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냥 배가 고파서 혼자 몰래 컵라면을 먹으려 했을 뿐이었는데, 어쩌다보니 형제들과 탁상에 둘러앉아 한밤중의 라면시식회를 갖게 되었다. (카라마츠와 토도마츠가 빠졌지만 잘 자고 있는 사람을 구태여 깨울 필요는 없겠지.) 엄청 매울 거라고 미리 얘기를 하긴 했지만 이 남자들, 정말 괜찮은 걸까. 모두에게 젓가락을 나눠주고나서도 영 불안한 것이, 저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거리게 된다. 카라마츠와 더불어 형제들중에서도 유독 매운맛에 약한 이치마츠의 표정이 상당히 여유로운 것을 보면, '시중에 파는 라면인데 뭐 그렇게 맵겠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일본의 포털사이트에서 일본인들이 남긴 후기를 보니 '위에 화상을 입는 고통을 느꼈다', '다음날 일어날 수 없었다', '다시는 먹고 싶지 않다' 등의 내용이 대다수던데. . . . 못된 장난끼가 발동해서 줄곧 입을 다물고 있었다. 현재 흐름으로 보아, 지난 번 한국음식소동 때와 완전히 똑같은 전개가 되어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우와─. 냄새 위험해, 이거─."

 "진짜…"

 "색깔이 왜 이렇게 빨개?"

 "오소마츠형의 티셔츠 색하고 별반 다를 게 없네."

 "……."

 은근슬쩍 고개를 모로 돌리며 웃음을 참고 있자니 어깨 위에서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괜찮아, 괜찮아─. 미리 경고 했는 걸─. 무지 재밌을 것 같으니까 그냥 가만히 있자─.'

 "잘 먹겠습니다─."

 뭐, 나도 처음이니까, 일단 먹어보기로 할까. 나는 젓가락을 쥐고서 시식을 시작했다. 단지 면을 두어가닥 집어서 먹었을 뿐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왠지 입술이 따끔거리는 듯했다. 매운맛이라기보다는 뜨거운맛이라고 해야 맞을까. 기본적으로 매운음식을 좋아하는 내게도 그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맛이었다.

 내게 이 정도면 다른 형제들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다. 시간이 조금 지나 내가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쥬시마츠는 눈시울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이치마츠는 괴로운 듯하면서도 왠지 기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는 조용히 입을 오물거리고 있을 뿐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들도 꽤 당황한 듯 보였다. 아니, 그들은 당황한 것을 넘어서 어처구니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요즘 한국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라면이란 거지?"

 오소마츠가 시선을 탁자 위에 고정한 채 내게 물었다.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거짓말하지 마."

 쵸로마츠는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나를 노려보았지만, 정말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믿을 수 없는 듯한 눈치였다.

 "진짜야. 한때 온라인 오프라인 매장 종합 판매량 순위 1위를 기록했다고. 지금도 매운라면 선호도 조사에서 꾸준히 5위 안에 들고 있는 걸."

 오소마츠는 더 이상 내게 대꾸를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득 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리는 듯했다.

 "냉장고에서 칼피스 꺼내올게."

 *칼피스 : カルピス; 한국의 쿨피스와 비슷한 유산균 음료. 원액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은 물에 희석해서 마심.

 "몇 배정도로 희석할까?"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돌아보며 물었다.

 "희석 따위 필요없으니까 그냥 원액 통째로 들고 와!"

 어느덧 표정이 일그러진 쵸로마츠는 엄지로 훅- 찌르듯이 주방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오케이─."

 그렇게 주방으로 향한 오소마츠는 잠시후 하얀 병에 파란 마크가 새겨진 칼피스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뚜껑을 열고서 먼저 제일 아랫사람인 쥬시마츠의 턱을 붙잡고 그가 음료를 마실 수 있도록 해주었다. 병은 이치마츠, 쵸로마츠 순으로 옮겨갔고, 오소마츠가 남은 것을 마셨다. 나는 입술이 조금 따끔거릴 뿐 아무렇지도 않았기 때문에 딱히 마실 필요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게는 붉○볶음면의 매운맛을 견뎌내는 것보다 칼피스원액의 강력한 단맛을 견뎌내는 것이 더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

 …

 …

 뭐가 어쨌든 아주머니의 행동강령 아래 음식을 남길 수 없었던 우리는 여차 저차 해서 만들어놓은 라면을 전부 먹었다. 조리에서 빠졌던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설거지를 하러 주방으로 간 뒤 이치마츠는 입을 헹궈야겠다며 2층으로 올라갔고, 나는 마른 헹주로 테이블을 닦았다. 한편 쥬시마츠는 여전히 매운맛 패닉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듯 목에 쿠션을 받치지도 않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쥬시마츠, 물 한 잔 더 줄까?"

 "아니─… 이제 괜찮아─…"

 "그래도 바닥에 누워 있지 말고 이리 와. 무릎 빌려줄게."

 "에─… 정말─…?"

 "응."

 쥬시마츠는 몸을 일으키려 하지 않고 데굴데굴 굴러서 내게 다가와 무릎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것으로 기분이 조금은 가라앉았는지, 그의 안색이 한결 나아지는 듯했다.

 "다음에는 라면 같은 거 말고 진짜 음식을 해줄게. 적당히 매우면서 맛있는 한국음식. 어때?"

 내가 묻자, 그는 꺄르르 웃으며 내 무릎에 뺨을 부비적거렸다.

 "좋아, 좋아─."

 이미 장성한 남자, 그것도 일반사람보다 훨씬 단단한 몸을 가진 남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그의 그런 행동들이 마냥 귀엽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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