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타닥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소리에 잠을 설치다가, 있을 리 없는 사람의 인기척에 몸을 일으켰다. 누군가, 누군가 내 옆에 누워 있다. 이불의 실루엣을 보니 형제들중 한 명인 것 같다. 조심스레 상체를 숙이고 이불에 반쯤 가려진 얼굴을 확인해본다. 역시 자는 얼굴로는 구별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머리카락에서 가볍고 시원한 느낌의 멘솔향이 은은하게 난다. 그렇다는 건 카라마츠와 이치마츠중에 한 명이라는 얘긴데……. 아마도 이치마츠겠지.
어째서 이 녀석이 여기에……. 어떡하지……. 깨울까? 깨워서 쫓아낼까? 아니, 화를 내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바스락─. "음…" 이 목소리는 확실히 이치마츠다. "어디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니가 너무 곤히 자길래 깨우기 뭐해서, 내가 나가려고." 그러고보니 이치마츠가 내 방에 들어오는 건 처음인가……. "저기, 이치마츠. 어째서 네가 이런 시각에 내 방에 있는 거야?" "어째서냐니… 요바이로 정해져 있잖아." 역시 이상한 짓을 할 셈이었냐!!! 무얼 당당히 위험한 말을 내뱉고 있어, 변태가!!! 쓰레기가!!! "갑자기 졸음이 밀려와서 잠들어 버렸지만…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네. 뭔가 좋은 냄ㅅ…" 꽈악─. 나는 이치마츠의 정수리에 난 머리털을 힘껏 움켜쥐었다. "아야야야얏… 아야야…" "처녀의 방에 멋대로 들어와서는 한 다는 소리가… 뭐? 요ㅂ…" 농담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이번에는 도가 지나쳤다. 망할 알파 주제에 사람 마음도 모르고……. 이렇게 잡아당겨도 어차피 도M인 너는 기뻐하겠지. '좀 더 해줘─.♡' 라던가, 분명 또 이상한 소릴 해대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가 이치마츠의 입이 굳게 닫혀 있다. 그가 너무 조용하다. "……." 손에 힘을 빼고, 그대로 이치마츠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린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잔뜩 맺혀 있다. "곧 돌아갈게." "돌아갈 테니까… 잠시만 더 있게 해줘." 아, 또 나왔다. 사람의 마음을 이용해서 적당히 상황을 넘기려고 하는 이 녀석의 버릇. 보나마나 속으로 날 (속이기)쉽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부러 식은땀을 흘릴 수는 없으니 무언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분하게도 나는 그의 성격을 잘 알면서도 매번 당하고 만다. 정말 곤란하다. 이런 모습을 형제들이 보기라도 하면 어떡한단 말인가. 아무리 오소마츠가 아량이 넓어도 이번 만큼은 절대, 얼굴에 멍이 생기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이치마츠 뿐만 아니라 내게도 화를 낼 것이다. 내게 실망하거나 마음이 돌아서거나 하지나 않으면 다행……. 이치마츠의 두 손이 이불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내 손을 감싼다. 따뜻한 체온. 언제나 몸이 차가운 녀석이건만, 방금 자다 일어나서인지 오늘은 따뜻하다. 마음이 밤에 잠식되어 가듯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손을 잡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이가 된 걸까. 성인 남녀의 몸이 닿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이러한 행위에 딱히 위기감을 느끼지도, 거부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래, 친구끼리 손 정도는 잡을 수도 있는 거지. 결국에는 또 자신이 편한대로 생각하고, 가슴 한 구석에 드는 여러가지 의문을 외면한다. 여태껏 몇 번이고 이치마츠의 품에 안기고 그와 키스를 했으면서 이제와 손을 잡는 것으로 요란을 떠는 것도 우습다. 지금 새삼스레 화를 내봤자, 그의 눈에는 전부 가식적인 자기회피로 보일 것이다. 이제와서 싫다는 말을 해봤자……. 전혀 설득력이 없다. 이불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이치마츠가 천천히 나를 향해 돌아눕는다.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내 손가락을 살며시 깨문다. 그의 입술 사이로 들어간 손끝에서 매끈한 혀가 느껴진다. 따뜻함을 넘어선 뜨거운 열기도, 외면할래야 외면할 수 없는 아찔한 쾌감도. "뭐하는 거야…" "……." 그는 아무 말이 없다. 내 손을 입에 물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나를 똑바로 향해 있는 그 시선이 말을 대신한다.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는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어쩌면 사랑일지도, 어쩌면 단순한 욕망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의 검은 눈동자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나를 보고 있으니, 나도 그를 보고 싶다. 어느 쪽도 혼자가 되는 것은 싫다. 이치마츠도 '지금은 너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으니 아마 나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러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지……. "그만해." "가만히 있어. 너 이거 좋아하잖아." "하?" "전에 네 av에서 봤어." "어째서 그걸 네가 보는 거야? 아니, 어떻게 찾았어?!" "쉿─." 이 남자는……. 대체 나에 대해서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는 걸까. 그의 가슴속은 커녕 머릿속도 읽을 수가 없는 나는 답답한 만큼이나 두렵다. 그가 내 손을 움직여 자신의 입술을 만지게 한다. 베개처럼 푹신하고, 따뜻하다. 그러고보면 이치마츠는 다른 형제들보다 입술이 조금 더……. 조금 더 도톰한 편인 것 같다. 그 미세한 차이를 발견해내는 자신에게 문득 소름이 돋지만 뭐, 그만큼 입을 맞추어놓고 이제와서 깨닫는 것도 어찌보면 새삼스러운 일이겠지. 입술 위에 머물던 손을 다시 한 번 뜨거운 혀가 감싼다. 따끔- 그의 이빨이 피부에 스치는 순간 그 아픔과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함이 나를 휘어잡는다. 두려움속의 쾌감. 내 몸은 이치마츠를 기억하고 있다. 그의 목소리, 낮은 숨소리도. "기분 좋아?" "그야 핥고 있으니까…" "손일 뿐인데 정말로 느끼는구나." 말하지 마!!! "하지만 여길 계속 자극해봤자 아무것도 오지 않…우움…" 서둘러 이치마츠의 입을 막는다. 위험하다. 더 이상은 내 심장이 버티지 못한다. 하지만 이치마츠가 곧 내 손을 치운다. 그리고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는다. "있잖아, 다른 거 하자? 이번에는 '뭔가 오는 것'으로." "안 해!!!" … … … 결국 그날 밤은 한숨도 잘 수 없었다……. |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