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다. 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가볍고, 자신이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주변이 캄캄하고, 무언가를 상상하면 그것이 곧 눈앞에 나타날 것 같은 이 기분으로 알 수 있다. 하늘을 덮고 있던 까만 장막이 찢어지며 천천히 어둠이 걷힌다. 그리고 흐릿한 영상 하나가 눈앞에서 재생된다. 언제나 푸석푸석한 머리카락, 무언가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눈동자, 굳게 닫힌 채 침묵을 지키는 입술……. 나는 이치마츠의 얼굴이 보고 싶었던 건가. 언제나 집에서 보고 있는데, 꿈에서까지 그릴 정도로 그를 좋아하는 건가. 아니, 그렇지 않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이렇게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을 리…….

 "하아─."

 귀에 익은 낮은 숨소리. 다소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의식이 점점 선명해진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보니 반쯤 뒤집힌 방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나도 참, 이불도 깔지 않고 맨바닥에 누워서 잠이 들어 버리다니. 게다가 여긴 내 방이 아니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눈부신 햇살이 비추는 형제들의 방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왜 이렇게 소란스러운 거지? 소란스럽달까, 주변은 고요한데 그 안에서 무언가 홀로 선명하게 울려퍼진다. 남자의 숨소리……. 누군가 내 뒤에 있다. 뿐만 아니라 한쪽 팔로 나를 끌어안고 있다. 문득 그 손이 움직여 내 어깨를 붙잡는다. 그러고보니 바닥에 누워 있는데 목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지금 나는 자신의 뒤에 누워있는 남자의 팔을 베고 있다. 어째서인가 그의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아니, 그보다는 흔들흔들이라고 표현해야 맞을까. 어째서 흔들리는 거지……. 이 소리와 이 움직임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

 그 순간 음란마귀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상황에서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거라고는……. 그것 밖에……. 그것 밖에……. 맙소사…….

 "하아─… 하아─…"

 남자의 몸이 내게 바짝 다가붙는다. 뜨거운 숨결이 뒷덜미에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선택해라, 나 자신. 이대로 계속 자는 척을 해야 할 것인가? 두 눈을 질끈 감고서 벌떡 일어나 방을 나갈 것인가? 힘을 보태서 얼른 이 상황을 끝낼 것인가? 아니, 마지막 것은 아니지. 어떻게 생각해도 아니지. 어떡하면 좋지? 나는 어떻게 하면…….

 "윽…"

 젠장! 안 된다. 뭘 어떻게 하든지 이대로는 절대로 안 된다. 지금까지 애써 부정해왔지만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치마츠의 목소리는 멋있다. 완전히 내 취향적중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가까이서 들으면 위험하다. 나까지 어떻게 될 것 같다. 아까부터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있었더니 숨이 부족하다. 이제 한계다.

 "저… 저기… 이치마츠?"

 "응…"

 "저기… 나… 나… 그만… 일어나도 돼?"

 "안 그러는 게 좋을걸."

 피식, 그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움찔- 한다. 어째서 손과 발에 힘이 들어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무심코 꽉 움켜쥔 손이 좀처럼 펴지지를 않는다. 제때 깎지 않아 날카로워진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어서 욱씬거린다. 그런데도 전신을 속박당하고 있는 듯한 이 긴장감을 어찌할 수가 없다. 이제 일어나지 않으면. 도망치지 않으면.

 두 눈을 감은 채 벌떡 몸을 일으켜 중심을 잡는다. 어디가 문인지도 모르고 일단 발을 내딛어본다. 덥썩─. 이치마츠가 내 발목을 붙잡는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눈을 떠버렸다. 눈을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뜨겁게 달아오른 내 얼굴이 무상하게도 이치마츠의 손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 다소곳이 그의 배 위에 올려져 있을 뿐. 이치마츠는 조금도 흩트러짐이 없는 모습이다. 할말을 잃은 채 멍하니 서있노라면, 그가 아랫입술을 덮고 있던 마스크를 내리며 씨익 웃는다.

 "상상하는 거 재밌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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