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와 함께 헬로워크에 다녀온 뒤로 줄곧 탁상에 축 처져 있는 이치마츠의 앞에서 그런 기운 빠지는 소리를 하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조금 지나친 어리광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오메가의 페로몬억제제는 정말 쓰다. '어째서 이렇게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치마츠는 한 때 나와 같은 오메가였고 그도 이 약을 먹었으니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현재 그의 얼굴을 보면 왠지 분한 기분이 든다. 이마에 떡하니 '방관자'라고 적혀 있달까, 강건너 불구경 하는 듯하달까. . . . 이쪽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싫어도 먹어. 곤란해지잖아." "오소마츠가 먹으라곤 했지만 아직 히트싸이클이 시작 될 기미는 없으니까, 꼭 오늘 먹지 않아도…" "그러니까, 너 뿐만 아니라 우리도 곤란해진다고.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 게 피곤해서인 것 같냐? 과연 쓰레기인 내가 그렇게 열심히 구직활동을 했을까?" "……." 나는 말없이 이치마츠를 노려보다가 손에 쥐고 있던 컵을 기울여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약을 쥔 손은,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이리와 봐." 이치마츠의 부름에 그를 돌아본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앉으라는 듯이 자신의 옆자리를 탁탁 두드렸고, 이에 따르자 곧 내 쪽으로 몸의 방향을 틀었다. 이윽고 그의 오른팔이 내 등을 감싸는가 하면, 그가 내 너머로 다리를 뻗고 건너편의 바닥에 발을 탁─, 딛었다. 절대로 내가 벗어날 수 없는 자세였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불안함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나는 무심코 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내놓으라는 듯이 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나는 대답 대신 좌우로 고개를 휙휙 저었다. 그러자 이치마츠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약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다섯손가락을 너무 꽉 움켜쥐어서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그 떨림이 손목과 팔꿈치까지 전해졌다. "콱 물어버리기 전에 힘 빼." "넌 평소부터 사양없이 물고 있잖아!" "이번에는 손가락 관절이야." "잔인한 놈!" 그래도 끝까지 버텨보려 했는데. 이치마츠의 손에 힘이 들어가서 손목이 찌릿찌릿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치마츠는 내 움켜쥔 손을 펴고 그 안에서 약을 꺼내 입에 넣었다. 내 입이 아닌, 그의 입이었다. 분명 억지로 쑤셔넣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윽고 이치마츠가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상체를 숙여 내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벌어진 틈을 통해 내게 약을 먹였다. 잠시후 딱딱한 것이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났다. 쓴맛을 느낄 새도 없는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치마츠는 내가 약을 먹은 후에 나를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진짜 키스였다. 그는 천천히 입술을 떼고서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대뜸 내 이마를 손끝으로 콕 두드렸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문득 피식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와…" 이치마츠가 웃었다. . . . 나는 그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여태껏 이치마츠가 웃는 모습은 몇 번이고 봤지만, 그렇게 가식 한 점 없는 깨끗한 웃음을 보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그 이전에 나는 이치마츠에게 그런 표정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더 놀랍고, 신기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