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오소마츠가 걱정하겠네… 밖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좋겠는데."
왼팔의 손목시계를 연신 쳐다보며 서둘러 걸음을 옮기노라면, 치비타씨네 가게에서 눈에 익은 뒤통수와 노란색의 셔츠를 입은 넓은 등판이 보인다. 쥬시마츠가 술이라도 마시고 있는 걸까. 오소마츠를 기다리게 하고 싶진 않지만… ──걸음을 돌려, 포장마차로 향한다. "안녕하세요, 치비타씨." "아아, 너 왔냐." "오늘은 쥬시마츠 혼자인가요?" "그래." 두 팔을 베개 삼아 엎드린 채 잠이 든 쥬시마츠의 옆에 그다지 도수가 높지 않은 술병이 두 개 놓여 있다. 그의 평소 주량은 잘 모르지만, 오늘은 그것만으로도 꽤 취한 것 같아 보인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쓸어넘기자, 그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더니 별안간 환하게 웃으며 내게 매달렸다. "우와아아─. 내 델러 온 기가──?" "응." 그야, 알았다면 진작에 왔겠지. 오늘은 그냥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그를 발견했을 뿐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거짓말일지언정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는 것이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어야가 와줘서 억수로 기쁘데이──. 헤헷──." 평소에는 이따금씩 애교처럼 사용하는 그의 사투리가 술기운과 함께 폭발한다. 눈앞의 남자가 너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다. 하지만 치비타씨가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지금은 자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 그만 집에 가자. 모두 걱정할 거야. 얼마예요, 치비타씨?" "됐으니까 그냥 가." 빈병을 정리하던 치비타씨가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언제나 차가운 표정을 짓긴 해도, 치비타씨는 모두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고민이 있을 때 무상으로 술을 내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런 점은 나도 모두의 친구로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 … … "쥬시마츠, 괜찮아?" "넵─! 괜찮습니다앗──." 길을 걷다보니 술이 어느정도 깼는지, 어느 순간부터인가 쥬시마츠의 사투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아직 얼굴이 빨갛고, 걸음이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다. 이렇게 팔을 꽉 붙잡고 있어야지만 안심이 된다. "너도 참, 왜 혼자 술을 마셨어. 나한테 전화하지." "네 앞에서는 취할 자신이 없어서─… 헤헷──." "나를 일부러 피했어? 그래놓고 내가 나타났을 때 기뻐한 거야?" "자신이 없는 건 없는 거고, 기쁜 건 기쁜 거니까─. 너, 거기서 그냥 집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내가 걱정이 되서 나한테 온 거잖아─. 그치──?" "……." 자기를 데리러 온 거냐고 물었던 것은 그냥 장난이었고, 사실 알고 있었던 거구나. . . . ──어쩌면 나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쥬시마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기… 쥬시마츠." "응─?" 토도마츠의 말에 의하면 쥬시마츠는 술을 마시면 어떤 질문에도 솔직하게 대답해준다고 한다. 은근히 숨기는 것이 많은 평소의 쥬시마츠를 생각하면 조금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 그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이 약해진 틈을 타 무언가를 캐내는 것이 비겁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도,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 그의 진심을 들을 수 있을까.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해?" "좋은 친구─." 그의 말에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한다. 적어도 당분간은, 우리는 이대로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 쥬시마츠가 내게 바라는 것도 아마도 그것 뿐일 것이다. "하지만…" 잠시 사념에 잠겨 있노라면 그다지 오랜 뜸을 들이지 않고서 쥬시마츠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가끔은 그 이상의 관계가 되어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평소라면 당연히 농담이라고 생각했을 그의 한 마디. 나는 찰나의 순간에 수십번 생각을 고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가끔이란 건 얼마나 자주인 거야?" "음─, 글쎄─. 하루에 한 번─?" "………" 그는 농담을 말하듯이 웃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단지 술기운 때문만이 아니다. 잠깐의 침묵과 함께 두 사람의 걸음이 멈춘다. "왜 그래, 얼굴 빨개─." 노을의 색을 입은 쓴웃음과 뺨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에 저도 모르게 할말을 잃는다. 그의 눈에 비친, 얼굴에서 귀로 번져가는 이 뜨거움에 대해서 어떻게 변명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이래서는… 농담도 못하겠네─. 하하핫──." 안타까운 쓴웃음은 곧 즐거움으로 변하고, 쥬시마츠가 나와 살며시 이마를 맞댄다. 그리고 들려오는──. . . . "좋아해─." ──나지막한 속삭임. "친구로서도, 이성으로서도…" "언제나 좋아해─." … … … 딱히 우정과 애정이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 두가지를 함께 전하는 것은 꽤 잔인한 일이다. '친구로서도, 이성으로서도' 그런 나약한 말 따위,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다음의 '언제나'라는 말이 신경쓰인다. 그 짧은 한 마디가 앞으로도 쭉 지금처럼 나를 괴롭힐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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