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하아─."
노을이 지고 있다.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하천 옆으로 나 있는 주택가를 열심히 내달렸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내 쥬시마츠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역시 신호는 가지 않았다. '상대방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하필이면 이럴 때 전화기를 꺼둘 게 뭐람. 혹시 내게 화가 나서 일부러 꺼둔 걸까. 쥬시마츠의 성격상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다. 설마 아직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 아닐 거야. 이미 4시간이나 지났는 걸.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다. 쥬시마츠가 해양생물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되어서, 때마침 나도 무언가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아쿠아리움에 놀러가기로 약속했었던 것을. 그도 나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에, 둘이서 인터넷으로 이런 저런 정보를 찾아가며 계획을 세워두었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잊어버린 걸까. 요 며칠 간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정말 최악이다. … … … 커다란 상가의 모퉁이를 돌아 큰길로 들어서자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낯이 익은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쥬시마츠였다.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만나기로 했던 버스정류장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소리 없는 탄식을 내뱉으며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내가 정류장 근처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분명 화내겠지. 그래도 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왔구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손을 붙잡았다. 내게 화를 내기는 커녕, 환하게 웃고 있었다. "왜 전화기를 꺼놓은 거야?" "배터리가 나갔어─. 헤헷─." "오지 않으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지 그랬어?" "혹시라도 너랑 엇갈리게 될까 봐 아무데도 안 가고 계속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 만나서 다행이야─." "다행? 난 4시간이나 늦었어. 약속을 잊어버린 게 뻔하잖아." "생각이 나면 그때라도 오겠지- 하고…" "이 바보!!!" "……." 내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 버린 순간 쥬시마츠는 조금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시선을 모로 향한 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에게 미안해서 도무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주변에 침묵이 맴돌았고, 내 손을 붙잡고 있던 그의 손이 천천히 내게서 멀어져갔다. … … … "미안… 나… 엄청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그게…" "사과하지 마.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야." 나는 쥬시마츠에게 다가가서 그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늦어서 정말 미안." 무심코 그에게 바보라고 소리쳤던 나였지만, 그 순간에는 나 자신이 누구보다 바보처럼 느껴졌다. 어째서 약속을 잊어버린 걸까. 어째서 화를 내 버린 걸까. 어째서 그렇게밖에 사과하지 못했던 걸까. "와줬으니까 됐어─.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얘기는 나중에 하고 얼른 가자─." "응……." 그날 우리는 함께 아쿠아리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비록 늦긴 했지만, 아니, 폐관시간에 가까웠기에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여유롭게 구경을 할 수 있었다. 4면이 수족관으로 이루어진 방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예쁘고 신기한 물고기들이 많았다. 나는 아쿠아리움을 나올 때 쥬시마츠에게 사과의 의미로 작은 돌고래모형의 피규어를 선물했다. 그는 내가 약속을 잊어버렸던 것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어린애도 아닌 그에게 피규어라고 생각하면 조금 우습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쥬시마츠는 기쁘게 그것을 받아주었다. 그날 후로 그 피규어는 형제들의 방 책장 한 구석에 장식되었고, 우리는 그것을 볼 때 마다 그날 보았던 예쁜 물고기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깨닫고보면 어느덧 미소를 짓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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