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처럼 병원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몇가지 사고, 사는 김에 고양이먹이도 바구니 안에 집어넣었다.
가벼운 쇼핑을 마친 뒤 노을이 내려앉은 한적한 거리를 터덜터덜 걷고 있노라면, 어디에선가 '야옹─'하고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와 나의 발을 멈춰세웠다. 까마귀울음소리에 묻혀 잠깐 동안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머지않아 나는 두 집이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좁은 틈 사이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쓰레기더미 위에 널브러진 새끼고양이가 위태로이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나는 몸을 옆으로 틀고 손을 뻗어서 혼자 낑낑거리다가 간신히 고양이의 뒷덜미를 잡아 틈새 안에서 꺼냈다. 이제 겨우 2주정도 지난 것 같은 그 고양이는 상태가 아주 심각했다. 그대로 두었다간 머지않아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동안 벙찐 얼굴을 하고 있던 나는 일단 체온부터 올려주어야겠다는 생각에 고양이를 품안에 넣고 집으로 달려갔다. 체온을 챙긴 다음에는 어떻게 배를 채워주면 좋을지가 고민이었는데, 다행히 이치마츠가 분유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고양이의 입을 벌리면 이치마츠가 스포이드로 우유를 먹여주었다. 줄곧 서로의 손이 닿아있었지만, 그러는 동안에는 나도 그도 서로를 그다지 의식하지 못했다. "괜찮을까? 그냥 동물병원에 데려갈 걸 그랬나 봐." 내가 말하자, 이치마츠는 고개를 저었다. "가다가 죽었을지도 몰라. 여기서 멀고, 날씨도 싸늘하잖아." "누구 새끼지? 왜 혼자 버려진 거야?" "이런 색깔에 이런 무늬를 가진 암고양이를 알아. 이 근처에 한 마리 뿐이거든. 얼마전에 배가 불러있는 걸 보기도 했고. 아마 다른 새끼들에게 병균이 옮을까 봐 이 애만 내버려둔 걸거야.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돌봐주다가 다시 방생해줘야지." 이치마츠는 고양이를 내려다보는 것을 그만두고 곁에 놓아두었던 스토브의 온도를 조절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닌 듯, 상당히 능숙하고도 침착한 모습이었다. "그때까지 별탈 없으면 좋겠는데…" 그 날 밤. 아무래도 고양이의 상태가 걱정되었던 나는 두눈을 멀뚱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양이가 있는 1층의 거실로 내려갔다. 고양이는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고, 아직 사복차림의 이치마츠가 그 옆의 탁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안쓰러운 마음에 깨워서 교대를 해주려고 했지만, 그의 고양이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고 있던 나는 그가 분명히 내 말을 듣지 않고 밤을 지새울 것이라 생각하고 그를 깨우지 않았다. 그 대신 담요를 가져다 덮어주고,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 고양이를 돌봐주기로 했다. … … … 이치마츠는 그로부터 약 한 시간 뒤에 작게 신음하며 잠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켰다. "너… 안 자고 뭐해?"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흘러내린 담요를 훑어보더니 두눈을 부비적거리며 내게 물었다. "그러는 너는 왜 그런 데서 자고 있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혼자 내버려둘 수는 없잖아." "나도 같은 이유로 내려온 거야." 서로에게 올라가서 자라는 말을 하다가 제 풀에 지쳐 버린 우리는 결국 함께 밤을 지새기로 했다. 그와 나는 담요를 펼쳐 무릎에 덮고, 탁상에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괸 채 멍하니 고양이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 … … "그러고보니… 이 애, 젠더가 뭐야?" 내가 묻자, 이치마츠는 고양이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나지막이 대답했다. "여성체우성오메가." "에에─… 건강해지더라도 앞으로 살아가기 힘들겠다." "아마도. 하지만 또 모르지, 좋은 짝을 만나서 그놈에게 공주님대접을 받으며 살지." "훗… 우리는 앞으로 같은 꿈을 꾸겠구나, 야옹아."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손가락 끝으로 고양이의 이마를 살살 만져주었다. 그러자 머리맡에서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너희 둘 다 그렇게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해?"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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