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든 저녁까지도 형제들이 돌아오지 않아서 초조한 기분이 들기 시작할 무렵, 나는 가스렌지의 불을 끄고나서 식탁을 닦기 위해 돌아섰다가 흠칫 놀랐다. 줄곧 방에 틀어박힌 채 얼굴도 내비추지 않던 이치마츠가 어느덧 1층에 내려와 주방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 팔을 잡아끌어 세탁실로 데려가더니 나를 안쪽으로 밀어넣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짜고짜 내가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풀었다. 나는 이치마츠가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고 있었지만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이윽고 이치마츠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고,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내 허리가 선반의 모서리에 부딪혔을 때 이치마츠는 내 손을 낚아채고서 나를 돌아세웠다. 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선반을 짚었다. 그러자 이치마츠가 뒤에서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의 두 팔이 생각보다 강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윽, 하고 가슴속의 두려움을 뱉어내며 몸을 움츠렸다. "훌륭해, 훌륭해." 그가 말했다. 아무리 고개를 뒤로 돌려보아도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기에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새 하나 더 늘었잖아. 목언저리에 2개, 어깨하고 등에 2개, 팔에 3개… 이 숫자가 내 것을 제외한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 소름끼치는데." 그는 상체를 숙여 내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내 귀에 의도적으로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으며 속삭였다. "대단해. 여러가지 의미로 말이야. 정말 칭찬해주고 싶어." 나는 그가 손끝으로 뒷덜미의 상처를 문지르는 순간 겨우 제자리를 되찾아가던 살갗이 다시 찢어지는 것을 느끼며 아픔을 호소했다. 그 상처는 얼마 전 오소마츠에게 물린 것이었다. 그는 다른 곳에도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그 부위만 괴롭혔다. "네가 느끼게 해주는 이 기분… 싫지 않아. 처음에는 X 같다고 생각했는데, 너도 알다시피 난 쓰레기잖아. 나한테는 뭐든지 하찮은 게 어울리지. 물건이든, 생각이든, 감정이든." "이 상처를 한 번 더 물어서 내 흔적으로 완전히 덮어버리면 어떤 기분이 들려나?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흥분 돼." "하지만 난 형과 간접키스 따위 하고 싶지 않으니까, 오늘은 이렇게 하자." 이치마츠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하여 몸이 움찔 하고 떨렸다. 그의 가늘지만 단단한 손가락이 곧 작은 상처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왔다. 갈가리 찢어버리듯이, 무자비하게. 나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비명을 지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파? 이 정도는 너한테 아무것도 아니잖아. 언제나 훨씬 날카로운 것에 물리고 있으면서, 엄살은─."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침내 이치마츠가 내게서 손을 거두었다. 뒤를 돌아보자 그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얼굴이 조금 상기 된 채 웃고 있었다. "왜 이러는 거야…" 이치마츠는 실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그의 오싹한 웃음은 곧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매마른 웃음으로 바뀌었다. "말 안 해도 알잖아." "난…" 그때 이치마츠의 손이 내 턱을 살며시 들어올렸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무심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이치마츠가 내 귓가에 대고 말했다. "모르는 척 하면 여태껏 너랑 내가 해왔던 일들,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모두 없었던 게 되나? 그건 아니지." "슬슬 인정하는 게 어때? 이게 너에게 있어서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걸 말이야. 친구끼리 손을 잡고, 안고, 키스하고… 어쩌면 앞으로 그 이상의 것을 하게 될지도 몰라. 내 생각에는 그렇게 될 것 같은데." 나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찰나의 침묵속에서 문득 지난 날 토토코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언제나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보통 어떤 일을 당해도 그냥 무시하거나 담담하게 대처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녀석 의외로 유리멘탈에다가 독점욕이나 질투가 엄청 강해. 친구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사귄다면 가장 피하고 싶은 타입." 그때의 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폭소를 터뜨렸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런 여유가 없다. 어쩌면 그녀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 단지 내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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