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 온다. 이불속에서 팔다리를 이리저리 뻗어가며 뒤척이던 나는 두 눈을 멀뚱거리며 새카맣게 물든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꼬르륵─. 오후에 군것질을 해서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했더니 이제와서 배가 고프다. 나는 이불을 제치고 미닫이문을 슬쩍 열어 바깥을 내다보았다. 모두 잠들 시간이니 만큼 캄캄한 복도는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나는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계단을 내려가 1층의 주방으로 향했다. 오소마츠가 마음에 들지 않아해서 평소에는 먹지 못하지만, 오늘밤은 낮에 보았던 컵라면이 아무래도 먹고싶었다. 불이 꺼진 주방에 홀로 쭈그리고 앉아 주전자의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미리 준비해놓은 컵라면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리고 3분 뒤, 덮개를 떼어낸 뒤 면을 한 젓가락 집어서 호호 바람을 불어 식힌 뒤 입에 넣었다. 역시 라면은 밤에 먹는 게 최고로 맛있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창밖의 달을 올려다보며 내 나름대로 밤의 풍취를 즐겼다. 그런데 그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뒤를 돌아본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쥬시마츠였어?" 잠보인 오소마츠가 이런 시간에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라도 녀석이면 어떡하나 하고 가슴을 졸였다. 쥬시마츠는 자다 일어나 잠시 물을 마시러 내려온 듯 여전히 졸음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와 무릎을 구부리고 앉았다. "맛있겠다─." "먹을래?" "넵─!" "쉿─." 나는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서 조금 전처럼 호호 바람을 불어 식힌 뒤 쥬시마츠에게 먹여주었다. 갑자기 큰 소리로 대답할 때는 당황했지만, 졸린 듯하면서도 환하게 웃고 있는 그가 왠지 어린아이처럼 귀여워보여서 웃음이 절로 났다. "이렇게 맛있는 걸 오소마츠는 왜 못 먹게 하나 몰라." 쥬시마츠는 오물거리고 있던 것을 삼키고는 그답지 않게 쓴웃음을 지었다. "인스턴트가 몸에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그는 내가 라면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정말 먹고싶을 때는 형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술이나 담배처럼 몸에 심각하게 해로운 것은 아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오소마츠는 내게 술을 입에도 대지 못하게 하지만 과자나 초콜릿 같은 것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었다. 잔소리를 하긴 해도 그 뿐, 딱히 막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가끔은 내가 부탁한 것을 사다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쥬시마츠의 말대로 컵라면도 괜찮지 않을까. "쥬시마츠, 이거 먹고나서 다른 라면도 먹어볼래?" "다른─?" "내가 부탁해서 며칠 전에 아빠가 한국에서 보내주신 게 있거든. 불○볶음면이라고." "헤에─. 어떤 라면이야─?" "일단 매워." "매워─? 얼마나─?" "난 괜찮지만, 너한테는 아마 무지 매울 거야." 내가 능청을 떨며 말하자, 쥬시마츠의 웃는 얼굴이 조금 흩트러졌다. 그는 조금 겁을 먹은 듯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입술이 명란젓처럼 되는 거야─?" 그러나 지난번 한국음식소동(오소마츠를 제외한 모두가 녹다운 되었던) 때 집에 없었던 그의 눈은 두려움보다 호기심을 더 강하게 띠고 있었다. 틱-. 그때 스위치가 눌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주방의 불이 켜졌다. 소근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다 미처 발소리를 듣지 못한 나와 쥬시마츠는 흠칫 놀랐다. "거기서 몰래 뭘 먹고 있는 거야?" 주방의 문턱에 오소마츠가 서 있었다. 뒤이어 쵸로마츠, 이치마츠도 어둠속에서 슬렁슬렁 걸어와 백색 형광등의 환한 빛 아래 얼굴을 드러냈다. "그러는 너희는 어째서 우르르 몰려오는 거야?" 오소마츠는 까치집이 된 자신의 뒤통수를 가볍게 헤집으며 안으로 걸어들어와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어쩌다보니 셋 다 잠이 깨서 잠깐 물 마시러 왔어." "자기 전에 그런 거 먹으면 배 나온다? …잠깐, 이치마츠!" 내 예상과 달리, 먼저 잔소리를 시작한 사람은 오소마츠가 아닌 쵸로마츠였다. 이치마츠는 그 사이 내게 다가와서는 아 하고 입을 벌렸다. 이윽고 쵸로마츠의 작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셋이서 먹으니 금방 비어버렸네…" 이렇게 되면 한밤중의 라면시식회는 포기해야겠지. 나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며 빈용기를 정리했다. 쥬시마츠는 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구부리고 앉은 채 물을 마시고 있는 오소마츠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형, 형─. 불○볶음면 먹어보지 않을래─?" "불… 뭐?" "불○볶음면. 한국의 라면이래─." "그런 게 어디서 났어? 내가 인스턴트는 자제하라고 말했을 텐데?" 찌릿─. '한국의'라는 말을 들은 오소마츠는 곧바로 나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별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것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소마츠와 다시 눈이 마주쳤을 때, 그의 표정은 의외로 온화했다. "또 매운 거야?" "응…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냐니, 이름부터 심상치 않잖아. 불○이라니 뭐야. 입에 불이 붙을 만큼 맵다는 거야?" "글쎄…" 오소마츠의 눈치가 빠르다는 것은 원래 잘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놀랐다. 그리고 불 = 火(ひ)라는 것을 그가 알고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일본어에는 ㄹ에 해당하는 받침이 없어서 한국어로 말할 때 음절이 하나 늘어나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올바르게 발음한 것에 대해서도. 언제나 무심한 척해도 형제들중에서 그나마 우리나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역시 오소마츠인 걸까. "출출한데 먹어보자. 이 녀석이 몰래 먹는 것보다는 지금 다같이 해치워버리는 게 낫잖아." 이치마츠가 말했다. "하는 수 없지…" 오소마츠는 컵을 선반에 돌려놓은 뒤 주방입구로 걸어가서 그곳에 서있던 쵸로마츠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무 복잡하니까 우리는 거실에 가 있을게. 쥬시마츠, 이치마츠, 옆에서 도와줘." "네, 네─!" "예이─." 두 남자가 주방을 떠난 뒤 남은 세 사람은 즉시 일을 진행했다. 쥬시마츠가 커다란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렌지 위에 올렸고, 이치마츠가 포장지를 까서 끓는 물에 면을 집어넣었다. 나는 면이 삶아지길 기다렸다가 뜨거운 물을 버리고 액상스프가 잘 스며들도록 젓가락으로 저었다. 그렇게 해서,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라면 중 하나인 불○볶음면이 완성되었다. 일본에 살고 있는 내 귀에 들어왔을 때 즈음 한국에서는 이미 인기가 식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매운맛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꽤 기대가 됐다. |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