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의 문이 굳게 닫힌 방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먼지가 내려앉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짙은 적막감.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홀로 선명하게 울려퍼지는 소리가 있었다. 소파에 쭈그리고 앉은 나는 베란다로 나간 이치마츠가 담배를 다 태우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DVD의 화면에 비치는 숫자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잠시후 이치마츠가 방안으로 돌아왔다. 베란다의 문이 다시 굳게 닫혔다. 그리고 여전히, TV의 후방스피커에서 AV배우의 야릇한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있잖아, 우리 AV 보면서 하자."
며칠째 반송장처럼 늘어져 있다가 돌연 물고싶다는 말을 꺼내서, 끝까지 망설이면서도 눈을 꼭 감고 허락해준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말을 꺼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게 해줘─. 부탁이야──."
어깨를 살살 흔들며 부탁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그저 뻔뻔해보일 뿐이었는데, 나란 여자는 정말 바보다. 점점 마음이 녹아서 결국 그의 페이스에 휘말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치마츠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앉아 자신의 무릎을 탁탁 두드린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의 말에 따랐다. 이윽고 그가 보라색 점프슈트의 지퍼를 가슴 아래까지 내렸다. 언제나 반듯하게 올리고 있어서 몰랐는데, 그는 슈트 안쪽에 폼이 넓은 라운드넥의 하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치마츠가 옷을 내려서 팔에 걸치자 그의 넓은 어깨가 훤히 드러났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몸이 긴장되어서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있지 말고 나를 보고 앉아." 그가 말했다.

 "싫어." 나는 차마 이치마츠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어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대답했다.

 "이 자세는 불편하단 말야. 어쩌면 더 아플지도?"

 "……."

 나는 하는 수 없이 몸의 방향을 틀었다. 이치마츠가 이내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일단은 여기." 그리고 검지를 자신의 입술 위에 살며시 가져다 대며 말했다.

 "츄─."

 "어째서야? 물 거면 빨리 끝내!"

 나는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서 그대로 고개를 홱 들었다가 이치마츠의 싸늘하게 식은 표정을 보고 얼른 시선을 모로 돌렸다. 딱히 그가 무섭다던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로부터 잠시후 이치마츠가 내 허리를 붙잡더니 나를 홱 끌어당겨 자신에게 밀착시켰다.

 "문다." 그것은 상당히 차가운 목소리였다.

 나는 일순간 움찔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살살해!"

 내가 소리치자, 이치마츠가 어디 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혀보였다. 나는 그런 그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이윽고 그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럼 정말 물 테니까."

 "많이 아프면 말해."

 "……."

 이치마츠는 치사하다. 언제나 짓궂은 일을 해도 상냥할 때는 상냥한 점. 조금 미워진다 싶으면 그답지 않게 다정한 말투로 마음을 어르고 들어와서 좀처럼 화를 낼 수가 없고, 무시할 수도 없다. …나는 이치마츠가 내 어깨와 목에 키스를 할 때 그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을 꽉 움켜쥐었다. 이윽고 그의 이빨이 살갗을 뚫고 들어왔다.

 "이, 이치… 거긴…"

 그가 문 곳은 조금만 옆으로 움직여도 곧바로 목이 닿는, 목과 어깨 사이의 상당히 아슬아슬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었고, 그는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흘러내린 피의 냄새를 맡거나 그것을 핥거나 했다.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몸의 중심을 찔러오는 아찔한 쾌감에, 나는 무의식중에 그를 끌어안은 두 팔에 힘을 주었다.

 "잠깐"

 "?"

 "엉덩이 움직여 봐."

 "에?"

 "움직이라고."

 내가 어리둥절해 하며 머뭇거리자 이치마츠가 내 허리를 붙잡았다. 그 손길을 느끼는 순간, 나는 비로소 그의 말을 이해했다.

 "시… 싫어."

 나는 이치마츠의 무릎 위에, 더군다나 그와 마주본 채로 앉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치마츠가 내게 요구한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일반적인 성행위와 다를 바 없는 행위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거부감보다는 수치심이 먼저 느껴졌다.

 "내가 움직여?"

 "싫어!"

 나는 두 손으로 이치마츠의 어깨를 밀어내고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가 내 허리를 꽉 붙잡고 있어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난 그냥 네 몸이 흔들릴 때 마다 풀풀 풍겨오는 냄새를 맡고 싶을 뿐이야. 실제로 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경기를 일으켜?"

 "변태놀이의 상대가 필요하면 다른 사람을 찾아!"

 "찾으려 해도 내 눈에는 너만 보이는데."

 그야 방에 나밖에 없으니 나만 보이겠지. 무얼 멋있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어, 괜히 두근거리게! 나는 이치마츠의 가슴팍을 짝! 때리고는 또다시 그를 밀어냈다. 그때 TV의 스피커에서 여성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비명소리가 아니라. . . .

 "우리도 지지 말고, 자…"

 허리를 감싼 손에 힘이 들어가는가 하면 이치마츠가 내게 키스를 하려고 다가왔다. 그에따라 나는 점점 몸을 뒤로 젖혔다.

 "제발 부탁이니까 저것 좀 꺼."

 "네가 대신 소리 내줄 것 아니잖아."

 이제 아무래도 좋아.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이치마츠의 뺨을 양옆으로 쭈욱 잡아당겼다.

 "아이고오오, 아가씨 힘 한 번 좋소─."

 눈썹을 찌푸리며 아픔을 호소하던 이치마츠는 문득 무언가를 발견한 듯 내게 손을 뻗었다. 그가 조금 전에 물었던, 내 목의 상처였다. 찌릿- 하고 통증이 느껴지는 순간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손이 닿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한 줄기, 두 줄기, 세 줄기. . . . 그것은 피였다.

 "그렇게 세게 물지 않았는데… 아직도 피가 나오네."

 이치마츠의 손이 등을 감싸오는가 하면 그가 나를 살며시 끌어안고 상처가 난 부위를 핥았다. 손이 닿았을 때와 달리 그의 혀는 뜨겁고 매끈해서, 이번에는 딱히 아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몸에 힘이 풀리고 기분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이거 또 흉터가 남을지도 모르겠다. 미안."

 나쁜짓은 다 해놓고 새삼스레 사과하는 이 남자. 나는 그에게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그저 입술을 깨물 뿐, 웃음도 안 나오고 화도 나지 않았다. 어느덧 그런 전개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었다. 자신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내 몸에 있는 흉터는 전부 너 때문에 생긴거야, 알아?"

 실제로 오소마츠에게 물린 상처는 그다지 아프지도 않고 금방 낫는 반면, 이치마츠에게 물린 상처는 그보다 훨씬 아프고 오래 간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배려에 따른 문제이기 때문에 무는 사람이 우성인지 열성인지, 페로몬이 강한지 약한지 등의 여부 같은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치마츠가 얄미웠다. '너 때문에'라는 말에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기는 커녕 기쁜 듯이 웃는 그가, 너무 얄미웠다. 어쩌면 그는 일부러 흉터가 남도록 해놓고서 실수인 척 연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치마츠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니까.

 "알아."

 "네가 매일밤 욕실의 거울앞에서 알몸이 되었을 때 내 생각을 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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