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계절이 변하는 시기에 이르렀지만 하늘의 태양은 아직 한여름의 모습을 벗지 않았다. 피부에 스며드는 햇살의 따스함으로 아직 가을을 맞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침을 먹은 뒤 마당을 쓸고나서 다시 집안으로 들어온 나는 부엌에서 어제 미리 잘게 빻아놓고 오늘 아침에 불려놓은 흰쌀을 물과 함께 냄비에 끓였다. 얼마 전에 오소마츠가 감기에 걸렸을 때의 하루가 다시 반복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오소마츠의 감기가 낫자마자 이번에는 동생인 이치마츠가 같은 이유로 드러눕게 된 것이다. 언제나 같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인지 누구 한 명이 감기에 걸리면 이렇듯 나머지 형제들도 금방 옮아버리곤 한다. 도미노처럼 여섯명이 한꺼번에 쓰러지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번 그렇게 고생을 하더니, 이번에는 이치마츠가 감기에 걸리자마자 냉정한 형들이 그를 빈방에 격리시켜버렸다. 며칠동안 조용한 방에서 홀로 앓고 있는 이치마츠가 가여웠다. 그래서 나는 오소마츠 때보다 좀 더 신경을 써서 그를 돌봐주고 있다. 처음에는 필요없다는 둥 괜찮다는 둥 퉁명스럽게 굴던 이치마츠도 지금은 내게 상당히 의지하고 있다. 어찌나 응석을 부리는지, 정말 애가 따로 없다.

 "들어간다─."

 나는 죽과 수저가 올려진 쟁반을 끌어안고서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지난번 오소마츠 때와 같았다. 이치마츠가 이불 위에 앉아 고개를 떨어뜨린 채 어깨의 뭉친 부분을 주무르고 있었다. 조금 몽롱한 표정이었지만 다행히 열이 내려서 어제보다는 안색이 좋아보였다.

 나는 바닥에 쟁반을 내려놓고 그의 얼굴을 좀 더 가까이서 살폈다. 그때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던 이치마츠는 뺨에 내 손이 닿자 그제서야 나를 돌아보았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내가 뺨을 부비적거리며 묻자, 그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 두 팔로 내 허리를 끌어안으며, 어깨 위에 살며시 이마를 기대었다.

 "나 원…"

 입으로는 탄식을 내뱉었지만 사실 나는 이치마츠의 어깨 너머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늘 하던 생각이었지만 그가 가끔 보여주는 어린아이 같은 면이 싫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떨어지지 않으면 죽을 먹을 수 없으니 그만하라고 말해도, 이치마츠는 듣지 않고 두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대로 나를 이불 위로 넘어뜨렸다. 그의 이마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뜨거웠다. 단지 어제보다 조금 나아졌을 뿐, 아직 열이 끓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애써 그를 밀쳐내려 하지 않았다.

 "모두 멋대로 나가버렸는데 왜 너는 그러지 않는 거야?"

 이치마츠가 내게 물었다. 그 이유가 자신을 돌보기 위해서라는 것 쯤은 물론 그도 알고 있을 터였다. 아무래도 그는 내게서 직접 이유를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네가 걱정 되어서라고. …최근들어 느낀 것이지만, 이치마츠는 무뚝뚝한 겉모습에 비해 외로움을 많이 탄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애정결핍이랄까. 그러면서도 평소의 그는 자신의 그런 부분을 형제들이나 내게 그다지 표현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딱히 그가 아프지 않을 때에도 나는 특별히 그에게 많은 관심을 쏟는다. 딱히 내가 그런 감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던가, 동질감 따위를 느끼기 때문이 아니다. 이렇게나 이치마츠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그가 조금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네 감기가 나을 때까지는 계속 네 옆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감기가 나으면 어딘가 가버린다는 거지?"

 "어쩔 수 없어. 나한테도 해야 할 일이 있는걸."

 "……."

 나는 이치마츠가 무언가 말하길 기다리며 그의 등을 다정하게 어루만져주었다. 이불이 푹신해서였는지, 그의 체온이 따뜻해서였는지, 왠지 모르게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한순간 이치마츠의 두 손이 내 뺨을 감싸고, 그가 내 눈을 똑바로,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스해도 돼?"

 그가 물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서 우물쭈물거렸다. 안 된다고 대답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얼굴이 뜨거워지고, 작은 의문점이 내 가슴에 생겨났다. 지난 오랜 시간동안 이치마츠는 단 한 번도 내게 닿기 전에 나의 '허락'을 구한 적이 없었다. 손을 잡고 싶으면 잡고, 안고 싶으면 안고, 키스하고 싶으면 하고… 그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키스해도 되냐니. 그 말에 딱히 특별한 의미가 담긴 것도 아닌데, 나는 심장의 고동이 이상하리만큼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키스하면 너한테 감기가 옮겠지."

 이치마츠는 고개를 안쪽으로 돌려 내 귓가에 대고 말을 이었다.

 "그땐 내가 널 돌봐줄 테니까… 그럼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잖아."

 뜨거운 숨결이 뺨, 귀, 목에 떨어졌다.

 그는 침묵속에서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난 번에는 너 때문에 내가 감기에 걸렸으니까 불만 없지?"

 나는 그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동안 머릿속으로 대답을 찾았다. 하지만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기 전에 이치마츠가 기다리는 것을 멈추고 내 입술을 덮쳤다. 조용한 방에 매끄러운 살갗과 부드러운 섬유의 스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나는 몸의 감각이 곤두세워진 채로 무념의 상태가 되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이치마츠의 어깨를 밀어냈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굳이 감기에 걸릴 필요는 없잖아. 이치마츠가 원한다면 언제든 같이 있어줄게."

 "거짓말 하지마."

 "거짓말 아니야. 감기가 나으면 같이 어딘가 놀러가자."

 나는 여전히 얼굴에 의심을 띠고 있는 이치마츠의 뺨을 어루만졌다.

 "……."

 그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후 내게서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다.

 "고양이가 있는 곳에 가고 싶어. 언제나 가는 골목 말고."

 "알았어. 내가 새로운 고양이까페를 알아볼게. 고양이를 데려갈 수 있는 공원이라던가."

 고요한 적막속에서 그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했다. 마침내 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하지만 그러한 여유도 잠시, 그는 다시 내게 입을 맞추었다.

 오늘따라 왠지 이치마츠가 상냥하네. . . .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나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어깨 위에 살며시 손을 얹고 있었을 뿐이었다.

 "지금은 너랑 떨어지고 싶지 않아."

 그가 입술을 떼고서 내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는 그런 그에게 물었다.

 "나중에는 괜찮고?"

 "……."

 침묵, 침묵, 침묵. 그리고 숨소리보다도 작게 들려오는 아득한 진심.

"나중에는 내가 안 괜찮다고 해도 갈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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