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시, 싫다고. 어제도 두 번이나 물게 해줬잖아." "……." "이치마츠? 왜 그래?" "설마 네가 싫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거든. 너 그런 거 잘 못하니까." "쵸로마츠가 싫으면 싫다고 해도 된댔어…" "그거야 그렇지." 이제 막 방으로 들어와 내 앞에 우두커니 서있던 이치마츠는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아 바지 뒷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를 꺼내 물고는 심지에 불을 붙이며 매우 원하는 듯한, 약간 불만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았다. "많이 참기 힘들어?" "그렇다고 대답하면 하게 해주려고?" "일단 들어보고. 거짓말 같으면 상대도 안 할 거야." 이치마츠는 내 퉁명스러운 말투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소파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가 발을 내딛을 때 마다 담배냄새가 풍겨왔다. 그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서 살며시 상체를 숙이더니 목부터 천천히 올라오며 내 냄새를 맡았다. "죽어."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이치마츠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오늘 안 물면 죽는 병이야, 나."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이치마츠가 내 팔을 잡아끌더니, 나를 억지로 물려고 했다. "이… 이치마츠!" 나는 몸을 뒤로 빼며 그에게 저항했다. 내 목에 접근하기 위해 조금 전처럼 상체를 숙이고 있던 이치마츠는 잠시 날카로운 이빨을 감추고 새침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 죽게 내버려둘 거야?" 사탕을 빼앗긴 듯한 어린아이의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내게 물었다. 비겁한 녀석! 나는 이치마츠의 교활함에 분노하면서도 차마 그 말을 입밖으로 내지 못했다. 평소 게으른 이치마츠의 응석을 받아주는 것이 습관화된 나는 그에게 모성애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이치마츠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면 좀처럼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나는 좀 더 냉정해지기로 마음먹었다. "가서 담배나 마저 피워, 바보야!" 나는 이치마츠의 손을 뿌리친 뒤 그가 베란다쪽을 향하도록 하고, 뒤돌아서 선반 앞으로 걸어갔다. 내가 형제들의 방에 들어온 본래의 목적인 가위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베란다의 문이 드르륵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이치마츠가 담배를 입에 문 채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가을밤이라 바람이 찬 모양이었다. 잠시후 담배를 다 태운 그가 방으로 돌아왔다. "이치마츠, 혹시 가위 못봤…" 그때까지 잡동사니가 들어있는 상자를 뒤적거리고 있던 나는 뒤를 돌아보기 전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묘한 기운을 느꼈다. "으아아악!!!" 이치마츠가 내 어깨를 물었다…….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뒤에서 콱! 하고. "이게 무슨 짓이야!!! 아야야야야야─…!!!" "잘 먹었습니다─." 그는 나를 놓아주고서 입술에 묻은 피를 핥았다. "이 나쁜자식…" 나는 물린 곳을 부여잡고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치마츠는 새삼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그런 나를 바라보았다. 라인에서나 가끔 욕을 하고 현실에서는 결코 누군가를 쉽게 헐뜯지 않는 내게, 나쁜자식이라는 말은 그리 가벼운 의미를 가진 표현이 아니었다. 이치마츠도 분명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내 안의 미움은 점점 커져갔다. "자기가 원하면 상대방의 기분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너의 그런 점, 정말 싫어…" 나는 중얼거리듯이 말하고서 흘러내린 옷을 추스렸다. 고개를 들자 이치마츠가 조금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동안 아무 말이 없던 그는 어느덧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나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이번에도 역시. 할 거 다 해놓고 갑자기 사과를 하는 이치마츠에게, 나는 탄복했다. 그런 말이 진심일 리 없는데도, 애석하게도 내 마음은 그의 따뜻한 체온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미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알았어."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이는 이치마츠의 등을 토닥여주며, 나는 끝내 그를 용서했다. "화 풀렸어?" "아직!" 그동안 이치마츠와 함께 생활해오면서, 나는 그의 성격을 나름대로 깊숙히 이해하게 되었다. 이럴 때 사용하는 표현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마 뼈저리게 느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만약 내가 "응, 풀렸어." 하고 대답했다면, 분명 이치마츠는 뻔뻔하게 웃으면서 "그럼 아직 세이프존이네? 한 번 더 물게." 라고 했을 것이다. "곤란하네… NTR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고…" "그놈의 NTR소리 좀 그만해, 변태자식아!" "그치만 썩을 장남 녀석 화나면 엄청 무섭잖아. 널 건드릴 때 마다 스릴이 엄청나다고." "쓰레기!!! 쓰레기놈!!!" 예전에는 자신을 쓰레기라고 하는 이치마츠를 나무라던 나였건만. 지금의 나는 그에게 삿대질까지 해가며 서슴없이 같은 말을 한다. 그만큼 넌덜머리가 난 것이다. 이치마츠는 그런 와중에도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나와 이치마츠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오소마츠가 문 앞에 서서 우리를 넌지시 바라보고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이치마츠가 말했다. 나를 훑어본 오소마츠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깨닫고보면 이치마츠에게 물렸던 곳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치마츠, 잠깐 나가서 얘기 좀 하자." "화났네." 쿵쿵쿵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온 오소마츠가 이치마츠의 멱살을 낚아챘다. 그에게 질질 끌려가던 이치마츠가 문득 뒤를 돌아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내게 손을 들어보였다. "이걸로 벌 받은 셈 치고 화 풀어." 어째서 끌려가면서 여유만만인 거야……. 하여간 도M 자식. 나는 몸을 추스르며 문득 찾아온 두통에 손을 이마로 가져갔다. 언젠가 이치마츠가 내게 했던 말이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상대방에게 평범한 인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더 이상 발전할 가능성도 없어. 그렇다면 난 그냥 쓰레기 할래. 쓰레기가 돼서 멋대로 들러붙고, 멋대로 더럽힐 거야. 차라리 그 편이 나아."언제나 권태감이 느껴지는 그가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기에, 나는 무심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런 나를 말없이 바라보던 이치마츠는 마른 웃음을 흘리며 내 어깨에 이마를 기대었다. 그리고 말했다."어차피 난 쓰레기 외에는 아무것도 될 수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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