입을 다문 채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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