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쥬시마츠가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고 오자는 말을 꺼내서, 나는 그와 함께 공원으로 나갔다. 아직 날이 밝았지만 공원은 한적했고, 매일 수십명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구름다리에서도 오늘따라 두 사람 외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다리의 난간에 나란히 기대어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문득 정적이 찾아오면 아무 말 없이 흘러가는 하천의 물을 바라보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가슴이 저릴 정도로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고, 저릿함이 잦아들 때 즈음 곁에 있던 쥬시마츠에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파괴본능이라는 걸 가지고 있다지? 최근 나, 접시나 유리 같은 것을 마음껏 깨고 싶은 충동을 느껴. 누군가를 이유없이 괴롭히고 싶어지기도 하고. 하지만 그건 상식을 가진 이상 해서는 안 될 일이겠지. 갈 곳 없는 욕구가 결국엔 나 자신에게로 향해지게 될까 봐 무서워. 어느 순간 참을 수 없게 될 것 같아……."

 평소의 쥬시마츠라면 '힘내 머슬!'이라던가 '그런 생각은 하지 마─!'라던가 사람 좋은 말을 하며 내 기운을 북돋아주려고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쥬시마츠는 달랐다. 한동안 아무런 말이 들려오지 않았고, 그의 팔이 조용히 내 어깨를 감쌌다. 그는 내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살며시 기대었고, 그대로 속삭이듯이 내게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해줄까─?"

 나는 뭐라고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물론 누구도 그런 내게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잠시후 쥬시마츠의 팔이 내게서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쥬시마츠는 난간을 두 손으로 짚고 폴짝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난간 위에 올라가 앉았다. 의아함을 느끼는 찰나, 그가 구름다리 안쪽으로 돌아앉고는 나와 마주보았다. 그리고 내 손을 붙잡아 자신의 가슴 앞으로 가져갔다.

 "자─."

 그 짧은 한 마디부터 그가 다리 밑으로 떨어지기까지의 시간은 찰나의 순간과도 같이 짧았다. 그는 내 손을 끌어당겨 마치 내가 그런 것처럼 자신의 몸을 구름다리의 바깥쪽으로 밀어냈다.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하천의 물이 튀어오르고, 조금 달아올라 있던 내 뺨을 차갑게 적셨다. 그 순간 깜짝 놀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쥬시마츠!!! 쥬시마츠!!!"

 "푸하─!!!"

 다리 밑의 하천은 맑지만 수심이 깊어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단지 몇 초가 지났을 뿐인데도 내게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댔다. 나는 쥬시마츠가 고개를 내미는 것을 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서둘러 물가로 달려갔다. 쥬시마츠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평소처럼 해맑게 웃으며 물 밖으로 헤엄쳐 나왔다. 그가 땅에 발을 딛고 서서 두 손으로 젖은 셔츠를 꽉 비틀자, 물이 후두둑 떨어지며 모래바닥이 흩트러지고 풀들이 고개를 숙였다.

 "아─. 차가워서 죽는 줄 알았다──."

 "뭐하는 짓이야, 바보야!!!"

 쥬시마츠는 나를 흘깃 쳐다보며 싱겁게 웃더니 신발을 벗어서 안에 들어간 물을 버린 뒤 탁탁 털며 내게 물었다.

 "어때─?"

 "어떠냐니, 뭐가?"

 나는 기가 막히고 쥬시마츠가 걱정이 되기도 해서 결코 그와 같이 웃을 수 없었다. 내 목소리는 조금 화가난 듯 들렸다.

 "기분 말이야─. 방금 나를 밀쳐서 물에 빠뜨렸잖아─. 좀 나아졌어─?"

 그는 이마에 달라붙은 앞머리를 뒤로 쓸어넘긴 뒤 한결 말끔해진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아질 리가 없잖아!!!"

 "어째서─? 누군가 괴롭히고 싶다면서─?"

 "그렇다고 해도 이건 아냐!!!"

 나는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어 쥬시마츠의 얼굴과 목 등에 남아 있는 물기를 닦아주었다. 쥬시마츠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카디건을 쥔 내 손을 붙잡았다. 나는 고개를 들었고, 우리는 곧 눈이 마주쳤다. 방금 전에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는데도, 아니, 오히려 찬물을 뒤집어썼기 때문인가, 쥬시마츠는 이제 막 단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두 눈에 생기를 띠고 있었다.

 "난 괴롭힘 당하는 게 무섭지 않아─. 그러니까, 참을 수 없게 되면 이렇게 나를 난간에서 밀어도 돼─. 죽지 않을 정도로 말이야─."

 "……."

 할말을 잃은 나는 멍하니 쥬시마츠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내가 근처의 커다란 돌 위에 털썩 앉자, 쥬시마츠도 내 곁으로 다가와 무릎을 구부리고 앉았다. 그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도 같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됐어."

 "응─?"

 "이제 됐다고. 이제 다시는 그런 일 하지 않아도 돼."

 "왜─? 그냥 장난이라고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장난으로 누군가를 괴롭힐 정도로 나쁜 사람 아니야, 나."

 "그치만 지금 아무도 괴롭지 않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그는 노란 소매를 펄럭이며 전보다 더욱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의 소매에서 마구 튀어대는 물을 막으며, 나도 무심코 그를 따라서 웃었다. 단지 그 뿐이었는데, 어느덧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원래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몇 번이고 답답하고, 분하고, 슬프고, 여러가지로 괴로운 일을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잊혀질 것이다. 일일이 잘못을 따지려들면 반드시 누군가를 탓하게 되고,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하면 결국 다른 것에 분풀이를 하거나 자신에게로 책임을 돌려 스스로를 괴롭혀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파괴본능이란 알고보면 그렇게 시덥잖은 것이다. 그런 감정에 동요될 바에는 차라리 바보처럼 웃어넘기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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