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할까."

 "네?"

 어째서 이 남자는 언제나, 언제나, 농담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시덥잖은 농담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나를 역으로 당황시키려는 속셈인가. 그렇다면 그는 아주 기가 막힌 생각을 해낸 것이다. 왜냐면 나는 지금 실제로 상당히 당황하고 있으니까.

 "안 그래도 땀을 많이 흘려서 찝찝하던 참이었어. 오늘은 다들 저녁에야 돌아올 테니 여유롭게 씻을 수 있을 거야."

 문제는 상대방이 이렇게 나오면 내쪽에서는 절대 먼저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먼저 말을 꺼내놓고서 뭔 소릴 하는 거냐며 화를 내는 것은 이상하고,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기도 우습다. 실제로 별 거 아닌 일인데도 왠지 상대방의 생각대로 놀아나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구겨진다. 그래서 매번, 터무니없이 바보 같은 짓을 무심코 저질러버린다.

 예전에는 이치마츠를 놀리는 것쯤 식은죽 먹기였는데. . . . 그가 알파가 되고나서, 묘하게 어려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려워졌달까, 불가능해졌다. 어쩌면 그가 2차변화에서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찾은 것 같다는 토토코쨩의 생각이 맞는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지금의 이치마츠가 변화전의 그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뭐해? 안 가?"

 어느덧 자리에서 일어난 이치마츠가 셔츠 안으로 손을 넣고 등을 긁적이며 내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냥 헛웃음만 나온다. 적당히 어울리다가 정 안 되겠다 싶을 때 깔끔히 패배를 인정하고 내빼는 것이 지금으로써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

 …

 …

 …

 욕조에 물을 받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은 혼돈으로 가득하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거지… 도대체 어쩌다가…? 그래, 맞아… 이거 내가 먼저 시작한 거였지…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이미 물은 충분히 찼고, 이치마츠는 한 술 더 떠서 입욕제를 타고 있다. 물이 연한 녹색으로 변하는, 굉장히 상쾌한 향기의 입욕제다. 평소라면 피로를 풀 생각에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상쾌함은, 터무니없어도 너무 터무니없는 이 상황과 매치가 안 된다. 전혀 안 된다.

 "자, 다 됐어. 들어가자."

 "진심이야?"

 "물론."

 이치마츠도 내가 왜 이렇게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우두커니 서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그도 이 상황을 확실히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도 태연하게 행동하고 태연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실로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이 남자가 도대체 언제 이렇게 강해져버린 건지 모르겠다. 지금쯤이면 속으로 악마의 웃음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싫으면 하지 말던가. 난 들어갈 거야."

 이치마츠는 자신이 했던 말 그대로 욕조에 들어가기 위해 후드를 벗어던졌다. 그 다음으로 하의를 벗는 것도 거침없었다. 마치 내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처럼, 전혀 나를 의식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그가 바지춤에 손을 가져가는 순간부터 뒤로 돌아섰고, 그 뒤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따금씩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도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서, 부끄러움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저, 저기… 천천히 씻고 나와."

 "아아."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화장실의 문을 열자, 문득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역시 놀림을 당하고 있는 건 나. 역으로 당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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