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볼일이 있어서 형제들의 방에 왔다. 문을 열자마자 이치마츠가 보이기에 인사를 하려 했더니, 그가 드물게 무언가를 열심히 읽고 있다. 예쁜 여자가 누군가를 유혹하는 듯한 관능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표지. 아니나다를까, 책 끝부분에 R18이라는 도장이 꽝 찍혀있는 성인잡지다. 게다가 자기 것도 아니다. 이전에 나도 한 번 빌려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다. 저건 오소마츠의 것이다.

 "엣헴!"

 "……."

 "엣헴!!!"

 "……."

 아무리 헛기침을 해도 이치마츠는 전혀 반응이 없다. 하기사 그런 것을 신경쓸 녀석이었다면 애당초 방 한 가운데 떡하니 누워서 잡지를 읽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치마츠… 무얼 당당히 성인잡지를 읽고 있는 거야?"

 "너한테는 딱히 숨길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예전에 같이 본 적도 있잖아."

 "그때랑 지금은 달라."

 "뭐가 다른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치마츠에게 다가가서 그의 잡지를 빼앗았다. 그제서야 이치마츠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오메가끼리는 같이 잡지를 보든 AV를 보든 아무래도 좋지만, 지금 너는 알파야, 알파. 나랑 다른 젠더니까 내 앞에서 그때랑 똑같이 행동하면 안 돼."

 "똑같이 행동하면 뭔 일이 일어나기라도 하냐? 난 가만히 있는데 왜 혼자 이상한 상상을 하고 그래?"

 "딱히 상상 같은 건 하지 않았어! 보지 말라면 그냥 보지 마!"

 쿵─. 나는 이치마츠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먹인 뒤 책장으로 가서 오소마츠의 잡지를 원래의 자리에 돌려놓았다. 한편 이치마츠는 바닥에 엎드린 채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쌓여있단 말이야."

 "무, 무얼 또 당당히 말하고 있어?!"

 "H하고 싶다고."

 "어이!!!"

 나는 저도 모르게 큰소리를 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치마츠는 어느덧 눈매가 얄쌍해져서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았어, 알았어! 잡지를 보든 뭘하든 맘대로 해! 내가 나가줄 테니까!"

 "잠깐 이리와 봐."

 "?"

 이 이상 할 얘기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왠지 위험한 냄새가 풀풀 나지만 일단 앉아볼까. 너무 의식하면 이치마츠의 말대로 혼자 이상한 상상을 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민망하니까…….

 "뒤돌아서 앉아."

 "왜?"

 "안 그럼 내가 억지로 앉힐 거거든."

 위험하다. 위험한 냄새가 점점 짙어진다. 역시 이대로 방을 나가야 하는 걸까. 하지만 만약에 그런 것이 아니라면? 단지 내게 안마를 해주려는 것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결국 이치마츠의 말에 따른다. 이런 내게도 자존심이 있는지라, 멋대로 착각하는 음흉한 여자 따위는 되고 싶지 않다. 이 변태에게 만큼은 절대 변태라고 불리고 싶지 않다. 혹시 이 자식,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나? 그래서 아까부터 이렇게 당당한 건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긴장을 늦추어선 안 된다.

 "…하자."

 "꺄!!!"

 그럼 그렇지. 이럴 줄 알았다. 아니, 이런 것밖에 생각할 수 없다. 안마는 개뿔! 내 생에 마츠노 이치마츠에게 그런 봉사를 받아본 기억이 없다. 날 괴롭혔으면 괴롭혔지, 그는 결코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상식인, 도S, 도M, 변태, 쓰레기다. 자신의 친구에 대해 여기까지 생각하는 나도 썩 좋은 인간은 아니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이치마츠는……. 이치마츠는 지금 내 옷을 벗기고 있으니까. 뒤에서 두 다리로 내 허리를 휘감고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는, 그만하라는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고 있지 않으니까. 저항을 하다가 무릎을 구부리며 바닥에 두 발을 딛자, 마치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치마츠가 내 한쪽 다리를 바깥쪽으로 확- 밀어낸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내쪽은 다리가 벌어진 채 더할나위 없이 무방비한 상태가 된다. 이윽고 이치마츠의 손이 스커트 안으로 들어온다. 너무 순식간의 일이여서 수치심을 느낄 틈도 없다. 단지 두려울 뿐.

 "그거 알아? 알파에 따라서 러트가 왔을 때 유독 폭력성이 짙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폭력성보다는 성욕이 훨씬 강해지는 사람도 있다는 거."

 "우리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을 때 별도로 작성해야 하는 게 있는데, 대충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해서 3가지 성향중 어느 것의 비중이 강하고 약한지를 알아내는 거야. 폭력성·성욕·자기대처능력. 자기대처능력이란 건 쉽게 말해 '인내심'이지."

 "지난 달이었나… 형들이랑 같이 검사를 받으러 갔어. 오소마츠형은 2·1·7로 역시 제일 안정적이었고, 쿠소마츠는 5·2·3으로 이번에도 최악이었어. 그 녀석 언제나 폭력성이 높게 나온단 말이지. 정말, 조심해야 돼."

 눈을 뜨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언제나와 같은 방의 풍경이다. 그러나 지금 이 방은 불쾌한 열기로 가득하다. 그 열이 나를 어지럽게 하고, 점점 약하게 만든다. 반면 이치마츠의 손은 차갑다. 너무 차가워서 너무 선명하게 느껴진다. 여기도, 저기도, 내 몸이 전부 그의 손안에 있다. 난생 처음 느끼는 쾌감에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어간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입술 사이로 새어나가는 야릇한 목소리가 남자의 숨소리와 한데 뒤섞여 끝없이 귓가를 맴돈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어떻게 나왔는지 안 궁금해?"

 "……."

 내 뺨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을까. 알고 있었다면 내가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칠 때 모든 것을 그만두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짓궂은 이치마츠라도 내 눈물을 무시해가면서까지 그런 짓을 하지는 못한다. 그는 내 친구이고, 나를 좋아한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만큼. 언제나 나를 괴롭힐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나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나를 물고난 뒤에는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준다. 나만이 알고 있는 이치마츠만의 약한 모습도 있다. 공포영화를 볼 때 끝까지 내 팔을 놓지 않는 모습, 함께 돌봐주던 고양이가 죽었을 때 눈시울을 붉히던 모습……. 그런 이치마츠가 지금 여기에는 없다. 무섭다. 너무 무서워서 저항을 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나는 말야, 2·8·0……."

 무언가 오고 있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더니, 필름이 끊기듯이 일순간 사고가 정지하며 전신의 힘이 싹 빠져나간다. 방금 그것은 뭐였을까. 드디어 이치마츠의 손이 내게서 멀어진다. 그가 손끝을 핥고는 씩 웃는다. 보이지 않지만 귓가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알 수 있다.

 "생각해 봐. 형들의 러트 때는 방이 엉망진창이 되는데, 최근 내 러트 때는 전혀 그렇지 않잖아? 난 딱히 누굴 때리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왜냐면 나는 몸보다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게 더 좋거든─. 그래야 상대방의 기억에 좀 더 오래 남을 수 있잖아─."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겨우 이치마츠의 무릎을 짚고,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쉰다. 그렇게 억지로 가슴에 숨을 욱여넣고, 천천히 입을 연다.

 "이치마츠… 너 혹시… 지금……."

 나를 덮쳐오는 짙은 멘솔향. 그리고 목소리.

 "응, 지금 나…중이야."

 잊을 수 없다.

 이치마츠가 원하는대로, 나는 절대 이 기억을 잊을 수없다.

 잊을 수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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