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우편물을 가지러 잠시 현관에 나갔다가 이치마츠의 보라색 우산이 우산꽂이에 그대로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빗줄기가 굵은데 괜찮은 걸까……. 아침 일찍 집을 나선 그는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쯤 어딘가에서 곤란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편함 안에 들어 있었는데도 편지봉투는 축축하게 젖어 있다. 나는 우편물을 전부 안에 들여놓은 뒤 우산을 쓰고 이치마츠가 항상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다니는 골목길로 향했다.

 …

 …

 …

 쏴아아아───.

 내가 집을 나설 때보다 빗발이 더욱 거세졌다. 낡은 상가의 모퉁이를 돌아 골목길 안쪽을 들여다보니 그곳에 이치마츠가 있었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비를 피할 수 있는 자리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있었고, 어째서인가 배가 불룩 나와 있었다. 그의 옷이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아, 안에 작은 고양이가 들어 있는 듯했다.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발견한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다가도 곧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배 위로 손을 가져갔다. 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엉덩이가 젖지 않도록 근처에 널브러져 있던 빈 자루를 깔고 앉았다. 두 사람이 같이 쓰기에는 우산이 너무 작아서 팔에 걸치고 있던 이치마츠의 우산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치마츠는 우산을 펼쳐 어깨에 걸친 뒤, 셔츠를 들추어서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고양이는 이치마츠가 보라색 후드티 안에 입고 있던 또다른 셔츠에 몸을 부비적거리며 기분이 좋은 듯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어차피 곧 그칠 텐데 뭐하러 나왔어."

 "이치마츠가 걱정돼서."

 "여기 있으면 너도 더러워져."

 "좀 더러워지면 어때, 몸은 씻으면 되고, 옷은 세탁기로 돌리면 그만인데."

 "감기 걸릴지도 모르니까 돌아가."

 "좀 이따가 비가 그치면 너랑 같이 갈 거야."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어, 나왔다. 답답한가 봐."

 나는 일부러 이치마츠의 말을 끊었다. 마침 그의 셔츠 밖으로 고개를 내민 고양이가 야옹 소리를 내며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보송보송한 솜털이 난 새끼고양이의 배는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이 금방 부풀었다가 줄어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었는지, 문득 이치마츠가 턱에 걸치고 있는 하얀 마스크 너머로 피식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한테 줘."

 "더러워진다니까."

 "이런 우중충한 날에는 조금 더러워져도 돼. 하늘도 검은색, 얼룩도 검은색. 별로 티 안 나."

 "……."

 이치마츠는 자신의 품에서 고양이를 데려가는 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마도 보통 여자들은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데 내가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자라고 해서 무조건 깨끗하고, 예쁘고, 화려한 것만 좋아하지는 않아. 그렇게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보다 먼저 고양이를 품안에 넣었다. 이치마츠가 그러했듯이. 다만 답답하지 않게 가장 아래에 달린 단추를 풀어서 고양이가 고개를 내밀 수 있도록 했다.

 "네가 넣으니까 꼭 애 가진 것 같네."

 나는 고양이의 뺨을 쓰다듬으며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문득 지난 날 이치마츠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전에 이치마츠가 그랬지. 언젠가 태어날 네 아이는 고양이일 거라고."

 "아아. 넌 지금 내 새끼를 가졌어."

 이치마츠의 입에서 시모네타가 나오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최근들어 내게 변태니 쓰레기니 하는 말을 계속 듣고 있지만 그는 농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까. 아니, 듣는 것은 좋아하고 자신이 하는 것만 싫어했던가. 솔직히 말해서 시모네타에 있어서는 동생인 쥬시마츠가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금 것은……. 얼굴이 뜨거워졌다.

 "뭘 봐?"

 자신의 옆모습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이치마츠가 내게 물었다. 그는 지면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면서 그대로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를 꺼냈다. 그는 담배를 한 개비 꺼내서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 했지만 공기가 눅눅해서 라이터가 잘 켜지지 않았다. 틱- 틱- 몇 번의 시도 끝에 화르륵 불이 피어오르고, 하얀 연기가 차가운 수증기를 타고 하늘로 사라졌다.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은은한 멘솔향이 코끝에 어른거렸다. 나는 그 냄새가 여느 담배냄새와는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 냄새는……. 그 냄새는 내게 있어서 단순한 담배냄새가 아닌, 이치마츠의 냄새였다.

 "그냥, 이제보니 너도 꽤 잘생겼구나 싶어서."

 토도마츠는 형들이 잘생김 피라미드의 제일 아랫층에 있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겠다. 내 취향이 독특한 걸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확실히 꽃미남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오목조목 따지고 보면 멋있는 부분, 예쁜 부분, 귀여운 부분이 있고, 남자로서의 성적 매력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이치마츠의 경우에는 그의…….

 "키스하고 싶어?"

 "아, 아니.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봐?"

 "아까부터 계속 내 입술을 쳐다보길래."

 내가 이치마츠를 흘깃거리는 동안 그는 한 번도 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을까. 하여간 눈치 하난 기가 막히게 빠른 녀석이다.

 "딱히 키스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계속 의식하게 돼."

 "어째서 의식하는데?"

 "여태껏 몇 번이고 닿았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래서 계속 쳐다볼 거야?"

 "……."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품안의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문득 비에 젖은 남자의 거친 손이 내 뺨을 감싸왔다. 움찔- 하고 어깨가 떨리는 순간 무심코 옆을 돌아보자 곧 이치마츠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만약 지금 내가 너에게 키스를 한다면 그건 네가 그걸 원하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치마츠가 자신을 보게 하려 했지만, 저도 모르게 힘을 주고 버텼다.

 "왜 날 못 봐?"

 "……."

 "원하지 않는다면 '네 키스 따위 필요없어' 라는 눈으로 나를 보면 그만이야."

 "……."

 "날 봐."

 이치마츠가 살며시 상체를 숙이며 내 앞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그가 나머지 한 손 마저 내 뺨을 감싸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을 때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이치마츠는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가에 악마 같은 미소를 띤 채.

 "이제 네가 싫다고 해도 안 믿어."

 그는 그대로 내게 입을 맞추었다. 다시 눈을 감는 순간 긴장이 풀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마치 가슴속에서 위태로이 팽창하고 있던 무언가 터져버린 느낌이었다. 이치마츠의 입술……. 그것은 언제나와 같이 따뜻했다. 하지만 나는 어째서 그토록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자신의 팔이 그를 끌어안고 있는지도…….

 …

 …

 …

 그 뒤 비는 그쳤지만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그늘진 골목길은 여전히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고양이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비록 얇은 카디건이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내 체취가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작은 아기고양이는 그곳에서 다시 편안히 잠이 들었다.

 "그냥 말하지 그래."

 노을을 등진 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셔츠의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고 터덜터덜 도보를 걸으며, 이치마츠가 내게 말했다.

 "뭘 말이야?"

 그는 내쪽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나랑 키스하고 싶다고 말이야."

 "하고 싶지 않아."

 "거짓말."

 "싫어."

 "그래, 그렇다고 치자."

 "……."

 이치마츠와 나란히 걷고 있던 나는 걸음에 박차를 가해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꽉 움켜쥔 손이 바들바들 떨리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곧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그때 이치마츠를 돌아봤어야 했다. 그를 보고, 조금 전과 같은 말을 했어야 했다. 어째서, 어째서 하지 못했던 걸까.

 …

 …

 …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오소마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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